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 OFF 세계독립영화제 국제심사위원이 되다 (58화)
  제9장 초당기념관

매년 12월이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Grand OFF 세계독립영화제가 열린다. 2010년부터 이 영화제의 국제심사위원으로 위촉 받아 심사와 시상식에 꾸준히 참여해 왔다. 독립영화제이기는 하지만 해마다 60여개 국의 나라에서 4000편 정도의 많은 작품들이 출품되고 있다. 특히 유럽의 마이너 영화계에서는 꽤 명망이 높아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6년 제10회 Grand OFF 세계독립영화제에도 역시 심사위원으로 위촉을 받아 초청장을 받았다. 하지만 개인적 사정 때문에 참석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음은 꼭 참석해서 전 세계 재능 넘치는 영화계 후배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긴 비행시간과 긴 여정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매년 잊지 않고 초청장을 보내오는 주최 측의 성의를 생각하면 꼭 참석하고 싶었으나 건강을 생각해 결국 아쉬운 마음으로 불참 의사를 전했다.
 
그런데 주최 측에서 나의 입장을 배려해 결선에 오른 29개국 중 57편의 작품(11개분야 시상)을 한국의 집으로 보내주었다. 나보다 훌륭한 심사위원들이야 넘쳐날 텐데 꼭 내게 심사를 맡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뜻이 세계 단편 영화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나의 지난 노력들에 대한 소중한 평가 같아 참으로 기뻤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오른 작품들이라 한 작품도 허투로 심사할 수 없었다. 특히 세계 단편 영화계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 관심의 대상이 되는 우리나라 대표들의 작품에 대해서는 심사기준이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영화계 선배로서 후배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건전한 비평과 조언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 Grand OFF 세계독립영화제 무대

그러고 보면 내가 단편영화계에 입문 할 때만 해도 한국 단편영화계는 정말 조악하고 보잘 것 없었다. 취미생활로 즐기는 동호회 수준이라 여겨 한국 영화계에서도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단편 영화에 대한 애정과 열정만큼은 어떤 시대보다 뜨겁고 순수했다. 당시 소형영화 제작은 대부분 생일이나 환갑잔치 같은 가족행사, 여행지에서 찍은 경치 등 지금의 캠코더가 하는 개인적인 일상들이 주요 주제였다.

그러다 보니 작품 수준이 뛰어난 것도 없었고 말 그대로 카메라로 사진 찍듯 ‘사물을 찍은 것’일 뿐 우수한 작품은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이익이나 영광도 바라지 않는, 정말 ‘영화를 찍고 만드는 일’ 그 자체를 사랑하는 순수한 사람들의 작업들이었기에 그 가운데 한국 단편 영화계의 성장을 알리는 기대 이상의 작품들도 탄생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영화의 첫 시작은 참 볼 품 없었다. 누구도 알아주는 사람 없었고 도움을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개인의 신변잡기식 스토리가 아니라 짧은 런닝 타임이라도 뚜렷한 주제와 아름다운 영상을 담아내겠다는 작가주의적 의지가 내안에 있었다. 당시 나와 함께 활동한 소형 영화인들 가운데는 나와 같은 생각으로 고급 다큐멘터리나 단편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다행이 대학이라는 직장은 원하던 영화작업을 병행해 나가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방학이란 기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제작에 필요한 풍부한 자료수집과 인적 자원을 활용하기에 대학만큼 최적의 장소는 없었다. 필요한 모든 자료를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도서관과 연기자로서의 출연요청, 언제든 흔쾌히 도움을 준 명지대 학생 간부들은 모두 내 영화 시작의 근간이자 뿌리가 되어준 고마운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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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감독인 내가 시키는 것만 하던 학생들이 점차 영화촬영에 재미를 느껴 나중에는 ‘감독님 저 이번 영화는 언제 찍으세요, 저 꼭 출연시켜주세요’라며 먼저 출연 의사를 밝히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카메라 앞에 서는 것에 흥분했던 학생들도 점점 영화를 만드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방학이면 간부 학생들과 연수회를 떠나 일정이 끝나자 마자 영화 촬영에 들어갔다. 다들 아마추어 연기자고 연기나 발성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만 멋진 작품 하나 만들어 보겠다는 각오 만큼은 헐리우드 블록 버스트급 스텝과 연기자들 못지 않았다. 그 순수한 열정과 마음 덕분인지 당시 만든 작품들은 단편 영화계 관계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고 한국 영화계에도 나의 존재와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지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어떤 일의 첫 시작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말하기 위해서다. 장편 영화의 출발은 단편 영화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거장들의 첫 출발도 대부분 8mm, 16mm같은 소형 영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에 대한 야망과 욕심보다 정말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찍고 만드는 일이 행복하고 즐거워서 포기할 수 없는 그 순수한 동기가 진실 되고 위대한 예술 작품의 탄생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지금도 육체적 고단함을 느끼면서도 영화제 심사위원이라는 무거운 자리를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젊은 영화인들이 열심히 걷고 있는 그 길을 이미 앞서 걸어온 사람으로서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패기가 담긴 작품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평가해 줄 자신이 있기 때문에 말이다.

또한 그들과 같은 목표와 이상을 가진 사람으로 이제 시작한 단편 영화인들이 최소한의 시행착오를 통해 최고의 작품을 완성해 나가도록 선배로서 진실된 조언과 충고를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내 마음이 후배 영화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알수 없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밤 잠 설쳐가며 열심히 관람하고 분석해 내린 내 심사결과를 통해 한 뼘이라도 더 성장해 갈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건강만 허락한다면 어떤 영화제의 심사위원 자리도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수락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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