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가 세계 속의 영화인이...

제68회 UNICA총회와 세계영화제 개최 이후 각 나라 대표들 사이에서 UNICA한국협회에 대한 신뢰감과 평판은 날로 좋아졌다. 특히 회장인 나에 대한 개인적 호감도와 관심은 한층 높아졌다. 어려서부터 숫기는 없었지만 낯선 사람과 자연스럽게 말을 섞는 재주가 있었다. 우스개 소리지만 우리나라가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개최국 선정이라는 영예를 얻고 또 많은 나라 대표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UNICA한국협회 회장인 나의 타고난 사교성도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UNICA 각국 회장들 사이에서 ‘장찬주식하트 인사법’은 유명하다. 처음에는 서먹한 분위기를 반전시켜 볼 요량으로 우리나라 청소년 아이들이 하는 것을 흉내내어 단상위에서 각국 대표들을 향해 양손을 머리 위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였는데 이것이 요즘 아이들 표현대로 ‘대박’ 히트를 친 것이다. 딱딱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모두 유쾌하게 웃으며 열심히 나를 따라 하트를 날리기 시작했다.

그 날 이후 다른 나라 회장들이나 회원들은 나만 보면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비록 언어는 달라도 몸이 표현하는 사랑의 메세지는 만국 공통어였던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UNICA한국협회 장찬주 회장은 ‘친근하고 유쾌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누구와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각국 대표들과 친분이 쌓여 갈수록 UNICA 총회에 참석하는 나와 한국 회원들은 매번 특별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 UNICA영화제에서 하트 인사를 하는 필자

룩셈부르크 세계영화제에 참석했을 때는 비안덴 시장이 주최하는 초청만찬장 헤드 테이블에 임원진과 초청 인사들을 제외한 유일한 회원국 대표로 자리를 함께 해주었다. 또 불가리아 세계영화제때는 바루나 영화인 협회장 부부가 흑해를 구경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나의 말에 바쁜 시간을 내어 흑해 관광을 시켜주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진주라 불리는 튀니지 영화제에 참석했을 때에는 문화부장관이 직접 자신의 차로 마중을 나와 나를 태우고 튀니지의 유명 관광지를 전부 구경시켜준 적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특별 대접도 2012년 오스트리아 에벤세에서 열린 제 40회 국제영화제때와 비교하면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그 대회에서 한국 대표인 나는 어떤 나라 대표보다 최고의 귀빈 대접을 받았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유명 인사들을 두고 한국 대표인 내가 국제영화제 개회식 축사를 맡은 것이다. 이런 파격적인 전례가 없었고 앞으로도 유례가 없을 거라며 다른 나라 대표단들은 하나같이 부러워했다.

축사에 이어 에벤세 시장과 단 둘이 영화제 개막을 알리는 테이프 커팅을 하는 영광도 누렸다. 또 네델란드 헬렌에서 열린 UNICA 본부임원회의에 참석했을 때는 UNICA본부 얀 에싱(Jan Essing)사무총장 부부가 도착지인 독일 뒤셀도르프 공항까지 직접 영접을 나와 주었다. 헬렌으로 오는 항공편이 여의치 않아 가까운 뒤 셀도르프를 선택했는데 사정을 알게 된 에싱 사무총장 내외가 나의 편의를 위해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UNICA회원국으로 가입해도 항상 크고 작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지금은 세게적으로 한국영화의 위상이 높아져 어디를 가도 대접을 받지만 당시만 해도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갖고 있었다. 그 때문에 회장인 나 역시 일부 유럽 대표들에게 보이지 않는 차별과 무시를 당한 적이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 일부 사람들이 가난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무시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동이었다.

▲ 2002년 룩셈부르크 영화제에서

그러나 누군가에게 깊이 뿌리 내린 편견을 억지로 버리게 할 방법은 없다. 상대가 나의 진실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 부정적인 생각을 바꿔주는 것만이 최선이다. 나는 그렇게 해왔다. 불평하고 비난하는 대신 한국이 가난으로 헐벗고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는 불안한 나라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눈부신 경제 성장과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천년의 역사를 가진 숨겨진 아시아의 보석 같은 나라’라고 열심히 홍보하고 자랑했다. 처음에는 미심쩍어 하던 유럽의 대표들도 점차 내 말에 수긍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때 대놓고 무시했던 한국대표인 나를 자신들의 ‘베스트 프렌드’로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어디서든 나를 대접해 주고 위해주는 그들의 우정은 바로 나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를 존중하는 마음이기도 한 것이다.

오랜 시간 우정을 쌓아온 각국의 UNICA 회장단들은 나와 친구로 만난 것을 행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정한 행운아는 바로 나 자신이다. 소형영화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UNICA한국본부장과 회장직을 맡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인생에 이토록 좋은 인연들과도 만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인연은 시작이 좋은 것보다 끝이 좋은 인연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내 인생에서 만난 UNICA 각국 대표들과의 인연은 시작과 끝 모두가 눈부시게 좋았다. 한없이 베푸는 따뜻한 사람들과 연을 맺는 것처럼 삶에서 큰 복이자 위로는 없다.

이제 남은 일은 이 모든 소중한 인연들과 잘 마무리 하는 일일 것이다. 인간적으로 부족함 많은 사람을 넉넉하고 풍성하게 채워준 고마운 사람들인 만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별을 나눌 것이다. 언젠가 또 다시 그 무엇이 되어 만날 것을 꿈꾸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