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설 도중 내려앉은 극장 무대...

예술, 특히 무대 예술은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무대에 올려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느냐에 따라 공연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즉, 철저한 연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공연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무대예술은 관객이 보는 앞에서 직접 행위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어떠한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 그러므로 피땀을 흘려 연습을 해야만 무대 위에서 실수를 하지 않는다.

예술 행정은 그러한 예술의 연습 과정을 뒷받침해주는 작업이다. 따라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이 예술행정가이다. 물적, 인적 자원은 물론이고 배우들에게 정신적인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특히 예술행정가는 연습과정뿐만 아니라 무대에서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다. 언제, 어느 때 돌발사고가 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긴장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도 같은 것이다. 예술행정가가 긴장을 해야만 감독이 긴장을 하고, 감독의 긴장은 곧 출연자들에게로 이어져 서로 간의 신뢰감을 형성한다.

1992년 11월 18일 서울예술단 제 14회 작품 ‘꿈꾸는 철마’ 리허설을 할 때였다. 다음 날 첫회 공연을 위하여 한참 리허설을 하던 저녁 6시경, 갑자기 국립극장 무대가 내려앉았다. 2층으로 된 경사 무대 바닥이 붕괴되어 높이가 약 6미터 되는 지하 1층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그때 나는 무대 바로 앞 객석에 앉아 리허설 장면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무대가 내려앉는 순간, 내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무대 중앙에서 30여명의 무용수들이 한참 춤을 추다가 추락을 하였으니, 아우성치는 비명 소리에 그야말로 극장 안은 이비규환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급히 119구조대를 부르고 앰블런스들이 달려와 부상당한 무용수들을 응급실로 실어 날랐다. 부상당한 인원이 많다보니 인근의 여려 병원으로 나누어 입원시켰다.

나는 급히 무용수들이 입원한 병원을 들러보고 부상당한 정도를 체크하고 국립극장으로 돌아와 간부회의를 소집하였다. 부상단한 무용수들의 간호도 급했지만, 이미 예매가 끝난 공연의 진행여부가 시급한 사안이었다.

더구나 리허설 장면을 홍보하기 위하여 SBS 기자들이 와서 촬영을 하다 무대붕괴 장면을 찍었는데, 그 장면이 10분마다 긴급뉴스로 방송되고 있었다. 온갖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달려오고, 여기저기에서 문의 전화가 쇄도하였다.

나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1년 88서울예술단은 서울예술단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새롭게 변신을 시도하였는데, ‘꿈꾸는 철마’는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중요한 공연이었다. 예술단원 80명을 비롯하여, 서울 아카데미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 57명, 성남 시립합창단원 51명, 김복희 무용단 18명 등 총 206명이 출연하는 대규모공연이었다. 더구나 실물크기의 기관차까지 등장시키고, 특수 영상을 활용하는 등 서울예술단의 새로운 변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공연이 뜻하지 않은 무대붕괴사건으로 인하여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 88서울예술단 초창기 국립극장에서 <백두산 신곡> 발표회를 마치고/김용옥 작, 작국 박범훈, 안무 국수호, 연출 손진책

간부들은 모두 침통한 얼굴로 나만 바라보았다. 예매를 한 관객들을 위해서는 공연을 강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공연을 강행하자니 병원에 입원한 무용수들 때문에 무리수가 뒤따랐다. 대부분 공연을 미룰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때 나는 결단을 내렸다. 위기일 때는 뒤로 물러서기보다 치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일 공연은 계획대로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철저히 하세요.”

나는 기자들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밤새워 무대 복구를 해서 예정대로 공연을 하겠다고 장담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국립극장 무대가 무너진 것은 무대장치를 하는 업체에서 잘못한 것이자, 결코 국립극장 건물이 부실한 것이 아님을 재삼 강조하였다.

다시는 공연 중에 무대가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무대 설치 업체에 철저하게 당부를 하고 나서, 나는 부상당한 무용수들을 문병하기 위해 밤새워 각 병원을 들렀다. 체크를 해보니 큰 부상을 당한 7~8명의 단원을 빼고는 공연에 참여시킬 수 있었다. 다행히도 경미한 부상을 당한 단원들을 의욕이 강하여 참여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혔다. 나는 그런 단원들이 고마웠다.

다음날인 1992년 11월 19일부터 22일까지 ‘꿈꾸는 철마’는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부상당한 무용수들 중에는 지팡이를 짚고 나와 춤을 추기도 하였다. 그러나 의상 뒤로 묘하게 지팡이를 숨겨 관객들은 아무도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였다.

공연은 예상대로 성황리에 끝이 났다. 텔레비전에서 국립극장 무대붕괴 사고가 특종 뉴스로 보도되면서 오히려 그것이 큰 홍보효과를 가져와 매회 만원사례를 기록하였던 것이다. 전화위복이 아닐 수 없었다.

무사히 공연이 끝난 후 나는 거의 매일 병원을 순례하였다. 중상을 입은 무용수들에게 치킨을 사들고 가서 위로하기도 하였다. 내가 직접 치킨 봉지를 여러 개 만들어 각 병원을 돌며 문병을 다니자, 부상당한 무용수들은 감동을 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때 나는 그들과 단장과 단원의 관계를 넘어선 친근감이 생겨 인간적으로 매우 가까워졌다.

그 후 나는 재단법인 이사장이 되었는데, 문병 다니면서 친하게 된 단원들은 그 후에도 나를 이사장 보다는 전처럼 ‘단장’으로 부를 정도로 정이 들었다. 나는 서울예술단을 떠날 때 단원들과 너무 정이 들어 이임사를 하면서 울먹이기까지 하였다. 단원들도 울고 나도 울며 이임식장은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순간적인 결정이었지만, 그 날의 위기 상황은 고비를 잘 넘겼다. 뿐만 아니라 무대붕괴사고 이후 단원들의 결속은 더욱 잘되었으며, 그 날의 사고 장면을 찍어 긴급뉴스로 내보낸 SBS 기자는 특종상까지 받았으니 그것은 서울예술단이 준 상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