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인생, 마지막까지 품위 있게 (53화)
  제8장 귀향

나이가 들면 동심으로 돌아간다더니 요즘은 세상사 많은 것들이 새롭고 신기한 것 투성이다.

오래 전 읽었던 책도 새 책처럼 흥미롭고 지난 날 흘려들었던 노래 한 마디, 무심히 스쳐 보낸 풍경 한 자락도 가슴으로 젖어든다. 얼마 전에는 미국 배우이자 가수인 프랭크 시나트라의 명곡 ‘My way’를 듣고 절절한 감정에 사로 잡혔다. 가사 한 마디 한마디가 마치 나의 속내를 전하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And now the end is near
이제 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와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인생의 마지막 장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my friend I'll say it clear
나의 벗이여, 이제 사심없이
I'll state my case
내가 자신있게 살아온
of which I'm certain
나의 인생을 밝히고 싶군요
I've lived a life that's full,
난 나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왔고
I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살아오면서 수많은 일을 겪어왔습니다.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I did it my way
난 내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왔다는 겁니다.
Regrets I've had a few
조금의 후회가 남기는 합니다.
but then again too few to mention
그러나 다시금 되새길 만한 후회는 없었지요
I did what I had to do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다했고
and saw it thru
힘들었던 고난의 일들을
without exemption
아무런 편법도 쓰지 않고 해왔습니다.
planned each chartered course
나는 내모든 인생의 길을 계획했고
each careful step along the by way
그 길을 따라 최선을 다해 걸어왔습니다.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I did it my way
난 내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왔다는거지요.

이 노래 가사처럼 지난 세월에 대한 어떤 후회도 없다. 학창 시절부터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으며 권모술수 부리는 법 없이 매사에 충실히 살았다. 그 덕분에 요즘 아이들 표현을 빌면 배경이 되어 줄 집안이나 능력 있는 부모님도 없는 가난한 흙수저 출신이지만 남부럽지 않은 성공과 이름을 얻고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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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잔꾀가 밝지 못해 때로 당하지 않을 오해에 휘말려 마음고생을 겪기도 했고 없는 말을 지어내는 동료로 인해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한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묵묵히 그 시련의 시간을 버텨왔다. 물론 이 나이에 이르고 보니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 꼭 정답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살아온 역사가 다르고 관점이 다르기에 생의 방식도 각자의 개성에 맞는 스타일이 있는 것이다.

직선만 향해 가는 내 인생방식이 답답하고 융통성 없게 느껴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쉽게 굽히고 휘어지는 모습으로 살았다면 그것은 진정한 나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언제나 가장 나답게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에 모든 시간이 후회 없이 멋진 날들이었다.

삶의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듯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모습 또한 제 각각일 것이다. 남의 장례식을 찾을 일이 많다보니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펼쳐내는 삶의 모습 또한 각기 다르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그런 시간을 통해 삶의 종착역에 이르렀을 때의 나의 모습을 미리 준비해보지만 막상 자신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차이는 크다. 중요한 것은 죽음이 그저 두렵고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일 것이다.

감명적으로 읽은 책 중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모리와 함께 한 일요일’이 있다. 그 주인공 모리 교수는 사랑하는 제자에게 “어떻게 죽을지 알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배울 수 있으며 언제든지 죽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하면 더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조언해 준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삶이란 일상 속에서 항상 죽음과 부딪힌다. 나만 해도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일주일에 장례식을 가야 할 일이 몇 건이나 생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죽음과 정면으로 얼굴을 대하는 것을 불편해 하고 기피한다. 모든 인간이 죽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시작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운명이다. 죽음을 포함하지 않는 삶이란 지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위대한 알렉산더 대왕도 매일 아침 시종에게 문 앞에서 “대왕도 언젠가 죽습니다”라고 외치게 하지 않던가.

위에 언급한 책의 주인공 모리 교수가 제자에게 일깨워 주고 싶었던 것도 바로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고 서로 등이 맞닿아있는 한 길’이라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진리이었던 것이다.

모리 교수와 비슷한 연배라 그런지 나 또한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 뿐 아니라 인간은 삶 뿐 아니라 마지막 순간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생 황혼에 이르러 갈수록 웰 다잉(Well dying)에 대해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물론 죽음이란 자체가 기본적으로 굉장히 슬픈 일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긴 시간 함께한 소중한 이들과 작별한다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죽음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니 살아온 날들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준비의식은 우리 나이의 사람들에게 살아온 시간만큼 중요한 일일 것이다. 한 친구 녀석은 “죽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잘 죽겠느냐”며 농담처럼 말한다. 이 또한 맞는 소리다. 그런데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죽음은 나와 먼 남의 일이라는 사고방식이 죽음을 자기 자신의 일로 직시하는 일을 기피하게 만든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나이든 사람 앞에서 죽음이란 단어를 꺼내는 것 자체를 결례라고 여기는 관습이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동네 어르신들은 “나이 들어 노안이 오는 것은 미물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고, 귀가 어두워지는 것은 함부로 다른 이들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뜻이며, 소화기능이 약해져 소식을 하게 되는 것은 상여 메는 이들이 힘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자연의 배려”라고 하셨다. 이 말씀이야 말로 우리 조상들이 구구절절 상실과 죽음을 자연의 이치이자 순환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나는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에 몰아닥친 잘 먹고 잘 살기(well being)와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웰 다잉(well dying)은 동의어라 본다. 이런 깨달음을 기피하니 고령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가 죽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여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하는 여건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오래 전 자주 들었던 팝송 ‘마이 웨이’의 가사를 마음에 되새기며 후회 없이 살아온 나의 삶에 어울리는 가장 장찬주 다운 마지막 순간을 그려본다.

죽음이 정작 나의 일이 되었을 때 후회 할 일은 남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삶을 잘 살아왔듯 마지막도 잘 준비하는 것이 진정 제대로 잘 살아온 삶 일 것이기에 오늘 나는 죽음의 자리에서 남겨진 내 인생의 날들을 바라본다. 그런데 죽음을 이해하고 바라 본 삶의 날들은 이전보다 훨씬 행복하고 환해 보인다. 사람의 인생은 이렇게 마지막까지 삶의 지혜와 이치를 깨달을 기회가 남아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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