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후원회 조직 (29화)

경영은 전략이다. 따라서 경영자는 전략가라고 할 수 있다. 예술도 기업처럼 경영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으면 발전하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기획력과 연출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작품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관객은 오지 않는다. 즉, 좋은 작품일수록 관객이 많이 든다는 것은 이론이지 실제가 아니다. 따라서 좋은 작품일수록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투자와 기발한 홍보전략이 동원되어야만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기존에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된 작품들이 수준미달이라 관객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작품으로는 성공적인데도 관객동원에서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다. 문제는 작품에 대한 투자와 홍보다.

내가 예술의 전당 사장으로 부임했을 때 재정자립도는 39%였다. 미국의 유명한 케네디센터도 재정자립도가 17%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면, 예술의 전당은 수익 면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예술의 전당은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지원금을 대고 있었는데, 사실 미국의 케네디센터에 비하면 그 지원금의 액수는 미미하기 그지없는 수준이었다. 예술작품의 수준을 높이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문제는 예술의 전당 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데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예술의 전당 후원회를 조직하기로 결심하였다. 지금까지 예술행정 분야에 종사해오면서 안면을 익힌 나의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보기로 하였다. 나는 우선 후원회장을 누구로 세워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심하였다.

오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연세대학교 총장을 지낸 송자 교수였다. 그는 당시 연세대학교 총장 임기를 마치고 명지대학교 교수로 근무하고 있었다. 내가 그를 후원회장을 지목한 것은 그가 연세대학교 총장 시절 동문들로부터 기금을 많이 확보하여 학교 발전에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송자 교수와 연세대학교 동기동창이었고, 평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나는 그를 찾아가 말했다.

“송 교수가 우리 예술의 전당 후원회장을 맡아 주시오.”

“내가 그런 자격이 돼야 말이지요.”

▲ 예술의 전당 재직 시 '기업과 예술의 만남'을 주선하며

송 교수는 빙그레 웃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웃음 이면에는 수락의 뜻이 숨어 있었다.

“내가 아무나 붙들고 후원회장 되어달라고 하는 게 아니요. 송자 교수니까 부탁하는 거지. 이미 결정된 것이니까 발뺌할 생각 마시오.”

나는 송자 교수가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할까 두려워 선수를 치고 나갔다.

“알았어요. 알았다구.”

송자 교수는 정치계, 경제계, 문화계 두루두루 인맥이 많았다. 그는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내고, 어떤 일이든 주어진 일은 정말 부지런하게 처리하였으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가식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예술의 전당 후원회장으로 적극 추천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그동안 쌓아온 나의 인맥과 송자 교수의 개인 인맥을 최대한 동원하여 후원회 결성에 박차를 가하였다. 나는 가장 먼저 후원회에 가입하고 500만 원을 후원금으로 내놓았다. 이렇게 시작한 후원회는 순식간에 회원 170명이 확보되었고, 후원금만도 7억여 원이 걷혔다.

일단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자금은 확보되었으나, 이번에는 홍보가 문제였다. 이때 유명인사들을 도우미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은 송자 교수였다.

“유명한 예술인들이나 고위급 관리 부인들을 자원봉사 차원에서 도우미로 활용하면 어떨까요?”

“그거 좋은 생각이로군요.”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나는 유명인사 도우미제도를 곧바로 실행에 옯겼다. 유명인사들이 어깨에 띠를 두른 채 관객들의 좌석을 찾아주고, 프로그램을 파는 일도 돕도록 하였던 것이다.

당시 고위급 관리 부인으로는 이수성 총리 부인, 김영수 문화부 장관 부인 등이 있었다. 선화랑 대표 강창실 씨도 기꺼이 예술의 전당 도우미가 되어 주었다. 가장 인기가 있었던 도우미는 신성일, 엄앵란 부부였다.

이처럼 유명인사들이 예술의 전당 도우미로 나서자, 그것이 신문에 사진과 함께 기사로 실리기도 하였다. 홍보효과는 만점이었다. 전보다 많은 관객들이 예술의 전당을 찾기 시작하였고, 일부러 유명인사 도우미들을 구경하하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되자 예술의 전당 재정 자립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64.7%로 급신장하였다. 예술에 비즈니스 경영 전략을 도입해 성공을 거둔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예술도 경영이다. 가만히 앉아서 관객일 오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는 지양돼야 한다. 이제는 예술이 관객에게 다가가는 능동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보다 적극적인 홍보를 해서 많은 관객들이 예술 작품의 진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