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일하면서 늘 광화문을 문화의 거리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사람들을 광화문 거리로 몰려들게 하기 위해서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벤트를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우물을 파야 물이 고이듯이 아이디어도 생각의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 걸려드는 법이다. 2002년 새해가 밝았을 때 나는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 열기를 어떻게 하면 광화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고심하였다.
나는 세종문화회관 간부회의 석상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해입니다. 월드컵 열기가 뜨거워지면 경기장 표를 구하지 못한 붉은악마들이 광화문으로 몰려들 것입니다. 우리 세종문화회관이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는데 일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1997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전 이후 해외원정을 떠나지 못한 붉은악마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백 명씩 광화문으로 몰려들어 뜨거운 응원전을 펼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광화문을 길거리 응원의 1번지로 만들고 싶었다.
“사장님! 붉은악마 쪽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월드컵 기간 동안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응원전을 펼치고 싶답니다.”
공연기획부 박인건 부장과 홍보실 이창건 실장이 보고하였다.
“그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주면 되겠는가?”
“경기장면을 현장감 있게 볼 수 있도록 대형 전광판을 설치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아이디어야!”
월드컵을 한 달반 남겨 둔 2002년 4월, 나는 SK텔레콤을 후원사로 끌여 들여 세종문화회관 앞에 대형 전광판과 무대를 설치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 달 후인 5월에는 2만 2개의 전구로 구성된, 월드컵 성공을 기원하는 ‘Go Go Koreaq'란 타이틀의 대형 전광판을 제작하여 대극장 중앙 외벽에 설치하였다.
드디어 월드컵이 개막되었다. 5월 21일 잉글랜드 전 개최 시 나는 월드컵 성공 기원 전광판 점등식을 가졌다. 이때 서울시장을 비롯하여 월드컵 조직위원장 등 각계인사가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한편 세종문화회관 중앙 계단에는 특설무대와 대형스크린을 설치하여 ‘오~ 필승 코리아!’의 윤도현 밴드, 이은미 등의 응원가수가 출연하는 거리응원전을 펼치게 했다. 이 응원전은 대략 2천여 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1만여 명의 붉은악마 응원단이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루었다.
5월 26일 대 프랑스전에서는 붉은악마 응원단뿐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 응원단까지 합세할 것을 예상하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전면 인도변을 가설무대 및 스크린을 이동시켜 설치하였다. 그날은 약 3만여 명의 응원단이 운집한 가운데 인디밴드인 크라잉넛 등이 출연하여 응원전을 유도하였다. 경기종료 후에도 응원단들은 세종문화회관 대형 전광판 아래서 사진 촬영과 함께 뒤풀이 행사를 개최하여, 국내 방송사는 물론 세계 각국의 방송사와 통신사들이 그 현장을 취재하였다.
|
|
| ▲ 2002년 월드컵 준결승전을 앞두고 예술인들이 주축이 된 로터리클럽 회원들과 함께 세종문화회관 앞 마당에서 |
|
대 미국전을 앞두고 미 대사관 측에서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의 응원전을 자제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해왔다.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빙상 경기 쇼트트랙 부문의 오노 선수가 헐리우드 액션으로 한국 김동성 선수의 금메달을 가로채간 것에 분노한 한국 응원단이 대 미국전에서 어떤 행동을 보일지 모른다는 판단 하에 미 대사관 측에서는 만약을 대비해 그런 요청을 해온 것이었다.
6월 6일 나는 서울시 월드컵 기획담당관과 기타 서울시 관계자에게 협조를 요청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6월 7일에는 서울시 시장단 회의에서 붉은악마 응원단을 시청 앞 광장으로 유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해서 시청 앞 광장은 거리 응원의 중심가로 변하였다. 이후 벌어진 한국과 미국전, 이탈리아전, 스페인전, 독일전, 터키전 등 5차례에 걸친 거리 응원전이 대대적으로 펼쳐지면서 시청 앞 광장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시청 앞 거리 응원전은 세종문화회관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열기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점차 시청 앞 광장으로 확산시켜 나갔던 것이다. 이러한 열기는 월드컵이 끝난 후 촛불 시위로 이어지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세종문화회관을 경영하면서 ‘광화문 일대를 문화벨트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관철시켜 나가는데 주력하였다. 종래의 광화문은 정부종합청사, 서울지방경찰청, 미국대사관 등이 몰려 있어 왠지 권위와 무게가 실린 딱딱한 분위기였다. 그러한 광화문 네거리에 세종문화회관이 자리 잡고 있는데, 사실 그 전에는 이곳도 정부의 공색행사나 치르는 곳쯤으로 인식되었다.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종문화회관이 민영화되면서 나는 그때부터 광화문을 문화의 거리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문화의 거리가 되려면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어야 한다.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하기 위해서는 각종 문화이벤트를 연출하여 그곳에 가면 뭔가 볼거리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적어도 세종문화회관이 민영화 된 이후 광화문의 분위기는 많이 바뀐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이 점차 광화문 일대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분위기가 촉발되어 세종문화회관이 월드컵 거리 응원의 1번지가 되는 ‘일대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