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든 공정해야 된다는 것이 공직 수행의 기본이다. 나는 문공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 철칙을 준수하려고 노력하였다. 문공부에서 근무할 때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공무원은 아니었지만 정부 산하단체이므로 준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공정’은 업무의 기본 원칙이었다.
1989년 북한의 금강산 댐에 대응하여 ‘평화의 댐 모금운동’을 벌일 때였다. 당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대적인 모금운동이 벌어졌는데 그때 정부는 ‘평화의 댐 건설지원 범국민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그때 나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기획이사로 있으면서 임시로 이 위원회의 실무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나를 포함하여 문화공보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KBS, 반공연맹 등에서 7명의 인원이 파견되어 근무하게 된 것이다.
당시 평화의 댐 건설지원 범국민 추진위원회는 서울시 중구 태평로의 프레스센터 18층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위원장에는 정수창(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씨가 임명되었고, 부위원장에는 홍성철(대통령 비서실장) 씨, 장충식(단국대학교 총장) 씨, 문태갑(서울신문사 사장) 씨가 맡았다.
범국민적 모금운동이었으므로 기업인들이 앞장 서 모금운동에 참여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코흘리개 초등학생들까지 돼지 저금통을 털어 기금에 보탤 정도였다.
나는 그 기금의 운용을 맡은 실무 사무총장이었기 때문에 그 임무가 막중하였다. 당시 정부가 주도하는 모금운동이었던지라 추진위원회의 파워가 막강해서 나는 업무상 유명한 정치인, 기업인, 그리고 언론사 대표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러자 내 주변의 친구들이 농담삼아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야, 종덕아, 너 그러다가 정치권으로 나가는 것 아니냐?”
나는 친구들에게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사실 나는 정치권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예술기획자로 남는 것이 소박한 꿈이었다.
당시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한 모금으로 마련한 기금은 총 724억 원이었다. 돈의 액수가 크다보니 나 자신도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어쨌든 그 돈이 공정하게 쓰여져야 한다는 생각만은 견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모 은행의 고위급 간부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비밀한 곳으로 나를 안내하더니 평화의 댐 기금 전체를 자기네 은행에 맡겨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내게 1억 원의 리베이트를 주겠다고 하였다. 그 돈은 평화의 댐 기금 총액이나 이자 수익과는 별도의 것이기 때문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기금 총액을 자기네 은행에 맡겨주는 조건만으로 1억 원을 내게 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1억 원이면 큰 돈이었다. 나도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마음이 잠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공직에 몸을 담고 살아오면서 철칙으로 삼은 ‘공정성’이 내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잡아주었다.
“그렇게는 못합니다. 이 돈이 어떤 돈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범국민적인 모금 운동에 의해서 마련한 기금이므로 아주 공정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나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어차피 그 돈은 평화의 댐 건설이 진행되는 동안 어느 은행에든 맡겨두어야 합니다. 어느 은행에 맡겨두든 그것은 공정한 일입니다.”
모 은행 간부는 계속해서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러고 나서 나는 평화의 댐 기금이야말로 정말 공정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724억 원을 시중 5개 은행과 8개 지방은행에 나누어 저축하였다.
애초 평화의 댐은 200미터 높이로 건설하게 되어 있었는데, 80미터 높이에서 1단계 공사를 마쳤다. 당시 항간에서는 평화의 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기도 하였는데, 사실 그때 열심히 일해 온 나로서는 서운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오해가 풀려서 평화의 댐을 증축하게 되었고, 나로서도 그 일에 참여한 것에 대하여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1996년에는 평화의 댐 근처에 ‘비목’의 노래가 건립되었다. 가사의 내용이 평화의 댐을 세우게 된 배경과 접목되는 부분이 있어 나는 서로 잘 어우러진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나는 평화의 댐 건설지원 범국민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정수창 씨와 함께 전두환 대통령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로 가기 두 달 전이었는데, 평화의 댐 전반에 대해 보고를 하기 위해 간 것이었다.
그때 나는 기금 724억 원을 시중 5개 은행에 100억씩, 그리고 지방 8개 은행에는 그 지역에서 모금된 액수만큼 씩 각각 나누어 예치하고, 필요할 때마다 출금해서 쓰는 등 공평하게 관리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아주 좋은 어이디어였구먼! 온 국민이 모금한 돈을 오해받지 않도록 아주 잘 관리했어요.”
전두환 대통령은 거듭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날 밤 11시까지 술상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