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도 제 75차 UNICA 총회와 제75회 UNICA 세계영화제를 한국의 제주도에서 개최하려던 계획이 그 지역 정치인의 방해로 결국 무산된 일이었다.
그 해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경제 불황으로 참가국 회원들에게 제공해야 할 항공권 문제와 제주도에 급격히 늘어난 동남아 관광객들로 인한 교통 문제 등으로 영화제 개최지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시간은 촉박한데 대안을 찾아야 하기에 급히 인천과 고양시로 개최지 변경을 추진했지만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공무원들 때문에 여의치가 않았다.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대체할 도시를 물색했지만 모두 이런저런 사정을 들어 개최지 선정에 난색을 표했다. 지난 대구와 경주 영화제를 통해 한국 UNICA의 열정을 믿고 다시 개최지의 영광을 맡겨 준 세계 각국의 회원들과 본부 임원진들 모두에게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
결국 UNICA 본부에 상황보고일인 2012년 12월말과 최종 연기일인 1월20일까지도 우리나라는 다른 개최도시를 결정할 수 없었다. 수많은 고심 끝에 도의적인 책임을 지기로 결심하고 2013년 정기총회에서 UNICA 한국영상예술협회 회장직을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막스 핸슬리 총재를 비롯해 각국 임원진들 그리고 우리나라 협회 회원들 모두 만류했지만 가장 큰 책임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당시의 결정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 된다.
다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여러 모로 부족함이 많았던 것 같아 한동안 자책감으로 괴로운 날들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아니더라도 더 큰 능력과 인품으로 한국 UNICA를 이끌고 갈 인물은 많았다.
내 결심에 따라 협회는 정기 총회에서 신임 회장단을 선출했고 김용호 부회장을 UNICA 한국대표로 선출하였다. 2006년부터 매년 UNICA총회에 빠짐없이 참석했던 김 부회장은 대회 기간 내내 회장인 내 곁에서 여러 일들을 물심양면으로 보좌해 온 터였다. 따라서 누구보다도 UNICA의 실무를 잘 처리해 나갈 능력을 갖춘 분 이었다.
바라던 대로 유능한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 줄 수 있어 마음의 부담감은 한결 덜 수 있었다. 또 국내 활동 분야인 사단 법인 UNICA 한국영상예술협회 협회장으로 선출된 신동영 회장은 이미 수많은 영상제를 통해 우수 작품을 선보여온 재능 있는 영화인이다. 우수한 작품을 보는 탁월한 안목과 정확한 비평 능력까지 인정받아 여러 영상제작 선발대회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분명 앞으로도 오랜 세월 열심히 공부하고 체득해온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 활동과 후진 양성에 열정적으로 매달릴 것이다.
특히 두 분 모두 영상업계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만큼 앞으로 한국 UNICA 협회가 장족의 발전을 해나가는데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렇게 능력과 인망을 갖춘 두 분께 책임을 맡기고 물러나니 일말의 후회나 미련도 남지 않았다.
단 하나 퇴임 이후에도 계속 마음이 상했던 것은 미처 다하지 못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세계 영화인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참담함과 부끄러움이 쉽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일로 한때 참으로 심한 가슴앓이를 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시간들이었기에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