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좌절했던 시간들 (25화)
  제4장 세상 속으로

두 번째 시련은 명지대학교 근무 중에 일어났다. 나에 대한 유상근 이사장의 신뢰와 애정이 각별하자 다른 교직원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마침 그때 소형영화를 배우기 시작할 때라 나를 두고 이야기를 지어내기 딱 좋은 시기였을 것이다. 본래 남의 이야기를 하지도 듣지도 않은 성격이라 나를 음해하는 소문이 나돈다는 것도 한참 동안이나 몰랐다.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학생처 정성훈 선생과 회계과 최인범 선생이 술자리를 제의했다. 죽마고우처럼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사이라 응당 평소와 같은 술자리려니 생각하고 퇴근 후 서둘러 갔는데 두 사람의 얼굴빛이 어두웠다,

“장 선생은 이런 소문쯤이야 한 귀로 흘려들을 거라 생각하네. 우리처럼 장 선생 인품이야 아는 사람은 다 알지 않나. 크게 마음 상하지 말게나.”

내용인즉 유상근 이사장의 총애를 믿고 내가 학교 일은 등한시하고 되지도 않는 영화를 찍는다고 자기 멋대로 다닌다는 음해였다.

순간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날이 등에 날아 와 꽂히는 기분이었다. 분노를 넘어서 황망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영화를 시작하게 된 것이 직장생활에 누가 될까봐 누구보다 가슴 조리며 신경 쓴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래서 잠도 줄여가며 남들 보다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까지 일했다. 내 몫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해 행여 동료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게 될까봐 걱정되어서였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곁에서 누구보다 많이 지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나를 비방하고 음해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런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 사람은 평소 나와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교직원이었다.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앞이 깜깜 했다. 하지만 “진실은 거짓을 이기는 법”이라며 소문이 잦아들기를 인내하고 기다리라는 두 절친 선생들의 조언으로 나는 어떤 맞대응도 하지 않고 내 할 일을 더 열심히 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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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이내 소문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후로도 그 교직원은 수차례에 걸쳐 나를 중상모략했다. 투서한 죄목도 참으로 다양해서 휴가비 명목의 금품수뢰, 강사료 착복, 성희롱사건, 기부금 입학 등등 끝도 없었다.

처음에는 마냥 억울하고 분하던 마음이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해 겪다보니 체념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다시 무감각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온갖 죄질은 다 갖다 붙여 지치지도 않고 투서를 해대니 유상근 이사장도 나를 한직으로 내려 보낼 고민에 빠졌다. 그 투서 내용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 나쁜 소문들이 떠도니 학교 이미지까지 나빠질까봐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거듭되는 투서에도 별 다른 조치가 없던 유 이사장도 결국 나를 시청각 교재 과장으로 발령을 냈다. 누가 봐도 분명한 좌천이었다. 하지만 투서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어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나를 둘러싼 소문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조용한 자리로 보내 조금이라도 추문을 잠재워보려는 심사였던 듯하다. 왜냐하면 그리 오래지 않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한 비루하고 치졸한 음해의 주인공이 된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사람에게 입은 상처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고 꼿꼿하게 시간을 견뎌나갔다. 여전히 등 뒤에서는 무성한 소문들이 들려왔지만 불안하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나는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교직원이 내가 저지른 죄라고 말하는 그 어떤 항목에도 진짜 나는 들어있지 않았다. 스스로가 결백하고 깨끗한 것을 알기에 한직으로 쫓겨나는 처분을 받아도 부끄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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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조용히 시청각실에서 지내며 한가한 시간이면 더 열심히 영화자료들을 찾고 시나리오 구상을 하며 인내의 시간을 견뎠다. 그리고 이렇게 보낸 시간이 내겐 영화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왔다. 첫 단편영화 ‘신록의 청춘’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작품으로 한국 소형영화 동호회 창립8주년 기념 콘테스트에서 입상하는 영광도 얻었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위기의 시간이 오히려 내 인생에 또 다른 기회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인생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들의 연속이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해서 아무 사심 없이 그저 취미로 소형영화를 배워나갔을 뿐인데 이 시작으로 인해 내 삶이 우리나라 단편영화의 발전에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다시 생각해도 그 때 단편영화를 시작한 것은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초당기념관에도 지난 시절 내가 찍었던 단편 영화들과 그 당시 찍었던 기록들이 여러 편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을 찾아 준 관람객들을 안내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UNICA 한국회장 직에 아직도 매여 있었다면 지금처럼 걸어 온 지난 삶을 관조할 시간조차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쉽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생의 마지막을 좀 더 우아하고 여유 있게 회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내가 기대하고 소망하던 마지막 모습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한국 영화를 위해 열심히 일했고 이런 나의 노력 덕분에 많은 이들이 기뻐하고 꿈을 가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즐겁고 행복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힘든 시간을 통해 삶의 지혜를 또 하나 깨달았다.

우리는 매일 같이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기와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마음의 짐이나 고통이 될 수도 있고 지금 보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발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인생이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좌절하지 말고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분명 행운 같은 보상이 따라 올 것이다. 나의 인생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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