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하든 처음부터 끝까지 술술 풀리는 법이 없다. 잘 나가다가 복병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실수로 넘어져 무릎을 다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유여곡절 끝에 일을 완수했을 때 그 기쁨도 배가 된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마찬가지다. 일의 경중에 관계없이 반드시 그에 따른 어려움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성심성의껏 해야 하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났을 때의 예방책이기도 한 것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축구의 전술과도 통하는 것이다.
열심히 일을 하다 복병을 만나면 늘 긴장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그에 대한 방법을 찾아낸다. 그러나 방관하고 있다가 복병을 만나면 대처방법을 몰라 우왕좌왕 하게 된다. 나는 일을 하다가 난관에 부닥쳐도 그다지 당황하지 않는 편이다. 어차피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야 하고, 그때부터 개선방법을 찾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잘못을 탓해봤자 괜한 시간낭비만 하고 스트레스만 더 쌓이는 것이다.
1995년 예술의 전당 사장으로 와서 개혁적으로 일을 하여 어느 정도 성과가 가시화 될 시점에 나는 복병을 하나 만났다. 당시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등이 무너져 온 나라가 건물의 안전 문제에 대해 걱정을 하던 시기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서울시에서는 뒤늦게 대형 건물들에 대한 안전진단을 실시했는데, 이때 예술의 전당은 안전도 D급 판정을 받았다. D급은 건물이 곧 붕괴될 위기에 속하는 평가였다.
따라서 1995년 9월 국정감사에서 예술의 전당 붕괴 위기 문제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국회에 답변을 하기 위해 나간 나는 많은 의원들로부터 어떤 대책을 세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한번 정밀 진단을 실시하여 그 결과를 보고나서 만약 하자가 있다면 내년에 예술의 전당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관객의 안전을 위해서 제대로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언론에서는 “예술의 전당 내년 전면 폐쇄”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대서특필되었다. 예술의 전당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고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인데, 신문에서는 ‘전면 폐쇄’로 못을 박아버리고 만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시민들이 다 놀라서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공연은 보러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여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예술의 전당을 쇄신하기 위해 들인 공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언론을 탓하고만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서울시에서 실시한 안전진단에 D급 판정을 받았지만, 나는 예술의 전당 자체적으로 3억 원을 들여 다시 건축가협회에 정밀 안전진단을 의뢰하였다. 그 결과 B급 판정을 받았다. B급이면 안전에는 이상이 없는 등급으로 대체적으로 튼튼한 건물임이 입증된 것이다. 왜 서울시에서 안전진단을 했을 때와 자체적으로 안전진단을 실시했을 때와 다른 결과가 나왔는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3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안전진단을 했기 때문에 믿을 수 있었다. 문제는 서울시에서 실시한 안전진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문서로 작성하여 각 언론사에 보냈다. 그러나 언론사 어느 곳에서도 예술의 전당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안전진단 결과 B급 판정을 받았다는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한번 나간 기사를 정정하여 다시 취급하지 않겠다는 언론사의 태도였다.
그 바람에 예술의 전당은 안전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보러 온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였다. 그 후 적어도 1~2년 간 시민들은 극장에 오면 위아래를 훑어보며 천장이 무너져 내릴까 두려워 불안한 표정을 짓곤하였다.
또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1996년 10월에는 오페라하우스 천장 철골 프레임 보강 공사를 할 때 철골공의 부주의로 인하여 안전사고가 발생하였다. 발을 잘못 디뎌 공중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는 옹케도 소방용 용수 배관인 스프링클러 배관을 움켜잡아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그 충격으로 말미암아 스프링클러 배관 이음부가 분리되면서 5천 톤 가량의 물이 폭포처럼 객석으로 떨어져 내려 오페라하우스 전체가 물바다로 변하고 만 것이다.
전화를 받고 달려 나간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오페라하우스 1층 객석 의자가 모두 물에 잠겨버렸으니, 다음날 공연에 큰 지장을 초래할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나는 급히 예술의 전당 전 직원을 긴급 소집시켰으며, 용역회사 직원까지 합하여 20여명이 밤샘 작업으로 물을 퍼냈다. 세탁정비차량 10대, 펌핑용 모터 20여 대, 흡수용 기기 50여대가 급히 투입되었다. 각 사무실에 있던 양동이와 세숫대야 등도 모두 동원되었다.
그날 나는 밤을 새워 천장 내부, 객석 바닥, 객석 의자, 무대 바닥, 오케스트라 피트, 지하 기계실 등을 완벽하게 복구하여 다음날 공연에 전혀 지장이 없도록 하였다. 객석 의자에서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예방 조치를 취하였다.
예술의 전당 사장으로 근무하면서 이런 사건들을 겪은 나는 전 직원들이 일심동체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힘썼으며, 개인과 개인 간의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화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려고 노력하였다.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큰 사건들을 겪고 나자 사원들의 단결심도 더욱 강화되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