5.10선거로 남한 정권이 수립되고, 48년 8월 15일 건국(建國)을 선포하자, 북(北)은 마지못해 선거를 통한 정권수립의 절차를 밟은 것처럼 서둘렀다. 그리고 8.25일 선거를 통해 360명을 뽑았다. 통일의회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 남한에서 비밀리에 뽑은 1,080명의 인민대표를 황해도 해주에 집결시켜 360명의 인민대의원(人民代議員)을 선출하는 절차를 밟았다.
비밀리에 뽑은 이들 대표가 남한민중의 의사를 대변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는 처사였다. 이렇게 구성된 인민회의를 기반으로 해 1948년 9월 9일을 북한정권 수립일로 공식 선포했다.
북한정권 출범은 애초부터 소련군정이 주도했다. 공산당과 신민당을 통합해 노동당을 만들도록 했고 그리고 북한 헌법 제정도 감독한 것으로 여러 기록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이라는 명칭도 소련군정 정치사령관 「레베데프」 장군이 제안한 것으로 그의 회고록에 나와 있다.
숙부(叔父), 제헌의원(制憲議員) 활동
제헌의원 활동으로 세 가지를 우선 들 수 있을 것 같다. 첫째가 헌법기초위원으로서의 활동 반민족행위에 관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으로서의 활동, 그리고 토지개혁위원의 역할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헌법기초위원(憲法起草委員)
숙부는 「와세다」에서 법학을 전공한 교육 배경이 인정되어 기초위원으로 선정된 것으로 안다. 5 .10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상경, 돈암동에 숙소를 구하고 중앙청(옛 총독부 건물)으로 출근했다. 헌법기초위원이어서 밤늦게까지 헌법학자 유진오(兪鎭午, 고려대학교 법학부 교수) 선생이 작성한 초안(草案)을 중심으로 축조심의를 하였다. 심의위원장은 물론 이승만 박사였다.
어느 날 이(李) 박사가 사회(司會)를 보다가 밖에 볼 일이 있어 사회를 부위원장에게 부탁을 하고 자리를 떴다. 이때 축조심의를 해나가다가 헌법의 가장 뿌리가 되는 제 1조 ‘국체(國體)(Form of State)’에 관한 논의가 나왔다. 이때 사회하던 부위원장이 위원장이 돌아오시면 그때 가서 국체(國體)를 심의하자고 제의했다.
이때 숙부 김옥주(金沃周) 위원이 발언하기를 제 1조 국체가 헌법의 기본인데 이를 정하지 않고 타 조문을 심의해 봐야 의미가 없으니 정회(停會)를 하던지 계속 심의를 하려면 제 1조를 심의 통과해야 순서라고 우겼던 모양이다. 초대 대통령이 될 이(李) 박사는 대한민국 헌법 1조를 제안 의결한 사람으로 헌정사에 영구히 남기를 원해서 국체심의를 미뤄 달라고 사회에게 부탁한 터라 부위원장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이때 의외로 위원들이 김(金) 위원의 발언이 백번 옳다고 하면서 제1조를 먼저 심의하자고 나왔고, 중의(衆議)에 몰려 사회는 할 수 없이 양보했다. 사회가 김(金) 위원에게 제안해 보라고 하자, 김(金) 위원 기다렸다는 듯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발언했다. 이에 위원 전원이 동의했고 일사천리 통과되었다.
이(李) 박사가 돌아온 다음 제1조가 이미 처리된 것을 알고 대단히 섭섭하게 생각하며 “누가 발언했느냐?”, “김옥주 위원이 했다.”는 말이 나오자 그때부터 김(金) 위원이 괘씸죄에 찍혔다는 후문이다.
군주주권(君主主權)에서 민주주권(民主主權)으로, 군주전제(君主專制)에서 민주공화제(民主共和制)로 바뀌는 민족사의 대전환을 가져왔다.
1919년 4월 첫 임시정부 의정회의에서 우창 신석우(후에 조선일보 발행인)가 대한(大韓)에 민국(民國)을 붙임으로써 「대한민국」이라는 국호(國號)가 탄생했으며, 곧이어 국체(國體)도 이에 따라 「민주공화국」이라는 자연스러운 결론으로 유도되었다.
이제 29년 후인 1948년 헌법기초위원회(憲法起草委員會)에서는 이의 추인으로 보면 모든 것이 자명해지며, 새로 창조된 것도 아니므로 이(李) 박사가 섭섭해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고 하겠다.
○반민특위(反民特委)
다음은 반민법(反民法)의 제정의결이었다. 48년 9월 국회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민족행위처벌법(反民族行爲處罰法)」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이(李) 박사는 내심 신생국의 대화합 경지에서 좀 유보적인 입장이었다.
그리고 평생을 항일 애국해 온 당신으로서는 자신만이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국회와 일반 여론이 찬성 쪽으로 기울어지자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반민특위에 숙부 김옥주(金沃周) 의원이 참여, 활동하였다. 특위는 짧은 시간이지만 683건의 반민 범죄를 조사, 기소했다. 그런데 정부가 이런 일련의 조사와 기소 과정에 불만을 가지고 여러 방향으로 견제를 하기 시작했다. 특위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이문언 의원을 비롯해 세 명의 의원을 보안법 위반으로 49. 5.17 전격적으로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49. 6.6 드디어 중부경찰서 무장경관이 동원되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고 ‘특별경찰대원’들을 빨갱이로 몰아 체포 연행하였다. 이(李) 대통령은 민심의 동요를 알고 AP통신과의 회견에서 당신이 직접 특경대(特警隊)를 해산시키라고 지시했다고 언급했다.
이 반민특위 사건은 결국 49.6.16 반민법 제정을 주도한 소장파 의원들이 남노당과 접촉했다는 국회프락치(간첩)사건으로 비화, 의회 휴회기간을 이용, 김약수 등 의원 13명을 전격구속하는 사건으로 발전했다. 제주 4.3사건 그리고 여순사건을 겪은 이(李) 박사는 공산주의자들의 국가 전복 의지가 뚜렷해졌다고 보고 본격적인 반공정책으로 선회했다.
특히 정부가 충격을 받은 것은 49년 6월 춘천에 있던 국군 8연대 산하 1대대장 표무원 소령, 2대대장 강태무 소령이 대대병력을 이끌고 38선을 넘은 것은 큰 충격이었으며, 미군 쪽에 신생국군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결과가 되었다(이 군인 월북 사건은 북로당(北勞黨) 거물 간첩 성시백의 공작(工作) 결과로 밝혀졌다).
이제 1948년 12월 1일 공포된 국가보안법이 긴요한 도구가 되었다. 이 법에 의해 1949년 한 해 동안 11만 8천여 명이 체포되고, 132개 정당, 사회단체가 해산되었다. 좌익의 표면적 활동을 단호히 저지시킨 이(李) 정권은 「국민보도연맹(國民輔導聯盟)」을 만들어 공산활동자들을 입맹(入盟)시킴으로써 이들을 계도하고 이들의 거동을 계속 파악, 관리해 나갔다.
그리고 이들의 관리는 경찰이 맡았는데, 6.25가 터지자 수원 이남에서는 연맹 가입자 대부분이 산하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운을 맞았다. 한강 이북에 남았던 연맹원들은 대부분 인민군에 협조하는 것을 나는 목격했다.
내가 잠시 피난했던 광주군 동부면(廣州郡 東部面) 인민위원장은 연맹 가입자였다. 이(李) 박사의 이러한 과격한 반공정책은 6.25로 인해 많은 부분 정당화(正當化)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