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00번 실매기 연습 (21화)

처음 인턴을 시작했을 무렵, 나는 매일 300번 이상 실을 매는 연습을 했다. 실마디가 주렁주렁 달린 실꼬리를 상급자에게 제시해야만 비로소 수술실 출입을 허용해주었기 때문이었다. 300번을 채우기 위해 화장실 용변기에 앉아 있을 때도 실매는 연습을 열심히 했다.

당시 병원에는 수술실, 응급실, 병실, 탈의실 할 것 없이 도처에 햇병아리 외과 의사들이 연습하다가 남겨둔 실꼬리가 널려 있었는데, 그것들을 볼 때마다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하여간 수술실에 들어가는 훈련의 첫 번째가 실매기였다. 실의 굵기는 여러 가지였는데, 1에서 시작하여 6으로 갈수록 실의 사이즈는 굵어졌다. 굵은 줄을 매는 일은 그나마 수월했지만 가는 실을 맬 때에는 끊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나는 불을 끄고 매는 연습도 했다. 굵은 실이든 가는 실이든 곱고 고르게 매야 하는데, 만약 예쁘게 매지 못하면 발악에 가까운 레지던트의 호통이 떨어지질 각오를 해야 했다. 심하면 그날 수술실에는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고 쫓겨나기도 했다.

실매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실의 매듭 마디가 촘촘한 간격을 유지하며 20센티미터에 도달해야 했다. 평소에는 복도를 거닐거나 동료들 혹은 레지던트들과 눈을 마주하며 잡담을 나누면서도 손으로는 와이셔츠 단추에 실을 매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심지어 뒤로 실을 매는 연습도 했다.

그 다음은 지혈겸자(흔히 ‘지혈감자’라고 불린다)였다. 외과의사는 기본기가 확실해야 하기 때문에 환부의 출혈 포인트를 소량만 지혈겸자로 정확히 잡는 동작이라든지, 지혈포인트를 실로 정확하게 매는 동작에 익숙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기 숙달에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환부의 출혈 포인트를 정확히 지혈겸자로 잡아주지 못하고, 크게 잡으면 레지던트가 들고 있던 지혈겸자로 손을 탁 때렸다.

“괜히 환자의 살만 죽이잖아.”
“.......”
“피가 나오는 포인트만 잡아.”

복부수술을 마치고 나면, 남자 환자들은 오줌을 잘 누지 못하게 돼있다. 그러면 고무줄로 오줌을 빼내는데, 감염의 우려 때문에 가능하면 직접 눌 수 있게끔 유도했다. 나는 덩치 큰 백인 남자들에게 재미있는 농담이나 미식축구 경기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며 그들의 기분을 좋게 했다. 그렇게 유쾌하게 애기하다가 친해지면 그들과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배에 자리 잡은 수술부위의 통증 때문에 힘을 제대로 줄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하여 나는 수도꼭지를 틀곤 했다. 센 물줄기를 보면 자연스럽게 오줌 눌 힘이 전이될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 유학시절

“어, 나온다. 나와!”
“됐어!”

이렇게까지 환자를 격려해주면서 나는 정상 배뇨를 성공시켰다.

드디어 인턴들에게 운명의 날이 왔다. 여뎗 명의 인턴 중 여섯 명만이 레지던트로 발탁되었다. 탈락된 다른 두 명은 다른 병원으로 갔다. 1년차 레지던트 시절은 인턴시절보다는 조금 나아진 상황이었지만, 병원일이 고되기는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참 잘 적응해 나갔다고 생각된다.

레지던트시절, 나는 대략 30분 쯤의 거리는 돈을 아낄 요량으로 걸어 다녔다. 어쩌다가 휴일에 시간이 나면 오페라하우스나 심포니 홀에 갔다. 제일 값싼 표를 구입하고 들어가 음악을 감상했다. 이것은 음악광인 내게 매우 크나큰 낙이었고, 한편으로는 사치였다. 연주회를 눈으로, 귀로 음미하고 나면 어둑어둑해진 거리를 걸어가 여지없이 중국집의 콤비네이션 플레이트를 먹고 푹 자곤 했으니, 다음날 월요일을 맞이하면 그렇게 기분이 상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월요일에는 하루 종일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라도 심포니홀에서 흘러나오는 유쾌한 음악처럼 기분 좋게 일할 수 있었다. 기분이 좋으니 당연히 일도 더 잘되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의 혈관 주삿바늘은 굵고 기다란데다가 뻣뻣했기 때문에, 더군다나 미군들은 피하지방이 두껍기 때문에 애를 먹곤 했다. 환자의 팔에 주삿바늘을 찔렀다가 뽑기를 여러 번 하다보면 자연히 환자들은 아프다고 신경질을 내기 일쑤였다. 나는 파란 힘줄만 보면 한 번에 찔렀다. 한 번에 혈관 주사를 꽂아준 덕분에 그다음부터 환자들이 나만 찾았다. 회진하는 교수를 따라 병실에 들어가면 환자들은 은근히 교수에게 나를 칭찬하곤 했다.

“한 번에 주사를 놓으니까 기분이 좋아요.”

교수가 우리를 돌아보며 물었다.

“누가 했지?”
“닥터 민입니다.”

치프 레지던트의 대답에 교수는 두리번거리며 길게 물었다.

“누구지?”
“접니다.”

그때, 나를 바라보는 교수와 치프 레지던트의 눈길이 나의 기분만큼이나 따뜻하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