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를 채우지 않은 경북중고 재경36동창회장_2 (27화)
  제4장 세상 속으로

대한민국에서 인맥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씁쓸한 이야기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가능한 그 상대가 직업적, 경제적으로 우수한 사람일수록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경북고 합격 소식이 알려졌을 때 부모님은 물론 예천군 전체가 기뻐해주었다. 경북고가 어떤 곳인가. 117년의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고 5만 여명의 동문들을 배출한 학교가 아닌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정계, 관계, 재계, 예술계 등에서 걸출한 인재들을 배출해내 한국 근대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낸 경북고등학교 학생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내가 인생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 마냥 대단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이 지금도 경북고 총동창회 모임에 가면 TV에서나 보던 수많이 많은 유명 인사들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우리 세대에 경북고는 대한민국에서 날고 기는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드는 명문사학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창시절에는 절친한 친구가 많지 않았다. 사내들에게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는 평생의 벗으로 남는다는데 정작 나는 인생에서 10대 시절만큼 정신없이 살았던 시기가 없었다. 공부에만 매달리기도 부족할 판에 시간이 날 때마다 온갖 아르바이트에 매달려 살아야 했다. 자연히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대화를 나눠 볼 시간도 부족했다. 그러니 졸업 때까지 각별한 우정을 나눌 친구도 하나 만들기 어려웠던 것이다.

오히려 그 시절 친구들과는 나이 들어가면서부터 황혼 우정이 생겼다. 사회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 친구든 평범한 범부(凡夫)의 삶을 살든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경북고 출신이라는 공통의 자긍심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동창회에 나가면서 나를 믿고 따라주는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자연히 모교를 위한 책임과 역할도 따랐다. 동기들 가운데는 워낙 쟁쟁한 이력을 가진 이들도 많지만 정작 모교를 위해 일을 맡아달라면 ‘시간이 없다’ ‘자질이 부족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사양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동창회 회장이란 역할은 봉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고서는 맡기가 쉽지 않는 자리다. 대단한 명예가 따르는 것도 아닌데 해야 할일과 책임은 적지 않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취합해 최선의 결론을 도출해 내야하고 그 결과에 불만을 가지는 소수의 인원들 역시 다 감싸고 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다.

동창들의 적극적인 추천과 권유로 2014~2015년도 경북고 재경36동창회장으로 피선되어 2014년도 1년간을 활동하다가 UNICA활동을 이유로 사임을 했다. 회장으로 선출될 당시 UNICA 협회장직도 후배들에게 물려 줄 생각을 하고 있던 때라 시간적 여유는 있었지만 동창회 회장직을 맡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춘 동기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워낙 쟁쟁한 이들이 많아 회장인 나를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라줄 것인지 확신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기들은 내가 고심해 준비한 여러 기획들과 리더십을 신뢰하고 잘 따라 주었다.
 
▲ 경북고 36회동창회 정기총회 (2010. 2.)

덕분에 <동문고향 찾아보기> 행사 등을 마련해 재경36회 동창들과 내 고향 용문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 향민들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또 특별한 취미거리가 없던 시절 독서와 영화 감상만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지난 날을 추억해 <춘천 김유정 문학촌>으로 문학 여행을 떠난 적도 있었다. 하루 코스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춘천의 명물 막국수와 닭갈비로 점심을 먹고 김유정 문학관을 둘러 본 후 레일 바이크를 타고 관광을 하며 아이처럼 즐거워하던 친구들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그리고 동문 고향 찾아보기의 첫 번째 행사로 나의 고향 용문을 전세버스로 다녀왔었다. 황혼에 접어든 친구들에게 소박하지만 행복한 하루를 선물한 것 같아 마음 뿌듯하고 보람 있었다.

처음 회장직을 맡게 되었을 때도 오래 할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사임은 생각보다 일찍 하게 되었다. 자문위원을 맡고 있던 동기들 몇 명과 의견 차이로 인한 결정이었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일한다고 했는데 그런 문제까지 생기니 마음이 무거웠다. 어차피 다른 업무가 바빠 오래 맡을 생각도 없었기에 조금 일찍 물러난다는 생각으로 사퇴를 했다.

이런 소식을 접한 많은 동기들은 급작스런 사퇴에 아쉬움을 표하며 나를 위로했다. 그 중에서도 재경36 동창회 중 친목소모임을 맡아 멋있게 모임을 이끌어 가고 있는 김정수 회장의 편지는 어떤 말보다 따뜻한 이해와 걱정을 담고 있어 내용을 전재하고자 한다.

장 회장!! 고향의 전원생활을 즐기며 좋은 공기 마시고 유유자적하고 있을 것으로 믿네.
 
지난 11월 29일 사당동 ‘배나무골 식당’에서 친우 7명이 모두 모여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하면서도 화기애애하게 담소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나, ‘장 회장’의 불참으로 모두 앙꼬 없는 찐빵, 같은 허전함을 토로하였다네.
 
특히 이기완 사장은 ‘유니카’ 외국 총회에도 참가하여 장 회장의 심한 코골이를 견디며 비서노릇도 하였으나 작년 동창회의 자문위원 몇 사람 탓으로 장 회장이 본의 아니게 자진 사퇴했다는 사실을 모두 이해하고 있고 또 인사동 한식당에서 자신과 이동호 교수, 나 그리고 최영환 교수 모두 동창회장직을 1년 더 참고 견디라고 간곡히 부탁 했는데도 장 회장이 오해한 듯 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네.
 
그 간의 일은 친구들 모두 특히, 장양식, 이규직, 최교수 등 너무 잘 이해하고 있으니 명년 모임(이 기완 사장이 한턱 쏜다고 했음) 에는 꼭 참석하시기 바라네.
 
작년에 최 교수가 나에게 1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이제 우리도 80고개를 넘으면서 점점 기력도 떨어지고 몸의 저항력도 줄고 근력도 약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네. 돌이켜 보면 지난 세월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정이었는데 앞으로 남은 인생은 얼마나 될지. 아무쪼록 건강에 주의하여 자중자애하며 마음의 여유를 갖고 평안하기를 비네“
 
장 회장의 유쾌한 담소와 ‘유머러스’한 얘기, 너털웃음이 새삼 그리워지네. 우리 친우 모두의 소망이니 명년 모임(언제가 될지 모르지만)에 부디 꼭 나와 주기 바라네.
 
추신 ; 이 동호 교수의 ‘논고’ 한편 송부하니 읽어 주시기 바라네.
2015. 12. 1
김정수로부터

짧은 한 통의 편지지만 읽고 나니 가슴에 맺힌 작은 응어리가 씻은 듯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학창 시절 간절히 바라던 우정을 만들 기회가 부족했던 것이 늘 아쉬웠는데 나이가 들어 이렇듯 따뜻하고 두터운 속정을 가진 벗들과 우정을 쌓아갈 수 있으니 정말 황금같이 귀한 황혼의 노년이다. 기운을 추스려 두었다가 다시 따뜻한 봄날, 꽃잎 만개한 나무 아래 모여앉아 오래 전 10대 사내아이 시절로 돌아가 희희낙낙 재미나게 놀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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