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은 행운의 해였다. 행운은 세 가지가 함께 겹쳤는데, 첫 번째는 동국대학교 조경학과 교수가 된 것이고, 두 번째는 과천에서 25평형 주공아파트를 분양받아 새집으로 이사하게 된 일이었고, 세 번째는 9월 28일에 예쁘고 영리한 맏딸 재희가 출생한 것이다.
동국대학교는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하느라고 평생 처음 다닌 사립대학으로, 직업 없이 대학원 공부를 하느라 집 한 채가 거의 날아간 상태였다.
조경학과가 서울캠퍼스에 있었더라면, 나는 전부터 꿈꾸어오던 대로 고향 남양주에서 출퇴근하면서 전공도 살리고 고향도 지켜가면서 대학교수 할 수 있겠지만, 꿈은 접어두고 경주캠퍼스로 내려와야 했다.
경주는 박혁거세를 임금으로 세운 공으로 돌산 고허촌의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공이 최 씨 성을 하사받아 득시조(得始祖)가 되고, 중시조(中始祖)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대에 이르기까지 천여 년을 선조(先祖)들이 살아오신 곳으로, 나는 경주 최 씨의 본관을 찾아온 것이었다. 더욱이 경주는 가까운 포항의 해병 제1상륙 사단에서 소대장과 중대장 근무를 한 곳이어서 낮설지 않은 곳이었다.
조경학과에는 교수가 세 분 있다가 이직하는 바람에 한분만 남게 되어 급히 인사가 이루어져서, 1983년 3월 1일부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황 수영 총장님은 내가 대학원박사과정을 할 때 대학원장이셨기에 그때부터 뵙게 되었는데, 매우 인자하신 분으로 고고미술학계의 거두이셨다. 면접과정에서도 나를 알아보시고 반갑게 대해주셨다.
임용발령장을 받고 보니 제일 연장자이고 고참 경력자인 내가 전임강사로 발령이 나 있어, 화가 치밀어 교무과장실을 찾아가 항의를 하였다. 토목공학과 김 모 교수가 처장이었는데,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전공을 토목공학으로 바꾸어 육군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다가 대령으로 예편하고서 토목공학과 교수로 온 사람이었다.
김O 교수는 어째서 조교수냐고 따지니까 OO연구소에서 몇 년 근무한 경력이 있다고 했고, 또 다른 김O 교수는 왜 조교수냐 물으니 OO에서 교관을 하던 경력이 있다고 했다. 그럼 노OO 교수는 어째서 조교수가 되었느냐고 따지니까 개업의를 몇 년 했다고 하기에, 나는 화를 내며 개업의도 교육경력으로 들어가느냐고 소리를 질렀더니 미안하다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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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전경 [출처 ;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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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에서 조경학과가 신설되어 첫 신입생을 뽑은 것은 1975년이었으나, 1978년부터는 폐과되는 바람에 서울캠퍼스에서는 더 이상 신입생을 못 뽑게 되었다. 78년에는 내가 박사과정을 마치게 되어 전임이 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수포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79년도에 경주캠퍼스가 신설되면서 그 이듬해인 1980년도에 환경조경학과로 복과된 것이었다.
우리나라 대학과정에서 조경학과가 최초로 신설된 것은 1973년 서울대와 영남대 두 곳이었고, 1974년도에 청주대학교에, 그리고 75년도에 서울 시립대와 동국대학교에 신설이 되었다.
경주에 내려와서는 숙소가 마련되지 않아 기숙사생활을 하게 되었다. 기숙사는 가, 나, 다, 라동의 4개동이었는데, 가동의 1, 2, 3층은 여학생이 사용하고 4층은 외국인 교수와 강사, 그리고 교수들이 사용하도록 설비되었다. 학생용 기숙사는 한 방에 4인이 사용하도록 침실과 옷장, 책상 등이 배치되었지만, 4층은 독실용으로 침실도 킹사이즈였다.
기숙사생활이 편리한 점은 일정한 시간에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식기는 증기소독을 하기 때문에 매우 위생적이었다. 문제는 반찬이었는데, 경상도 반찬은 짠 게 지나쳐서 쓴맛을 냈다. 요새는 적당한 간으로 맞추어져서 옛날의 쓴맛과는 달리 많이 개선되었다.
그 다음으로 좋은 점은 아침 6시경에 기상해서 아침운동으로 테니스를 할수 있는 것이었다. 마음 맞는 교수들이 매일 이른 아침에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것이 하루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즐겁게 일과를 시작하게 되니 하루하루도 잘 지나갔다.
매주 월요일 새벽이면 경주로 내려가고, 금요일 오후면 상경하는 것이 몸에 익숙해졌다. 대학교 생활은 1주일이 금방, 한 학기가 뚝딱 가고, 1년이 쏜살같이 자나갔다.
캠퍼스는 경주시내에서 북쪽에 흐르는 형산강을 지나 구미산 자락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동대교의 큰 다리가 생겨 시내에서 곧바로 연결되고,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기본요금을 약간 웃도는 거리이다.
뒤에는 구미산자락이 있고, 앞에는 형산강 물이 흐르고, 강 건너에는 시가지가 펼쳐져 있었고, 금오산과 토함산이 내다보이는 명당자리에 20만평 정도의 터전이 마련되어 대학 캠퍼스로서는 아주 좋고 편리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가르치고 연구하고 학생지도를 해온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온다. 어렸을 때는 세월이 더디 가더니, 40이 넘고 50이 지나서는 너무 빨리 가는 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