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10대 제자들 중 한 사람인 자유(子游)는 인간관계에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특히 자하(子夏)와 더불어 문학으로 큰 명성을 얻었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던 자유는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까지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만나고 사겨본 사람들 중 좋은 인재(人才)가 있으면 반드시 스승인 공자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천거했다.
공자는 어진 사람을 알아보고 크게 쓰이도록 가르치는 일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덕행(德行)중 하나라고 여겼다. 이런 공자와 자유(子游)사이에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자유는 작은 시골 마을 백성들에게 조차 예악(禮樂)으로 다스렸다. 공자는 이를 두고 자유(子游)에게 “닭을 잡는데 어찌 소를 잡는 칼을 쓰느냐”는 농담을 던졌다. 이 말은, 나라를 다스리는 도(道)인 예악(禮樂)을 어찌 작은 시골 마을을 다스리는데 사용했느냐는 의미의 가벼운 농담이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자유(子游)가 대답했다.
“예전에 스승님께서 군자가 도(道)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道)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말씀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자의 대답에 부끄러움을 느낀 공자가 말했다.
“제자들아! 자유의 말이 옳다. 조금 전 내가 한 말은 농담이었다.”
이처럼 신분의 귀함과 낮음을 가리지 않고 스승으로서의 자기 책임인 ‘가르침’ 그 자체에 성심을 다하여 오히려 스승인 공자에게 깨우침을 줄 정도로 크게 인정을 받은 이가 바로 자유였다. 스승의 명성에 기죽거나 제자의 처지를 따지지 않고 자유는 가장 근본적인 마음을 중시하며 그 자체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많은 장점 중에서도 나는 자유의 이 점을 가장 큰 덕목으로 평가하고 싶다. 작은 일도 배움에 있어서는 정성을 다하고 소홀히 여기지 않는 마음은 이미 그 자체로 성공 그 이상의 가치를 가졌다 할 수 있지 않은가.
명지대학에서 오랜 기간 재직하는 동안 수많은 제자들을 만났고 또 소형영화와 UNICA한국본부장 재임기간에도 많은 제자들을 육성하고 배출해냈다. 그런데 똑같은 가르침을 주어도 자유처럼 그 이상을 깨닫고 따라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스승의 교육방식에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나 역시 인간인지라 내 지도방식을 존중하고 잘 따라주는 제자들에게 솔직히 더 마음이 갔다. 그렇다고 각자의 개성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교육방식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무궁한 성장 가능성을 가진 어린 나이니만큼 모든 학생들이 ‘다 비를 품은 구름이다’하는 기대어린 심정으로 정성껏 가르치고 지도해 왔다.
다만 학생들의 태도에서 어떤 일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가짐만큼은 절대적 평가기준으로 삼았다. 작은 일에 착실한 성품의 학생들은 어떤 일을 맡겨도 거뜬히 해낸다. 학교 행사든 MT든 과제든, 영화작품을 제작하는 일이든 매사에 진심을 다해 목표를 이루려 노력하기 때문에 업무능력이나 완성도도 높은 것이다. 인생은 이렇게 작고 하찮은 일부터 정성껏 마음을 다하는 습관이 쌓이다 보면 큰 일을 맡겼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게 되는 법이다.
학창 시절 나는 꽤 모범적인 학생으로 알려져 왔다. 학교 친구들 중에는 넘쳐나는 사춘기에 수컷 호르몬을 감당하지 못해 종종 일탈행위를 하기도 했지만 나는 학교와 세상이 지키라고 정해준 것은 철저히 엄수하여 모범적으로 지냈다. 말하자면 어른들 말씀과 규칙에 순응하는 순한 학생이었던 것이다. 그런 태도 덕분에 학교 선생님들의 사랑과 기대 속에서 정해진 순리대로 착실히 성장해 올 수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많은 스승들이 나, 장찬주에 대해 진심으로 높이 평가해 준 것은 학급에서 임원을 맡든 아니든 자리의 크고 작음을 떠나 어떤 자리에서든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열심히 해내는 착실함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장점은 돌아가신 선친의 유산이었다. 특출한 재주나 솜씨를 가진 분은 아니었지만 부친은 하찮은 일에도 세상없이 대단한 일인 냥 갖은 정성을 쏟는 분이셨다. 가끔 주위 친구들의 부친 중에는 아내에게 집안 일 모두 떠맡긴 채 주색잡기에 빠져 세월 가는 줄 모르는 양반들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책임을 절대 누구에게 떠넘기는 법이 없었다. 때때로 고지식할 정도로 강한 그 책임의식과 성실함이 답답하다 느낀 순간도 있었다. 자식인 내 입장에서는 우리 가족이 손해 보는 것만 같아 안타까웠지만 주변의 평판은 달랐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철저히 준비하고 신중하게 일을 처리해 나가시는 탓에 항상 아버지 주변에는 믿고 따르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명지대학에서 학생과장과 교무과장, 재단총무부장 등을 거치는 동안 학교와 재단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으며 업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아버지로 부터 물려받은 근면성실함 때문이었다.
오래 전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 작은 개미들은 땅 속 6자 깊이에 있는 흙 15톤을 지면으로 옮기는 것처럼 사람은 몇 시간에 걸쳐 올라갈 정도의 큰 언덕을 만든다고 한다. 개미 한마리가 꾸준히 날라봐야 그 양이 얼마나 될까. 인간의 눈으로 보면 정말 미미한 양일 것이다. 그 하찮은 양을 쉬지 않고 조금씩 옮겨 큰 산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작은 성실함이 빚어낸 거대한 기적이 믿기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지난 삶의 이력을 통해 그 가치를 몸소 배운 사람이다.
명지대학의 초창기였던 서울문리사범대학에서 근무하던 시절 아침 출근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늘 새벽 철길 위를 뛰어 다녔다. 당시 내가 살던 연희동은 행정 지역상 경기도권에 속했기 때문에 교통편이 열악했다. 서울문리사범대학이 있던 서소문까지 출근 시간에 맞춰 도착 하려면 새벽같이 서둘러 집을 나서야 했다. 때로 며칠씩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죽은 듯 잠든 밤도 있었고 심한 몸살로 밤새 앓은 날도 많았다. 그럼에도 아침이면 기계처럼 눈을 떠 익숙한 그 길을 부지런히 달렸다. 그렇게 30년이 넘도록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지각이나 결근을 한 적이 없었다.
어떤 이들은 결근 한번 하는 것 쯤 어떠냐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작은 기본원칙을 지키려 최선을 다하는 태도에서 그 사람의 삶 전체에 대한 태도가 평가받는 법이다. 중용에도 곡능유성(曲能有誠)이라는 말이 나온다. 굳이 풀이하자면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결과도 좋게 되고, 정성을 다하면 겉으로 드러나게 되며 겉으로 드러나면 그것이 밝아져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게 되면 주변이 변하게 되고 주변이 변하게 되면 세상이 변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라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인생에 노력이 동반되지 않는 기적이란 없다. 매일 매일 쏟는 작은 성의와 노력이 모여 큰 결과를 만드는 법이다. 성공한 이들의 철학을 들어보면 ‘기본에 충실하자’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이 기본이란 뜻은 곧 사소하지만 꼭 지켜가야 할 기본적인 규칙과 원칙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화계 후배들에게 지금도 만날 때마다 강조하는 것은 허영에 눈이 멀어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거대한 바다도 작은 강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작고 사소한 일에도 최선을 다하다 보면 큰 운도 들어 올 때 가 있고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 도 있다. 인생은 욕심을 낸다고 뜻한 것을 다 이루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착실하고 성실하게 씨를 뿌리고 그것을 정성껏 보살피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 날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날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농부는 한 줌의 흙도 더 없이 소중히 여긴다.
작은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이 곧 큰일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우리 모두 작고 하찮은 일에 최선을 다해보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