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제자들이나 후배들을 만나면 항상 이런 조언을 한다. 직장 업무든 취미 생활이든 하기 싫거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그 일을 처음 시작하던 순간의 자신을 떠올려 보라고 말이다. 첫 출근 할 때 가슴 설레던 순간, 좋아하는 일을 배우게 된 첫 날의 다짐을 기억할 수 있다면 어떤 일에도 중도 포기나 실패할 확률은 훨씬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에 또 다시 촬영회에 참석할 수 있을 지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후배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벌써부터 기대하는 건 그런 날이면 이제 과거의 시간이 된 나의 지난 열정과 초심을 떠올릴 수 있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그런 순수한 기회를 자주 만날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언제나 삶의 ‘초심’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의 위기가 한국 소형영화 주역을 만들다
일생을 사는 동안 누구나 한 번 쯤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인생은 내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열심히 준비한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목표가 무산되고 간절히 바라던 소망은 깨어져 사라져 낙담하는 날들이 더 많은 것은 우리 인간의 진짜 삶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생을 살면서 과연 위기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기회도 있다. 그렇다면 기회와 위기는 서로 별개의 것일까? 아니다. 기회와 위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Crisis라는 영어단어는 위기와 기회의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 말 그대로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삶에서 기회와 위기, 위기와 기회가 서로 반복되며 나타나는 것을 경험한다.
운이 좋았던 탓인지 나는 그다지 굴곡이 많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어린 시절 겪었던 가난은 불행이라 말하기 어렵다. 비단 나뿐 아니라 그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고단함이었고 생의 무게였다.
오히려 가난했기 때문에 나는 성실과 인내를 배웠고 그 미덕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게 수많은 장점이 되어주었다. 직장운도 좋아 첫 직장이 평생직장의 행운을 만났다. 인복도 나쁘지 않았다. 주변에는 언제나 내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 따뜻한 지인들이 많았고 내 인생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 갈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인생에서 찾아 온 두 번의 위기는 마음에 적잖은 상처와 고통을 남겼다.
소형영화를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내 인생에는 기대하지 못한 과분한 것들이 복처럼 굴러 들어왔다. 주변에서는 다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라고 말해주지만 나이 탓인지 요즘은 지난날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사실 장편영화나 상업 영화냐 장르를 따지지 않는다 해도 나는 한국 영화계에서 이단아 같은 존재다. 그동안 한국영화인들 사이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규칙과 코스 같은 것이 존재해 있다. 그런데 나는 정말 순수한 아마추어 영화인으로 출발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종상 영화제 심사위원직까지 맡았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서울 국제 아마추어 영화제 한국 대표와 세계적인 비상업 영화계의 한국 대표까지 역임했다.
한국의 영화인들이 전통적으로 밟아오는 길을 걸어 온 영화인들도 많은데 어디서 듣고 보도 못한 존재가 단편영화계의 수장이 되니 적잖은 반감도 생기련만 다행이 나를 둘러싼 영화인들의 시기나 질투로 인한 사건은 그리 많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