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단이 예술의 전당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느낀 것이지만, 예술의 전당은 시내 중심가에 너무 떨어져 있어서 건물만 웅장했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우면산 기슭에 자리 잡은 예술의 전당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고립된 성처럼 보이기도 했다.
예술의 전당은 1988년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지원금 1,700억 원을 들여 개관한 한국의 대표적인 예술공연 및 전시장이다. 당연히 많은 시민들이 공원처럼 찾아와 공연도 보고 휴식도 취하는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하는데, 도무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외진 곳에 있어서 사람들이 찾아오기에는 교통이 너무 불편하였으며, 둘째는 예술의 전당의 문턱이 너무 높았다. 일반 사람들이 아닌 특별한 예술인들만 이용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1995년 3월, 내가 서울예술단 이사장 임기 중 예술의 전당 사장으로 임명받았을 때 제일 먼저 내건 캐치프레이즈가 ‘예술의 전당을 시민의 공원으로’였다. 나는 공연의 가장 핵심인 관객을 위한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냈다.
시민들이 불편해하는 공연장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가장 먼저 ‘베스트5’ 운동을 전개하였다. 첫째 최고의 예술활동(Best Activity), 둘째 최적의 문화공간(Best Cultural Space), 셋째 최고의 예술행정가(Best Staff), 넷째 최상의 서비스(Best Service), 다섯째 최선의 협력(Best Teamwork) 등을 통하여 전격적으로 의식개혁운동을 실시한 것이다.
이러한 운동과 함께 나는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 사이에 어린이 휴게소를 만들고, 곳곳에 안내소도 설치하였다. 화장실 안내 표지판, 층별 안내판 등 외형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최선을 다 하였다.
그리고 남부터미널 지하철역과 예술의 전당을 잇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도보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가까운 거리에 새로 횡단보도를 설치하는데도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예술의 전당 전체를 시민의 공원으로 지정하여, 아무 때나 사람들이 와서 쉴수 있도록 잔디밭과 야외공연장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만으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데 한계가 있었다. 나는 이벤트사업을 벌이기로 하고, 우면산을 배경으로 한 야외무대에서 한국의 소리와 몸짓 시리즈의 공연을 계속하였다.
또한 음악당광장에서는 여름밤에 무료 영화감상회를 열기도 하였다. 시민들이 비싼 돈을 내고 공연을 보지 않더라도 아무 때나 와서 무언가 구경하고 즐길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이벤트를 연출해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이 점차 예술의 전당을 찾기 시작하였다. 주로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 젊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하필이면 그런 주말에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4층에서 결혼식이 거행되곤 하였다.
오페라하우스라는 문화공간에서 결혼식을 한다는 것은 예술의 전당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언론사에서도 몇 차례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는 내가 예술의 전당 사장으로 부임해오기 전부터 법정 소송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법정 소송은 오랜 시일이 걸리므로, 나는 당장이라도 오페라하우스 4층에서 결혼식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 당시만 해도 예술의 전당에는 일반 음식점이 임대로 들어와 정식 허가를 얻어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 음식점이 결혼식 피로연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오페라하우스 4층을 결혼식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불법이었다.
간혹 예술의 전당 재정상 오페라하우스를 예식장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 생각은 전적으로 달랐다. 예술 무대인 오페라하우스를 예식장으로 사용하는 것은 예술의 가치까지 하락시키는 것이었다. 순수해야 할 예술의 전당을 시장판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나는 먼저 예술의 전당에 입주해 있는 음식점 관계자들을 찾아가 일단 오페라하우스에서 결혼식 올리는 것을 금지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자 음식점 관계자들이 반발을 하며, 주말에 결혼식까지 없으면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음식점 관계자들은 내가 사는 집까지 선물을 들고 찾아와 선처를 부탁하였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예술의 전당 내에 있는 음식점은 그곳에 예술을 감상하러 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음식을 파는 것이지, 결혼식 피로연장으로 사용하라고 허가를 내준 것이 아닙니다.”
나는 정중하게 선물을 사양하였고, 그 사람은 무안해하면서 헛걸음을 치고 돌아갔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없는 사이 집에 케이크를 놓고 간일도 있었다. 나는 그 다음 날 비서를 시켜 그 사람을 만나 케이크를 돌려주라고 하였다.
“여기서 전달하지 말고 저 건너 진로유통에서 비밀리에 만나 전해주시오.”
나는 비서에게 이렇게 당부를 하였다. 이처럼 케이크를 비밀리에 전달한 것은 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결국 이 문제는 법정소송에서 예술의 전당이 승소함으로써 일단락되었으며, 따라서 기존 음식점은 남은 임대 기간을 끝으로 더 이상 결혼식 영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