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프레지던트 임무를 끝내고 (26화)
  제4장 유학시절의 인턴과 레지던트

그러나 이 화려한 치프레지던트 생활도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 있었다. 치프로서의 임무를 끝내는 마지막 날에는 유학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때는 1959년 6월 30일이었다. 간호사들이 돈을 모아 환송회를 열어주었는데, 병원일이 늦게 끝나면서 약속이 어긋나는 바람에 나를 위한 파티가 두 군데서 동시에 열렸다. 먼저 도착한 장소에 가보니 매우 성대한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수간호사가 가위와 만년필을 선물로 주었다.

나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직원들이 권하는 대로 술을 다 받아 마셨다. 기분 좋게 취한 나에게 누군가가 또 다른 파티에도 들러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났지만 곧 비틀거렸고, 그러자 운동선수 출신인 메틀로프(Matlof)가 나를 어깨에 걸쳐 놓다시피 한 채 다음 파티장소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미 취해버린 상태인지라 두 번째 파티는 어떻게 치려졌는지 지금도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다음날 병원에 퍼진 소문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파티가 끝난 뒤 실려나간 경우는 봤어도, 파티가 시작하기도 전에 실려 들어온 경우는 출이 처음이지 않아?”

그토록 의학 공부에 온 열정을 바친 이상, 나는 미국 외과 전문의 자격시험을 꼭 정복하고 싶었다. 미 외과 전문의 1차 필기시험은 1년에 1번, 12월에 치러졌다. 1차 시험은 동일한 문제로 미국 내 여러 도시에서 실시되었다. 이 시험을 위해 나는 1년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시험도 시험이지만 그동안 공부하면서 일만 했으니, 이제는 미국이 어떤 곳인지 자세히 알고 싶었다. 단, 1년을 체류하는 동안 무엇을 해서 먹고사느냐가 문제였다. 나는 그동안 일해 왔던 병원의 의과대학 교수수련위원장에게 이 문제를 상의했다.

“이 병원에 남아서 다른 과를 도는 것은 어떻겠나?”

나는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일반 병원에 취직해서 경험을 더 쌓겠습니다.”

그러자 교육수련위원장은 말했다.
“그러면 말일세. 자메이카 플레인 병원외과 스태프로 일하면서 우리 학교 학생들을 지도해볼 텐가? 자메이카 플레인 병원에는 우리가 소개해주겠네.”
 
▲ 환송회 파티에서 가위와 만년필을 선물로 받고

“고맙습니다.”

나는 곧 만성질환 전문병원인 메사추세츠 주립병원 으로 갔다. 레지던트시절 급료의 열 배인 연봉 1,2000달러의 조건이었다. 약 800개의 병상이 있는 이 병원에는 만성병 환자와 간 질환 환자가 많아서인지 주로 노년층의 장기 입원환자가 많았다.

나는 간질환 의사로 유명한 차마(Chamar) 교수와 함께 간경화증이 수반되는 외과환자들의 시술을 받았다. 이 환자들은 외과에서 직접 신환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병원 직원이나 가족 외에는, 대부분 내과로 들어왔다가 외과에 자문을 의뢰할 경우 수술여부를 판단하고 시술에 임하고 했다. 수술 후 환자가 회복되면 다시 내과병동으로 돌려보냈다.

숙소는 병원에서 지하로 연결된 8층 건물에 있었다. 숙소에서 스태프 의사는 나 혼자였고. 대개는 간호사와 병원직원들이 공동으로 사용했다. 나는 스위트룸에서 생활하였는데, 사용료는 월 20달러였다. 첫 달 급료로 약 1천 달러를 받았다. 매주 화요일 오후에만 터프츠 대학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나머지 시간은 주로 자메이카 플레인 카운티에서 생활했다.

처음에는 아무리 써도 돈이 남아돌았다.
‘와, 환장하겠군.’

나는 돈을 어디다 쓸지 몰랐다. 둘째 달에는 시보레 중고차를 사는데, 500달러를 썼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월 1천 달러로는 모자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을에 접어들면서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전문의 준비를 했다. 이미 수련의로 재직한 대학병원의 교육수련부장을 비롯하여 교수들의 추천을 받아놓았기에 나는 시험을 칠 자격은 갖춰놓고 있었다.

나는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역이용하여 모든 잡념을 떨쳐버린 채 공부에만 집중했다.

‘일 년에 한번 밖에 없는 시험이기에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 년을 더 체류해야 한다.’

사실 압박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는 해부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학생들의 실습실을 드나들었고, 병리 슬라이드 공부를 위해서 보스톤 의과대학에서 표본 한 셋트를 빌려오기도 했다. 시험공부를 하는 틈틈이 미국생활도 요령껏 즐겼다.

1차 시험 180개 문제 중 마지막 12개는 시간이 모자라 손도 대지 못했다. 역시 영어를 빨리, 정확히 구사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아주 쉬운 문제였지만, 그 내용을 정확히 읽을 시간이 내게는 턱없이 모자랐다.

‘이러다 떨어지는 거 아냐?’

내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는지, 20여일 후에 기분 좋은 1차 합격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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