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모르는 노인이 되지 맙시다 (52화)
  제8장 귀향

시사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여러 분야 패널들이 나와 농담처럼 하는 말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요즘 젊은 아이들은 개념이 없고 또 개념 없는 아이들이 속된 말로 꼰대라고 부르는 늙은이들은 염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 동네 노인 분들 입에서 “늙은이가 염치없이 명이 길어 자식들 고생 시킨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린 마음에 ‘늙어가는 일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가’의아하게 여겼는데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정작 그 말에 담긴 속뜻은 경제 활동이 불가능한 나이에 주위 가족들에게 전적으로 의탁한 채 살아야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서러움과 고독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서로를 바라보는 세대 간의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젊은 시절에도 어르신들은 우리들을 가르켜 ‘생각이 깊지 못하다, 세상 물정을 모른다. 배려가 없다’는 불만들을 토로하셨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또 우리대로 기성세대들에 대한 불평이 있었다. ‘귄위적이다, 자기변명과 합리화의 달인들이다. 속물이다’라는 날 선 비난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젊어 한 때, 나이 들어 한 때 나름의 시간을 살아내 보니 세대 간의 비난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패기만만한 청춘에는 구구절절한 변명과 치졸한 자기 합리화로 인생을 꾸려가는 부모 세대의 삶의 무게를 짐작하기 어렵다. 그 나이에는 목숨 걸고 지켜내야 할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상(理想)을 벗어난 언행은 속물이라고 거침없는 비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생기고 부모라는 책임감을 짊어지는 순간부터 인간은 생이 다하는 날까지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때로 스스로 굴욕적이고 비굴하다 느끼는 순간조차 버텨야 한다. 그것이 진짜 어른의 삶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그 입장에 서보지 않고서는 상대의 어깨에 짊어진 짐의 무게를 가늠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나 역시 내 부모에게 서운함을 느낀 적도 있었고 자식들이 못마땅한 적도 있었다.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잘 알기에 너그러워 지기보다 욕심이 앞선 것이다. 아마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에게 냉소적인 비난을 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내 가족, 내 부모인 까닭에 그들이 더 좋은 세상과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주길 바라는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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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금의 한국 사회는 무능 부패한 공직자나, 원로 정치가, 직장상사, 학교 선배 같은 기득권 세력들이 부와 명예 또는 권력에 도취해 전도양양한 후진들에게 통 길을 열어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무사안일한 자세로 자기보존에만 연연하니 실력 있는 젊은이들이 실력발휘의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불만을 터트릴 수밖에 없다.

나이 들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명예롭게 치사(致仕)하는 일이거늘 치사스럽게 치사하지 않고 명이 다할 때까지 그 자리를 고집하려고만 든다. 이런 망국적 추태들을 볼 때마다 낯이 뜨거워지면서 사람의 ‘염치’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젊어 생각이 부족한 것은 굳이 탓할 일만은 아니다. 젊음은 미완의 나이다. 인생에 놓인 수많은 길들을 멀리 돌아도 가보고 여러 번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스스로 생각의 깊이를 채워가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닌 탓이다. 단지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과 도리에서 벗어남 없이 정도(正道)를 충실히 따라만 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정말 위험한 것은 나이 들어 갈수록 염치 모르고 끝없이 탐욕을 부리는 마음이다. 염치의 사전적 의미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더 큰 부와 권력에 눈이 멀어 잘못인 줄 알면서도 버젓이 염치없는 짓들을 벌인다. 그래서 요즘 TV를 틀 때마다 나오는 지체 높으신 양반들이 “검찰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국민여러분들에게 죄송합니다”라는 사죄의 말들이 전혀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애초에 염치를 알고 부끄러움과 수모를 이해하는 자라면 그런 행동은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흰 머리가 성성해진 이 나이에 행여 젊은 사람들에게 ‘나이 먹을 만큼 먹고 노인네가 염치가 없다’란 핀잔을 듣게 될까봐서다. 약삭빠르지 못한 성격 탓에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왔지만 나이 들어 전에 없던 어리석음이 눈을 가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노욕을 부리고 구차한 변명과 자기 합리화로 추태를 보이지나 않을까 그것이 못내 불안한 적도 있었다. UNICA세계영화제 한국대표직을 내려놓은 것도, 시골로 낙향한 것도 어쩌면 그 모든 어리석음으로부터 미리 달아난 것인지 모른다.

얼굴도 몸도 이미 멋이나 예쁜 것과는 거리가 먼 나이다. 그럼에도 사람 그 자체로 마지막 순간까지 근사하게 남고 싶다. 공공장소에서 주위 사람들 눈살 찌푸리게 하는 예의 없는 노인네만은 정말 되고 싶지 않다.

나이 순서로 말할 권리 누릴 권리가 보장된다고 착각하는 구시대 늙은이도 되기 싫다. 염치와 부끄러움을 알고 말하기보다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말을 더 많이, 더 귀 기울여 듣는 열린 마음의 지혜로운 노인이 되고 싶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내 넘치는 나이의 무게로 존중받기보다 나라는 사람 그 자체로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다. 그런 깨달음을 주저 없이 실천해 갈 수 있을 때야말로 젊은 세대의 존경과 ‘염치를 아는’ 진짜 어른이라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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