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강의 그리고 5.16과 첫 수술 (31화)
  제5장 강단에 서며 후학을 가르치다

막상 서울대학교 의대 강사가 되었지만, 진병호 선생의 말처럼 사무실은 물론 가운도 없었다. 당시 나는 서울대학교 의대 대우 강사1호였다. 그때 내 나이가 서른둘이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노력했지만 속으로는 나 자신이 몹시도 초라하고 한심스러웠다. 

대략 8, 9개월 쯤 그렇게 다니면서 나는 매일 시계탑 건너편 목조건물 2층에 자리한 다방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러고는 나만의 지정석인 것처럼 한 구석의 테이블을 차지한 채 아침부터 앉아 있었다. 내 소식을 전해들은 레지던트들, 주로 젊은 의사들이 찾아와 미국 생활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외과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은 많지 않았지만 여하튼 나에 대한 관심을 가지며 질문을 한다는 것이 고마웠다. 그들은 나의 솔직한 반응과 명쾌한 답변을 눈으로 귀로 확인하며 서서히 나를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외래환자를 보는 시간이 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내 환자를 확보할 기회는 없었다. 그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외과에 관한 질문이 날아오면, 그때그때 답변을 할 수 있었다. 젊고 순수한 인턴과 레지던트들은 하루가 멀게 나를 찾아와 자신들의 지적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열성을 보였다. 

하루는 짓궂은 외과 전성관 교수가 나를 불러 들였다. 전성관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대 외과에서 두 번째 서열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넘버원은 진병호 과장이었다. 

“간경변 환자의 Porta_Caval Shunt 수술을 해봤나?”

이것은 간이 딱딱해진 탓에 간으로 흘러들어가야 할 문맥혈이 식도로 역류해서 식도에 정맥류가 생기고, 이것이 터지면 대출혈을 일으켜 생명을 위협하는 증세였다. 따라서 문맥혈류를 하공정맥으로 연결하여 문맥압을 낮춰주는 수술이 필요했다. 문맥을 하공정맥으로, 그리고 심장으로 들어가게 하는 수술이 한국에서는 있는 줄도 몰랐을 때였는데, 이는 당시 미국에서도 어려워하는 수술 중의 하나였다. 

“식도의 정맥류 덩어리가 터져서 피를 쏟으면 죽는 증상 아닙니까?”
“맞아, 문맥압을 내리기 위한 수술을 해보았나?”
“해봤습니다.”
“그럼, 여기서도 한번 해볼텐가?”
“그런 환자가 있습니까?”
“급환으로 들어왔네.”
 
붙여준 레지던트를 이끌고 나는 겁도 없이 병실로 가 환자를 살펴보았다. 즉각 수술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뒤 수술실의 수간호사를 찾아갔다. 

▲ 서울대 의대 교수시절
 
“처음 보는 선생님 같은데요.”
“민병철입니다.”
“아 그렇군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죠?”

나는 수술 이야기를 하면서 몇 가지 수술기구를 요구했다. 
“들어본 적이 없는 것들인데......”

하는 수 없이 내가 직접 찾아나서야 했다. 녹은 슬었지만 특수방비가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기구인 사틴스키(겸자, 鉗子)가 없었다. 이것은 하공정맥을 부분적으로 폐쇄시키고 구멍을 내어 문맥을 분합해야 할 수술에서 일부분은 피를 통하게 하고, 일부분은 피를 통하지 않게 하는 장치였다. 

하는 수 없이 큰 지혈겸자에 고무관을 씌워서 혈관이 찢어지지 않도록 보완하고 몇 번이고 실험한 후에 수술날짜를 당겨 잡았다. 심지어는 병원에 혈관 봉합사가 없어서 수술 전날 남대문시장에 가서 사비로 구했다. 

서울대학교 의대에서 첫 수술을 하는 날, 그것도 한국에서는 처음인 대수술을 하기 위해 나는 새벽같이 일어난 나는 돈암동 집을 나섰다. 도전감 때문인지 발걸음이 가벼워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길거리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필요 이상으로 군인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던 것이다. 그날은 1961년 5월 16일, 간밤에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났던 것이다. 병원에 도착해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알 수 있었지만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황급히 수술실로 향했다. 내심 약간 긴장이 되기도 했다. 

“하필이면 첫 수술이 이토록 힘들고 까다로운 케이스라니......”

나는 전성관 교수 앞에서 여섯 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하려니 다소 떨렸지만, 배짱으로 수술에 임했다. 옆에서는 동료 의사들이 어디 얼마나 대단한 실력인지 한번 보자, 하는 눈빛으로 내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이 환자가 죽으면 난 끝장이다. 잘 할 수 있어. 잘해낼 거야.’

구경꾼들에 둘러싸인 채 나는 적당히 긴장하며 손을 예쁘게 놀렸다. 미국에서도 수술할 때 손놀림이 섬세하고 매끄럽다는 평을 받았었다. 나는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면서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수술을 마치고 환자를 회복실 간호사에게 부탁하자, 간호사가 난감한 낮빛을 감추지 못한 채 말꼬리를 흐렸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환자 케이스라서..... 직접 보살펴주시는 건 어떤지요.....”
“하는 수 없죠.”

내가 수술복 차림으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 간호사는 민망한 듯이 허름한 가원을 내밀었다.

“갈아입으세요.”

서울대 의대에서 걸치게 된 첫 가운이었다. 큰 가운이라 팔소매를 둘둘말아 걷어 붙이고 환자 곁을 지키고 서 있었다. 병원 밖으로는 저녁 6시가 되자 계엄령으로 통행이 금지되어, 사람들이 저마다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환자의 상태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환자를 돌보다가 졸다가 다시 일어나 환자를 보면서 환자 곁에서 꼬박 밤을 지새웠다. 환자가 순조롭게 회복하여 퇴원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나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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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의대에 호적을 올리다 (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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