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영화제에서 한국의 젊은 단편영화인들의 선전은 계속되었다. 2012년 6월에는 오스트리아 에벤세에서 개최된 제 40회 에벤세국제 영화제에서 유영의 작품 <이해가 되어야 살이 빠진다>가 은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협회장인 내가 직접 출연한 작품 <고향으로 돌아가련다>가 동상을 차지했다.
같은 해 8월 불가리아 룻세에서 개최된 제74회 UNICA 세계영화제에서는 한국 작품 5편이 출품되었다. 이 가운데 일반부 정한진 씨의 작품<함경도 굿>과 유영의 씨의 작품 <소크라테스의 유언>, 유현석씨의 1분 영화 <색안경> 등이 입선의 영예를 안았다.
비단 이런 예를 들지 않아도 한국 비상업영화는 그동안 꾸준히 내실을 다져왔다. 다만 대외적으로 평가를 받을 만한 기회와 유능한 인재들을 발굴한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던 중 2002년 UNICA회원국으로 승인을 받고 회장인 나의 주도하에 비상업영화 발전을 위한 여러 시스템들이 마련되다 보니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게 된 것이다.
초창기 UNICA세계영화제는 출품작들의 순위를 따로 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도 어려웠고 각 나라의 출품작 수준을 가늠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각국 대표들 사이에서 한국 단편영화의 수준이 우수하다고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던 것이 순위를 정하게 되면서 수많은 수상의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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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한국에서 열린 UNICA세계영화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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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UNICA세계영화제 심사과정은 여느 영화제와 달리 독특한 시스템으로 운영한다. 먼저 심사는 각 나라에서 추천한 7명의 심사위원이 맡게 된다. 개최국에서는 무조건 한 명의 심사위원을 선정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2006년 우리나라에서 대회가 열렸을 당시는 고창수 씨가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UNICA에서 한국 대표인 나의 입지가 탄탄해지면서 심사위원을 추천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독어, 영어, 불어 세 가지 공용어만을 사용하는 UNICA의 규정에 맞는 후보를 찾기가 어려웠다. 언어적 문제 때문에 번번이 좋은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UNICA세계영화제의 또 하나 좋은 점은 감독과 관객이 가깝게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준비된다는 것이다. 영화 상영 후 심사토론을 하는 과정에서도 출품자와 관객이 한 자리에서 열띤 토론을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특히 작품을 제출한 감독이자 출품자는 관객들 앞에서 작품의 주제와 창작의도를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이 작품의 창의성에 의혹을 가지거나 표절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면 그 작품은 심사대상에서 제외된다.
비록 아마추어영화인들의 축제지만 심사의 공정성 면에서 UNICA세계영화제의 수준은 여타 세계적인 상업영화제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또 심사위원들의 결정으로 선정된 수상작을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아 감상하는 일방적 방식이 아니라 관객들과 감독이 한 자리에서 다양한 토론을 거쳐 최고의 수상작을 결정한다는 점도 아주 매력적이다. 관객들은 영화 관람도 즐겼지만 상영 후의 이 뒤풀이 시간을 더 기다리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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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참가단이 불가리아 롯세에서 열린 UNICA세계영화제에서 행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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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평가를 거친 후 시상 작품을 결정할 때 모든 영화를 관객들에게 1분 미리보기로 보여준 후 즉석에서 심사위원들의 표결로 정한다. 수상자가 결정 되는 소요되는 시간은 보통 5시간 정도로 심사위원 5명 이상이 찬성해야 수상작으로 결정된다. 표결에 따라 금상·은상·동상의 순으로 수상자가 결정되는데 작품의 수준에 따라 최고상인 금상 수상자가 없었던 해도 있었고 공동 수상자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출품작들에 대해 국가별로 종합 평점을 매겨 다음해 출품작의 상영시간을 결정하는 것도 UNICA세계영화제만의 특징이다. 각국마다 출품작 총 상영시간은 55분-75분으로 5단계로 나뉘어진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우리나라는 전체 참가국 중 전체 순위 14위로 중위권 그룹에 속해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05년을 기점으로 종합평가 점수가 점 점 상승되면서 상위 그룹에 속하게 되었고 작품 상영시간도 중위권 그룹에서 주어지는 65분에서 최고 75분으로 대폭 상향 조정되었다. 덕분에 더 많은 작품들이 UNICA세계영화제 출품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UNICA한국협회 회장으로 역임해오며 많은 일들을 해왔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 있었던 사업은 역시 젊은 영화인들에게 가능성의 기회를 열어 준 것이다. UNICA라는 세계적인 영화제를 통해 한국이라는 좁은 우물을 벗어나 세계의 영화인으로 성장해갈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 준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의 젊은 비상업 영화인들이 부족한 환경이나 여건을 탓하지 말고 매순간 진실 되고 순수한 열정으로 창작 활동에 임해주기를 바란다. 영화를 향한 그들의 열정의 온도가 곧 한국 영화의 미래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