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출동이다. 2개 소대 약 100여명이 다섯 대 트럭에 분승하고 그 유명한 따리굴 죽령을 넘었다. 풍기에서 이번에는 거꾸로 소백산으로 들어가 중간 고지에서 호를 파고 밤새 덜덜 떨면서 적의 출현을 기다렸다. 새벽 동틀 무렵인데도 적정이 없었다. 일단의 게릴라 부대가 태백산을 따라 남하하고 있다는 첩보에 의해 출동했으나 허탕인 것이었다.
사실상 상황을 종결하고 철수준비를 하면서 아침 먹을 준비를 하는데, 저 아래 마을에서 한 노인이 지게에 무엇인가 잔뜩 지고 올라온다. 따뜻한 조반을 먹이기 위해 손수 지어서 가져오는 것 같은데 그들에게 쌀이 있을 리 만무하다. 옥수수, 조, 서숙을 잘 혼합해서 밥을 짓고, 콩나물 무침, 김치, 그리고 우거지국이다. 오래간만의 한식이다. 십시일반으로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인솔장교 「고드프리」 중위가 잡곡밥 뿐 아니라 콩나물도 그렇게 잘 먹는 것이다. 한국음식을 먹어 봤느냐, 했더니, 고향이 하와이인데 자기 부인이 한국인 2세라서 콩나물, 시금치 무침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어쩐지 언제나 한국 사람을 대하는 것이 정중하고 친절했다. 다음부터 우리는 서로 동료의식이 생겨 S.A.G가 해산할 때 까지 친하게 지냈다.
밥을 먹고 나서 C-레이션에서 나온 양담배 열 갑이 금세 수집되어 밥을 지어오신 자비로운 할아버지에게 선물로 드렸다. 꾸벅 꾸벅 감사의 인사를 하며 돌아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 온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
1951년 2월 7~8일경에 우리 부대는 제천을 경유, 원주 근처인 치악과 문막에서 후방경계 임무를 맡고 있었다.
1.4 후퇴 후 UN군은 수원, 용인, 여주 전선으로 복귀, 남한강을 도하(渡河)해서 양평을 탈환하고 홍천 근방으로 진출하는 중이었다. 드디어 중공군의 대부대와 미군 2개 대대가 지평면에서 맞부딪친 것이다.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였다. 여기서 뚫리면 다시 남한강 이남으로 쫓겨나는 매우 중차대한 전략적 전투였다.
우리는 지평 약 15km 후방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쌍방의 화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밤에는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하늘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우리 위치에서도 차량의 번호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환하게 밝았다. 공중지원도 그치질 아니했으며 계속 예광탄이 터져서 사방을 밝혔다. 2월 12~13일 이틀간의 영웅적 격전으로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좌절시켰다.
양평, 용문, 지평을 연결하는 중앙선 철도 연변이 중공군의 주저항선 이었는데, 전투 후에 버려진 시체, 그리고 각종 장비, 배낭 등이 산더미 같았다. 철도 터널은 모두 중공군의 지휘소로 쓰였던 흔적이 역력했다. 그 배낭 중 하나를 수습해 보니 볶은 콩과 옥수수가 들어 있었다. 이러한 부실한 식량으로 며칠을 버티며 전투를 수행했다니.
「징기스칸」이 서구를 침공했을 때 하루에 100~150km씩 말을 달려 엄청난 공격속도를 보인 것은 간편한 식량 덕분이었다 한다. 몽고의 바람과 땡볕에 잘 말린 양, 말, 쇠고기를 방망이로 치고 또 치고 해서 완전히 솜같이 만들어 휴대하면서, 마상에서 입에다 한 조각 넣고 물 한 모금 마시고, 입에다 넣고 또 물을 마시고 이렇게 허기를 간단히 해결하며 진격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효과적인 방법이었나!.
그런데 전투 중 미군들의 급식을 보면 하늘과 땅의 차이다. 그들의 C-레이션을 보라. 고기 깡통에 크래커, 과일 후식에다 껌, 초콜릿, 심지어 휴지, 담배까지 준비되어 있다.
세상에 이런 사치스러운 식단도 마다하고, 그들은 바로 전쟁터 고지 능선에서 최소한 하루 한 끼는 더운 음식을 공급받았다. 우리 KSC(한국전쟁시 한국노무단) 요원들이 등짐으로 져 나르느라 고생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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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게로 물자를 운반하고 있는 KSC 요원들의 모습(한국전쟁 시 한국노무단) [사진출처 : 전쟁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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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 차우”(chow, chow : 식사, 식사) 외치면 호, 교통호, GP, OP에서 불쑥불쑥 머리를 내밀고 기어 나와서 더운 음식을 받아먹고 무럭무럭 김이 나는 커피까지 한잔 끝내고 돌아간다.
조금 후방에 위치한 연대본부나 특히 사단사령부의 식당(Mess Hall)에 가면 24시간 뜨거운 커피가 끓고 하루 세끼를 점잖게 벤치 테이블에 앉아 hot meal을 먹는 것이다. 장병들의 복지 문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 하는 것이 미국 군대다. 어려운 가정에서 성장한 군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기 집에서 먹는 식사보다 훨씬 질이 좋다고 하는 이들도 많이 있었다.
배낭 속의 그런 후진 군량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적진지에 돌격하는 중국 공산군을 보면, 이념 무장이 아주 단단히 되어 있다고 느꼈다. 1970년대 초 우리나라가 Clay Super Computer를 처음 도입했을 때, 남한의 전력과 북한의 전력을 비교하기 위한 시뮬레이션 War game을 한 적이 있다. 이 때 북쪽에 15%라는 「프리미엄」가산점을 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이들 공산주의자들은 사상적 무장이 확고하다는 것을 말한다. 자유 민주주의란 그만큼 물렁하고 인간적인 것이다.
문막, 동화, 만종 등지에서의 약 2주간의 주둔을 끝으로 다시 본대(本隊)가 있던 제천으로 철수해서 제천역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많은 물자와 인원이 계속 북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