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작가협회 회장으로 일하며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세계영화제에 참석을 해왔다. 그때 마다 새삼 놀라웠던 것은 외국의 영화제는 단순히 참가자들이 작품을 채점하고 평가해 상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준비과정부터 세계 단편 영화인들을 위한 문화축제의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초대를 받아 참석하는 영화인들도, 영화제를 준비하는 주최 측도 자국에서 열리는 영화제라는 행사를 통해 세계 영화인들이 다 같이 지구촌 축제의 장을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 그래서 영화제 기간에 자신들 나라의 특색 있는 문화나 개성이 느껴지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다른 나라 대표나 회원들과 함께 즐길 거리들을 제공한다.
원래 여행을 좋아했지만 영화 일을 하게 되면서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에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지역을 여행했다. 소형영화협회장 시절에는 제한된 소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회원들을 위해 좀 더 프레임을 넓혀 넓은 세상 안에서 무엇을 찍을 것인가 고민해 보자는 마음으로 해외 원정 촬영길에 자주 올랐다. 참가는 회원들 각자의 자율 의사였기 때문에 원하는 이들만 참여를 했는데 갈수록 참여를 원하는 회원들이 늘어났다.
해외 촬영지는 대만, 하와이, 말레이시아, 사이판, 괌, 카나다, 미국 등 여러 곳이었다. 국내 보다 촬영 준비나 여건 등은 다소 불편했다. 우선 언어적 불편이 있으니 뜻하는 대로 촬영 준비가 용이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일단 작품 촬영에 들어가면 회원들 모두 더할 나위 없이 만족감을 표시했다. 우리나라 자연도 아름답지만 그것과는 다른 각자 그 나라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과 향기가 고스란히 카메라 안에 담겨왔기 때문이다. 정작 나는 회원들이 좀 더 편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이런 저런 일들을 신경 쓰고 준비해주느라 그런 여행길에서 내 작품은 많이 찍지 못했다. 그래도 그곳에서 찍은 작품들로 각종 상을 받는 회원들도 생겨 더없는 보람으로 생각 되었다.
이렇게 세계 곳곳으로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회원들과 나 사이에는 더 깊은 신뢰와 믿음이 쌓여갔다. 특히 낮에 바쁘게 다니며 촬영을 마친 후 저녁에는 다 함께 모여 가볍게 약주를 곁들인 다과를 즐겼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대부분 우리나라 단편영화의 미래와 앞으로 우리가 후배 영화인들에게 무엇을 남겨 주어야 도움이 될 수 있을지였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보이지 않는 끈끈한 동지애가 나와 회원들 사이에서 자라나는 것 같았다.
태어나 내가 가장 먼저 참석한 세계 영화제는 1984년 10월 스페인에서 개최된 제6회 국제아마추어영화제였다. 당시 나는 소형영화협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주최 측은 대회 개막식 두 달 전에 출품 요청 공문을 보내왔고 우리나라 협회 임원들은 회의를 거쳐 내 작품<울릉도>를 출품하기로 결정했다.
초창기부터 나의 작품은 독특한 창의력과 기획력, 그리고 아이디어로 남다른 작품성을 만들어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것은 아마 내가 가장 한국적인 주제와 우리나라 중에서도 한국의 정서가 가장 깊이 느껴지는 소재들을 주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전까지 개인적으로 해외여행을 가 본적은 없었고 전국대학교 교무과장협의회나 학생과장협의회로 가거나 명지대학교 교수진들과 직원들의 해외 연수 때 함께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내가 만든 작품을 들고 첫 해외 국제영화제에 참석이라니, 떠나기 전부터 가슴이 쉴 새 없이 두근거렸다. 수상에 대한 욕심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다른 나라에서 온 참가자들과 만나 세계 각 나라의 단편영화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그 나라 영화인들의 작품 활동의 방향 같은 귀한 정보들을 나눌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행운처럼 느껴졌다.
스페인 영화제 이후 많은 영화제들로부터 초청장을 받았다. 하지만 그 당시 국내에서 해야 할 업무가 많고 직장인 명지대학교 업무도 많았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본격적으로 해외 국제영화제에 참석하게 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개최한 서울국제아마추어소형영화제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이후였다. 국제영화제가 잘 끝나자 해외에서도 한국 단편영화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는데 매년 많은 나라에서 한국 대표인 내 앞으로 초청장을 보내왔다.
그렇게 해서 다시 참석하게 된 영화제가 1989년 아프리카 튀니지 국제아마추어영화제와 1990년 제12회 벨지움 세계아마추어영화제였다. 튀니지 켈러비아국제아마추어영화제 준비위원회는 제1회 서울국제영화제에는 참가하지 않은 나라였다. 하지만 1964년부터 국제아마추어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던 나라로 국제 아마추어영화제 쪽에서는 상당히 전통 있는 국제영화제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튀니지 측에서도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가 성공적으로 끝난 제1회 서울국제영화제에 대한 소식들을 접한 후 우리 협회에 공식적인 초청장을 보내왔다. 경비 일체를 부담하겠으니 꼭 참석해 달라는 적극적인 프로포즈였다. 마침 시기가 대학교 방학 기간이라 아프리카의 한 나라인 튀니지가 어떤 나라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전통이 오래된 국제영화제이기에 한번 참석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번에도 꼭 수상에 욕심을 내기보다 튀니지 사람들이 먼 나라 한국을 이해하고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1986년에 만든 나의 기록영화<내 마음은 하나>를 작품으로 출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