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의대에 호적을 올리다 (32화)
  제5장 강단에 서며 후학을 가르치다

이 환자가 살아나면서부터 주변의 시기와 질투가 좀 누그러졌다. 

마침내 미국에서 딴 외과의 자격을 동료들에게 인정받게 된 셈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교수들이나 동료들이 내게 갖고 있던 선입견은 내가 학생시절에 바이올린이나 켜면서 오케스트라에 정신이 팔려 공부를 게을리 했네, 그랬던 사람이 유학을 다녀왔다니 말이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 선입견을 수술실에서 말끔히 날려버렸으니, 정말로 수술을 잘한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 덕분에 나는 다방 한구석에서 병원 응급실로 사무실을 옮길 수 있었다. 

나는 응급실 구석 의자에 앉아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는 레지던트들을 도와주었다. 낮선 케이스의 환자들을 마주한 채 진땀을 흘리는 그들에게 적절한 조치법을 자세히 가르쳐줄라치면 그들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응급실에서 주로 인턴, 레지던트들과 함께 환자를 돌보면서 많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젊은 의사들이 나를 잘 따라주었기 때문에 생활하는 것이 한결 즐거웠다 .

당시 인턴 중에 1961년 3월 졸업생인 홍창기(내 후임, 서울 아산병원장), 최규완(건국대 의료원장), 주홍재(경희대 의대 교수 퇴임, 나비박사), 오원환(삼성병원 정년 퇴임, 미 샌디에이고에서 은퇴 후 생활), 김광우(작고), 김용일(전 가천의과대학 총장)등이 나를 자주 찾아왔던 기억이 난다.

3월에 부임해서 대우강사 9개월 만에 드디어 전임강사로 임명을 받았다. 사무실은 닭장 같은 방이었지만 책도 꽂아놓고 뻣뻣한 가운도 생겼으니, 진 과장이 말한 호적에 내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환자가 밀려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하루 종일 수술에 매달려야 했다. 젊었고, 기운이 좋았기 때문에 매일 아침 7시에 출근을 해서 밤 10시, 11시에 귀가했다. 나에게는 휴일도 없었다. 

이 무렵에는 전화기가 무척 귀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 상 외과의사 집에는 전화기가 필수였다. 휴일에도 위독한 환자기 생기면 언제든지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으니까. 다행히 전화기 문제는 친척의 도움으로 해결되었다.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정말이지 신바람이 났다. 내 생애에 가장 열정적으로 환자를 수술하고 돌보는 틈틈이 수술실에서 레지던트들에게, 강의실에서는 의과대학생들에게 열과 성을 다해 강의하던 시절이었다. 

통행금지는 밤 12시오 늦춰졌다. 새벽 1시 30분 경에 수술실에서 나올 경우에는 수술실 근처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통금해제가 되는 새벽 4시에 앰블런스를 타고 청진동에 가서 해장국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수술실이나 교수실 어디에서든 잠깐 자고 7시에 일어나 세수를 하자면 아주 상쾌했다. 밤낮없이 병원에서 살았지만 나는 참 행복했다. 
 
▲ 서울대 의대 교수 시절

1960년대 초 서울대학교 의대 수술실에는 에어콘이 없었다. 삼복더위 때 기껏해야 사람만한 크기의 얼음을 수술실 중앙에 갖다놓은 채 시술해야 했다. 땀이 비 오듯 흐르면 간호사가 계속 땀을 닦아주었고, 갈증이 나면 발대로 물을 쭉쭉 빨아가면서 수술을 했다. 

특히 삼복더위 속에서 간이나 췌장같은 부위의대수술을 하고나면 체중이 3~4킬로그램씩 확 빠져버렸다. 몸에서 수분이 다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이때 마시는 맥주 맛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불규칙한 식사 탓으로 위가 늘 부담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수술실에서 근무를 해야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예상보다 수술이 길어지면 당연히 굶어야 했고, 어쩌다 간신히 식사할 시간이 나면 폭식을 했다. 결국, 오래 걸리는 수술을 할 때는 미리 설렁탕을 주문했다. 

계속 되는 수술 중 잠시 쉴 틈을 이용해서 옆방에 마련된 먹을거리를 10분 이내에 처치하고 건너오곤 했다. 환자를 잠시 조수에게 맡긴 채, 주전자에 담아온 설렁탕 국물에, 따로 가져온 밥, 파, 김치를 즉석에서 후다닥 말아 먹는 식이었다. 그렇게 10분 씩 짬을 내 식사 겸 휴식을 취하면 수술하는데 한결 능률이 올랐다. 

그러다가 한번은 아찔한 사태를 맞은 적도 있다. 호주에서 온 선교사 출신의 간호사가 병원 봉사자로 와 있을 때였다. 그녀는 수술실을 순회하면서 집도의가 수술하는 동안 흘리는 땀을 닦아주는 역할을 했다. 그날도 조수에게 환자를 잠시 맡긴 채 집도의인 나를 비롯한 레지던트들은 피 묻은 장갑을 낀 채로 옆방에서 밥을 마시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다급하게 나를 찾았다. 

“큰 일이 났어요. 발리, 빨리!”

나는 수저를 내동댕이치며 수술실로 뛰어 들어갔다. 개복한 배 위로 피가 넘쳐나 바닥에 핏물이 홍곤했다.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심장을 만져보았다. 심장은 속이 빈주머니와 진배없었다. 

“빨리, 피! 피 준비해!”

혈액 대여섯 포를 수혈하고 계속해서 펌프질을 하게 했다. 환자의 체중은 60킬로그램이었는데, 혈액 4500CC를 투여하고 심장 마사지를 계속한 덕분에 가까스로 소생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본격적으로 수술을 시작했다. 

다행히 환자는 완전회복이 가능했다. 원인은 조수가 졸고 있다가 들고 있던 혈관겸자(흔히 ‘혈관감자’라고 불린다)를 손에서 놓치는 바람에 피가 콸콸 쏟아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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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사건건 부딪히는 현실들 (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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