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하고 3일 동안 본부 내의 모든 주요 부서, K.S.C 대대본부, 그리고 예하 A, B, C 중대를 방문하고 인사를 끝냈다. 재미있는 것은 K.S.C 대대본부에는 대대장도 소위, 중대장도 소위, 모두 소위 투성이 인데 용케 지휘체계가 서있는 모양이다.
대대 위에 연대는 없고 예비사단이라는 상위 조직이 있어 모든 인사지휘를 받고 있었다. 예비사단에은, 준장 또는 대령이 사단장으로 있었다.
우리 배속 대대장은 이 소위(李 少尉)로 국민학교 교장으로 있다가 방위군사관 훈련을 받고 소위로 임관했으며, 본부중대장 황 소위는 대학 재학 중에 학도병으로 참전, 방위장교가 된 분으로, 우리와 나이가 비슷했으며 휴전 후 제대하고 고등고시에 합격해 판사생활을 하기도 한 엘리트였다.
그리고 미군 예하 3개 중대에는 각각 한국인 약 20여 명이 근무했고 통역 한 사람이 책임자로 있었다.
나의 근무 정위치는 S-2(Intelligence : 정보과)인데 장교가 2명, 선임하사와 행정요원 운전병 등 약 4, 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S-2 책임장교는 몸집이 레슬링의 헤비급에 해당하는 거구로서 짚차에 앉으면 창 위로 머리가 나오기 때문에 차 창문 위에 10여cm 되는 합판을 덧대 가지고 바람을 막았다. 오클라호마 출신으로 매우 호인이었다.
그리고 차석(次席)으로 중위 계급인 George R. Stevens라는 분이 한국인을 총괄하는 Korean Personnel Management Officer로 부임했다. 이분과의 운명적 만남이 여기서부터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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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텍사스의 호인 Sgt. Willlams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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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임자 Mr. Lee는 38선 이북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한국전쟁 전에 서울로 피난 와서 연세대학에 재학 중 사변이 났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가는 도중 잠깐 양양 고향집에 들러 봤으면 했다. 부대의 허락을 받고 미군 운전병과 차량을 지원받아 아침 새벽에 양양으로 출발했다.
인제를 거쳐 용대리에서 진부령을 넘기로 했다. 당시 태백준령을 넘기 위해서는 길이 두 개 밖에 없었다. 대관령 쪽과 진부령 쪽이다. 그나마 진부령은 국도이기는 하나 높고 험준해서 일방통행이었다. 이쪽, 저쪽에서 서로 거의 한 시간을 대기해야 넘어간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동해는 절경이었고, 김일성 별장이 있었다는 삼일포가 눈 아래 보인다. 간성을 지나 속초에서 약 30분 더 가니 양양읍이 나오고, Mr. Lee의 마을은 38선이 건너다 보이는 남쪽 고즈넉한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국도에서 마을로 꺾어 들어가니 50호 정도 되는 중간 크기의 취락이라는데, 서있는 집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네이팜탄> 공중 폭격으로 마을 전체가 소실되어 있었다.
눈 덮인 오두막처럼 모든 집들이 납작납작하게 폭삭 무너져 있다. 장독대만은 그 무서운 열을 견디고 군데군데 그대로 서 있다. 참말로 처참하고 처량했다. 소실된 이후 아무도 다녀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지옥의 테마공원이 이와 같을까? 전쟁의 잔인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Mr. Lee는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가까이 가보니 지방토호의 저택답게 꽤 규모가 커보였다. 이제 거기서 오래 머물 이유가 없다. 대문짝에 붙어있던 걸로 짐작되는 쇠 문고리 두어 개를 집어 들고 차는 다시 38선 쪽으로 향했다. 이제는 강릉으로 해서 대관령을 넘는 여로가 시작된다. 대관령 신작로는 굽이굽이 가파르고 험했다. 험한 길이 용케도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 졌구나 했다.
한 가지 희한하게 생각한 것은, 운전하는 미군병사가, 식사 때는 인근의 아무 미군부대든 들러 맡겨놓은 자기 밥처럼 챙겨먹고, 휘발유가 떨어지면 어느 미군부대든 밀고 들어가 여행증을 보이고 기름을 가득 넣고 해서, 참말로 편리한 여행을 한 것이다. 신용과 미국적 낙천주의가 그들 군 사회에서도 존재했다.
Mr. Lee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음날 횡성, 사무라치(삼마치) 고개, 홍천, 관대리로 해서 대암산으로 귀대했다.
전투공병의 첫째 임무는 대형 진지 및 주둔지 구축, 보급로의 신규 개설 및 유지 관리, 교량복구 및 후퇴 시 파괴, 그리고 자체방어능력 확보를 위한 전투력의 유지 등이라 하겠다.
대대장인 Joe Richardson은 정규육사(West Point) 출신의 쟁쟁한 직업군인이고, 올림픽 로프 줄타기(지금은 종목이 없어짐) 미국 대표선수 출신답게 체격도 아주 탄탄하고 군인정신이 확고했다. 미군이 왜 한국 이 외진 땅에 와서 피 흘려 싸워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아는 분이어서, 한국 근무자에게 이해가 많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예를 들어 2주에 한번 K.S.C에 차량을 지원, 남는 식량을 가져가 부식, 특히 김치, 고추장, 된장과 교환해 와서 부대원들의 구미를 돋우어 줌으로서 사기를 높이는 일 등, 건의하면 크게 군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 사인(sign)해 주었다. 이대장은 휴전 직후 내가 학교 복학을 위해 귀향하는 시점에서 한국 근무를 마치고 귀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