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프롤로그]

앞만 보며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사계절 내내 풍성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던 그 시절, 나는 젊고 기운 넘치고 철없는 사내였다.

그런 세월이 어느덧, 산수(傘壽)를 넘기고 구순을 바라보니 과분한 축복을 받은 인생이다. 또 나이 25세까지 봄이요, 50세까지가 여름, 75세까지가 가을이며, 80세까지가 늦가을이요, 90세까지가 초겨울이라 했으니 나는 지금 황혼의 저녁노을과 낙엽 지는 계절을 지나 초겨울로 접어 든 셈이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얼마나 될까. 아마 길면 20년 짧다면 10년을 채 넘기지 못할 것 같다. 남겨진 날이 기약이 없건만 정작 이 나이에 이르고 보니 나 자신이 오래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마음만은 여전히 20대 청년시절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철부지 같은 마음 탓인지 날이 갈수록 지난 세월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만 간다. 그 중에서 특히 사람에 대한 아쉬움과 애틋함이 간절하다.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볼 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심중 한편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자신의 부족한 점들을 되새기게 된다.

그런 이유로 다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까지 걸어온 인생의 모든 시간들과 또 한 번의 진솔한 시간들을 마주할 수 있다.

과거 큰 의미 없이 흘려보낸 매 순간이 간절한 추억이 되었고 그 시간 속에서 나와 함께 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은 화석같이 굳었던 노년의 가슴을 뜨겁게 해준다. 따라서 이 책은 그들에 대한 나의 뒤늦은 감사편지 같은 것이다.

‘괜찮다, 아직 남겨진 날이 많다’고 젊은 날 스스로에게 면죄부가 되어 주었던 자기변명이 더 이상 허락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정말 소중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만은 한 시도 잊은 적이 없다. 가없는 애정과 보살핌 덕분에 나의 인생이 이토록 따뜻한 양지 속으로 걸어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간 사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만 했던 인사를 이제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너무나 따뜻한 은혜를 입은 세월이었다. 이생에서 다 갚지 못할 만큼 깊은 정(情)과 신뢰를 선물 받은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값진 성공이었다. 팔십 인생, 남은 날들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러니 내친 김에 진심만을 모아 이 말을 다시 한 번 꼭 전하고 싶다.

‘이 삶을 함께 해 준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라고. 부디 내 진심이 너무 뒤늦게 전해진 것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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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고향으로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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