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공원이 부족하여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휴식을 취할 공간이 너무 없다. 사람과 자연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데, 서울에는 건물만 많고 숲은 적다. 숨 쉴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우울한 마음만 생긴다.
나는 지금도 가끔 동숭동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옛날 생각이 나서 오랫동안 감회에 젖어 있곤 한다. 그리고 마로니에 공원이 젊은이들의 광장이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비들기들이 날아다니며 공원 바닥에 널려 있는 먹이를 쪼아 먹는 모습은 평화롭기까지 하다. 젊은이들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때로는 야외무대를 개설하여 노래도 부르고 공연도 한다. 사물놀이패 공연도 자주 벌어지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1983년 3월, 내가 문공부에 있다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상임이사로 자리를 옮겼을 때의 일이다. 동아그룹 전 회장 최원석 씨의 동생 최원영 씨가 당시 음악잡지 <객석>을 창간하기 위해 상담 차 나를 찾아왔다.
“음악잡지 하나를 창간하려고 하는데 도와주십시오.”
최원영 씨는 상당한 재력가였다.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재단이사장이었으며, 그 당시 잘 나가던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기 까지 하였다.
|
|
| ▲ 최원영 전 객석 회장 [출처 ; 최원영넷] |
|
“문공부에서 떠난 몸이라 직접 도와주기는 곤란하고, 문공부 예술국장과 공보국장을 소개해 줄 수는 있지요.”
잡지 창간에 관한 업무를 문공부에서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당시 문공부 관계자들을 아는 것은 물론 등록절차도 잘 알고 있었다.
“저도 그 분들과 다리를 놓아 달라고 찾아온 겁니다.”
최원영 씨는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때 내 머리에 기발한 착상이 떠올랐다. 순간적인 일이었지만, 평소 내가 늘 염두에 두고 있던 생각이었다.
“다만 한 가지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무엇이든지 말씀만 해주십시오.”
“돈이 좀 드는 일인데...”
나는 그렇게 뜸을 들이며 최원영 씨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관계없습니다. 선배님 말씀이라면 해드려야지요.”
그러면서 최원영 씨는 자신이 경복고등학교 후배라고 말했다.
그때 그는 내가 개인적으로 무엇인가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실은 요 앞에 공원을 좀 조성해줄 수 없을까 해서 말인데...”
나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앞의 마로니에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문공부에 있다가 동숭동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나는 휴식시간이 되면 틈틈이 마로니에 숲을 거닐며 명상에 잠기곤 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 편힌 앉을만한 의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
|
| ▲ 나무 둘레로 벤치가 있는 마로니에공원 [출처 ; 한국관광공사] |
|
또한 키 큰 마로니에 나무만 들어서 있을 뿐이지 공원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조금만 돈을 들이면 훌륭한 휴식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는 그만한 자금을 빼내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었다.
“그런 일이라면 문제없습니다. 마로니에 공원이 무성하니, 조경만 잘 하면 되겠군요.”
최원영 씨는 환하게 웃으며 그 자리에서 선뜻 약속을 하였다.
그 후 최원영 씨는 문공부를 통하여 <객석> 창간 허가를 받아냈고, 그 잡지가 창간되기 이전에 나와의 약속대로 마로니에 공원을 조성하였다. 당시 총공사비는 5천여만 원이 들었는데, 나는 고마움의 표시로 그곳에 공원을 조성한 최원영 씨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세워주었다.
지금도 마로니에 공원을 걸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큰 돈 들이지 않고 조성한 공원인데도 썩 훌륭한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젊은이들을 위한 흥겨운 놀이마당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 내 마음을 흐뭇하게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