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고 시절의 후기와 형제자매 (188회)
  제23장 인천고 시절과 나의 자화상

후기(後記) -Ⅱ

5.10선거를 향한 좌익의 저항은 맹렬했고, 전국적인 규모였다. 검, 군, 경(檢軍警)은 필사적으로 대응했다. 선거가 무사히 끝나고 건국이 선포되자 좌익의 활동이 많이 진정되었고, 학교도 이념투쟁의 장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았다. 

희한한 일은 운동부(運動部)에 따라서 좌 성향, 우 성향 그리고 중도로 갈라지는 것을 느꼈다. 역기 등 기계체조는 좌가 쎈 것 같고, 내가 속해 있던 정구부는 중도 내지 우에 가까운 편이었다. 역시 「부르조아」 운동이 돼서 그런 모양인지 우리 정구부 선배 그리고 후배 중에 활동적인 좌익은 없었으니 말이다. 정구(庭球)를 좋아하는 선생님도 좌익은 없었다.

정부 수립이 되자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있었다. 체신부 초대장관 윤석구(尹錫龜) 씨가 2, 3개월 만에 사임하자 미국 유학파 출신인 독립운동가 장기영(張基永, 영월 출신) 씨가 임명되었다. 장(張) 장관은 일본 중앙대를 졸업하고, 1930년대 초 미국 유학을 가서 「벤다빌트」 대(大)를 졸업하고 이(李) 박사를 돕다가 미(美) OSS요원으로 활동하였다. 

장(張) 장관이 취임하자 당신의 바로 후배가 인천 우체국장으로 있는 것을 확인하고 본부 총무과장으로 발탁, 끌어올린 것이다. 우리는 졸지에 또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체신부의 관사촌은 필동 3가에 있었으나 빈 집이 없어 적산(敵産)인 아현동 1번지 집을 우선 쓰게 되었다. 이집에서 나중에 숙부 김옥주(金沃周)님이 연행되었다.

인중(仁中)에 다닐 때라 처음에는 아버님 운전수로 있던 양우석(梁又石) 형 댁에서 2, 3개월 신세를 지고 있다가, 인천중(仁川中) 동기인 최점숙(崔点淑) 군의 주선으로 후배인 김찬중(金燦中)의 집으로 옮겨 Room Mate로서 최(崔) 형의 도움을 받으며 학교를 계속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의 경제사정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쌀도 대단히 품귀한 때라 명실상부한 실물경제시대였다. 쌀을 져다 줘야 하숙이 가능한 시대였던 것이다. 모든 것이 번거로웠다.

이즈음 아현동에서 필동으로 이사를 갔고,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경기중(京畿中)으로 전학하는 문제도 구체화되면서 하숙을 철수했다. 그런데 경기 전입 문제가 펑크가 나면서 마음을 고쳐먹고 졸업 때까지 통학하기로 결심했다. 

기차통학이란 첫째, 부지런해야 한다. 취침과 기상이 칼날 같아야 하고, 상당한 에너지가 요구되는 일이다. 좋은 점도 있었다. 한 시간의 열차 이동은 나에게 차분한 독서시간을 허락했고, 선우 휘(鮮于 輝) 선생 같은 훌륭한 분과 가끔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선우(鮮于) 선생님은 동생 연(練)이와 함께 서울~인천 간을 한동안 통근하셨다.

나의 건강에 많은 공헌을 했던 「조깅」 달리기는 필수였다. 필동에서 서울역 그리고 상인천역(上仁川驛)에서 학교까지, 매일 달리기 코스였다. 어떨 때는 과도한 속도 때문에 가슴이 터질듯 한 순간도 이리저리 참으며 주파를 해낸 것은 나의 일생 건각과 폐활량을 키워주는데 크나큰 경험이 되었으리라 본다. 전방(前方)에서 무수한 산악을 누비고 장거리 행군을 하고, 최근에는 동무들과 높은 산 오르기를 할 때도 거뜬했던 것은 그때 축적된 체력이라고 생각한다.
 
▲ 인천중고 재학시절에 찍은 사진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 / 동기인 우용하 군, 라디오 등 전자기기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음.)

이렇게 시간에 쫓기고 각박한 나날이었지만 꾸준하게 정구장에서 뛰었다. 전국대회를 앞두고 가끔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면서 열심히 운동을 계속했고, 그 결과로 1950년 5월 26일(月) ‘서울운동장’에서 거행키로 예정된 ‘전국 중등학생 정구 선수권대회’ 인천대표로 출전하게 되어 있었다. 

인중(仁中) 선수 일행은 필동 우리 집에서 기숙을 하며, 대회 출전을 위한 최종 연습에 몰두하고 있던 25일(日) 오후, ‘38선의 포성’으로 우리들은 재회의 기약도 없이 해산,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들 중 아무도 앞으로 3년, 그 무서운 민족상잔의 비극이 우리들을 무자비하게 덮치리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
 


형제 자매
 
長男 : 진규(秦圭, 1929. 8. 18. 생)
前 (社)韓國企業政策硏究所 會長
배 : 최종순(崔鍾順)
3남 1녀

次男 : 진휴(秦休, 1932. 12. 26 생)
回顧錄 著者
배 : 문정숙(文貞淑)
石蘭꽃硏究會 會長
1남 2녀

長女 : 영자(英子 1935. 7. 21. 생)
會明꽃꽃이 會長
배 : 김여석(金麗錫)
前 韓國移動通信公社 社長
2남 2녀

次女 : 경자(京子, 1940. 12. 22. 생)
前 (社)韓國꽃藝術作家協會 理事長
배 : 이희운(李羲云)
前 群山, 蔚山港灣廳長

參女 : 미자(米子, 1945. 1. 8. 생)
배 : 김경해(金景海)
前 MBC특파원 駐北京大使館公報館
前 KTV 社長
1남, 1녀

參男 : 진문(秦汶, 1947. 8. 20생)
美國農務省勤務(食品工學博士:前 美國메인州立大 敎授) 

四男 : 진철(秦哲, 1950. 7. 3 생)
前(株)두데코代表理事
배 : 정혜승(鄭惠勝)
1남 1녀

四女 : 광희(光熙, 1956. 5. 17 생)
배 : 김효중(金孝中, 자영업)
1남 1녀

 
  길영희 교장 선생님 (187회)
  우리 부부 (18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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