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바쁠 때는 TV를 전혀 보지 않았다. 혼자 시골에서 생활하다 보니 종종 무료하고 적적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말동무 삼아 TV를 보는데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는 온통 먹는 얘기와 건강뿐인 것 같다. 나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미식가인 편이라 음식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입이 맛나게 먹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몸이 건강하게 먹는 식보(食補)다.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에 환갑잔치를 하는 어르신이 드물었다. 그 때문에 나이 든 사람들의 공통된 소망은 장수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나처럼 80을 넘기고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세상이다. 이제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꿈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무병장수’가 소망이 되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기왕이면 건강하게 덤으로 행복까지 얹어 오래 살고 싶다. 그런데 이 나이에 이르고도 건강과 행복을 동시에 지키며 사는 방법을 다 알 수가 없다. 대부분 돈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삶의 변곡점을 수차례 오르내리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돈은 행복의 충분조건이지 필수 조건은 아니란 것이다.
또 행복의 가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 또 어떤 이에게는 직업이나 재산이 행복일 것이다.
친구들 중에는 ‘10년만 젊었으면’ 하고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에게는 떠나간 젊음이 곧 행복이리라. 하지만 젊은 청춘이라고 다 행복하겠는가. 뉴스만 봐도 요즘 젊은 세대들은 우리 때보다 더 고달프고 힘겨워 보인다. 그러니 젊음이 행복의 필수 조건도 아닌 것이다.
나이 들었다고 젊음을 아쉬워하는 이는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들 달라지는 것이 없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차라리 그런 후회를 하기보다, 지금 자신의 나이에 맞는 행복을 찾으면 된다. 10년만 젊었으면 하고 말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이미 늙어가고 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나이의 숫자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공평하다 생각한들 도리가 없다.
팔순이 된 순간부터 나는 ‘오늘’을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 생각 하기로 마음 먹었다. 어린 시절 동네 어르신들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하더니 노인이 된 나 역시 살아 숨쉬는 ‘오늘’ 이 순간이 더없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비록 육체는 녹슬어 무너지고 정신을 한탄하고 슬퍼한들 부질없다. 먹을 만큼 배불리 먹은 나이를 오히려 즐기고 인정하며 남아있는 날 기를 쓰고 최대한 즐기는 것이 건강한 삶을 위한 지혜이자 행복일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또 하나의 방법은 자기중심을 잘 잡는 일이다. 요즘 시국을 보면 대한민국 전체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자고로 맹자는 집에서 기르던 개나 닭을 잃어버리면 눈에 불을 켜고 찾지만 정작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잃고 찾을 줄 모른다 했다. 사람이 개나 닭만도 못하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거창한 인생철학도 실천할 수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남의 생각이나 의견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가장 자기다운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정답일 것이다. 행복은 절대가치가 아닌 상대가치다. 남의 기준이나 정의는 의미가 없다. 내인생에 맞게 만들어 가고 느끼는 것이다.
또 놓치거나 떠나보낸 것을 후회할 필요도 없다. ‘우자(愚者)는 후회뿐인 과거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현자(賢者)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시간을 만든다’라고 하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지난 과거가 아닌 지금 현재고 다가 올 미래다.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무의미한 후회 속에서 흘려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노년의 인생에 남아 있는 하루하루는 기대하지 못한 연말 상여금 같은 것이니 하루하루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자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일상의 모든 것을 오늘 처음 만난 아이처럼 호기심 있게 바라보고 개구쟁이처럼 즐기자는 말이다. 지금 나는 인생에서 가장 젊은 ‘오늘’을 잘 살아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