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학로가 문화의 거리로 자리 잡은 것은 동숭동에 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예총회관이 있기 때문이다. 두 기관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예술인들이 많이 모이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소극장이 주변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문공부에 있다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만 해도 동숭동은 삭막하기 그지 없었다. 특히 그 당시 예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동차공업협회 건물이 샘터건물 옆에 자리 잡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예술과 문화의 자리에 자동차공업협회 건물이 있다는 것은, 그것도 대로변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흉물스럽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자동차공업협회 건물을 지날 때마다 어서 빨리 저 건물이 없어지기만을 마음 속으로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평소 그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공업협회를 어디로 옮기고 그 자리로 예총회관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발상이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1984년도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뒤 늦게 연세대학교 최고위 과정에 다니고 있었다. 마침 자동차협회 전무 임도종 씨가 나와 같이 최고위과정에 다니고 있었는데, 나는 그에게 거의 강요하다시피 말했다.
“동숭동은 문화의 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자동차공업협회 입장에서 볼 때도 동숭동은 입지 조건상 어울리지 않아요. 차라리 이 기회에 강남으로 옯겨 가면 어떻겠습니까?”
임도종 씨도 내 말에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시 예총회관은 종로구청 자리에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곧 어디론가 이사해야 할 입장이기도 하였다.
마침 그 무렵 이진희 문공부장관이 국악의 밤 행사 차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문예회관에 왔다. 나는 기회를 엿보다가 장관 옆으로 다가가 발했다.
“장관님! 지금 자동차공업협회 건물이 있는 자리로 예총회관을 옮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마로니에 공원, 그리고 예총회관이 서로 어우러지면 동숭동도 문화의 거리로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로군.”
이진희 장관의 첫 마디가 그랬다. 그는 내가 문공부를 떠날 때 망년파티장에서 해프닝을 벌인 뒤부터 나에 대하여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전보다 더 나를 신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마침 장관 옆에 서 있던 한국문화에술진흥원 전무 한 사람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예총회관이 옆으로 옮겨 오면 온갖 예술인들이 몰려와 골치 아픈 일들이 더 생긴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분이 어떤 뜻으로 그렇게 말하는지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은 예술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예술인들이 몰려드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이해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물론 예술인들이 많이 몰려오면 업무가 폭주할 것이고, 그만큼 괴로워질 것은 불을 보듯 번한 일이니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이진희 장관이 그 분의 말을 무시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총회관 저 자리로 옮길 수 있도록 빨리 손을 써 보시오.”
그때 나는 그분의 무안해 하는 얼굴을 보고 잠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진희 장관의 지시에 따라 자동차공업협회는 강남에 딸을 사서 새로 건물을 지어 이사를 했고, 그 자리에 기존건물을 보수하여 예총회관이 들어서게 되었다. 건물 외벽의 벽돌 색깔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처럼 붉은 색으로 통일하여 바로 옆의 샘터 건물과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 예총회장은 조경희 여사였는데, 나는 자동차공업협회가 예총에 땅을 팔 때 20억 원에 내정되었던 것을 1억원 깎아 19억원에 매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것을 매우 고맙게 생각한 조경희 여사는 예총회관 건물의 리모델링을 마친 후 나에게 예총에서 주는 감사패를 주었다.
그 이후 나는 조경희 여사와 더욱 깊은 인연을 갖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