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 외워라 (3화)
  제1장 소년의 꿈은 인생으로

화동(花洞)에 위치했던 옛 경기중학교는 지금의 정독도서관이다. 1학년 때는 가까운 팔판동 친척집에서 기숙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수업은 1학년을 시작하자마자 식물학 선생이 강의한 내용이었다. 지금까지도 확실히 기억이 나는데 그 선생은 작은 키의 일본인이었다.

“훗날 제군들이 치러야 할 대학 입학시험에는 식물 두 개를 비교하라는 문제가 곧잘 나온다. 그때 다음의 여섯 가지를 비교할 줄 안다면 만점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 백 번 외워라.”

아이들이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100번을 외우라는 말인가.

식물학 선생은 학생들의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칠판에 글씨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뿌리(根) / 줄기(幹) / 잎(葉) / 꽃(花) / 열매(果實) / 씨앗(種子)

식물학 선생은 맨 앞 글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너 얘기해봐라. 이 글자가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

한 아이를 가리키자 서슴없이 ‘뿌리’라고 일본말로 대답했다. 다음 학생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계속해서 반복하며 아이들이 대답하는 동안 어느새 우리는 그 단어가 뜻하는  것을 해석하고 암기하여 머릿속에 채워 넣었다.
 
그 선생의 교수 방법은 평생 동안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
 
▲ 현재 정독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는 옛 경기중고등학교 교사(校舍) 건물 / 현재 경기고등학교는 강남구 삼성동으로 이사했다

‘이 다음에 강의할 기회가 온다면, 중요한 것은 저런 식으로 인상 깊게 가르쳐야겠다. 좋은 학교는 선생이 만드는 구나.”

중학교 때 강한 인상을 받았던 그의 교수법은 훗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이루어졌던 나의 강의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몸에서 출혈이 심해 쇼크가 발생했을 때의 치료법이 뭐냐? 힌트, 첫 번째는 수혈, 두 번째는 뭐냐?”
“산소!”

학생들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다. 수혈이다. 그럼 세 번째는 뭐냐?”
“산소!”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 젓는다.
“세 번째도 수혈이다. 네 번째는 뭐냐?”
“수혈!”
그제야 학생들이 내 말뜻을 알아듣고 답변한다. 나는 다시 묻는다.
“그럼 다섯 번째는 뭐냐?”
“수혈!”
“음, 그리고 여섯 번째가 산소. 알았어?

이런 식으로 강한 인상을 주며 강의를 한 것은 경기중학교 1학년 때 가르침을 받았던 식물학 선생의 교수법을 본뜬 것이다. 강력한 인상을 주기 위해 반복학습을 유도하는 교수법은 오늘날에도 크게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때 강한 인상을 받았던 또 한분은 이와무라[岩村] 교장이었다. 1943년 무렵의 중학생 나이라면 누구나 가슴 깊숙한 곳에 민족감정을 움켜쥐고 있을 때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이와무라 교장은 우리를 자식처럼 돌봐주었고, 나는 그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조선 학생들을 무척 귀여워해주었고, 사랑해주었다. 교사는 일본인과 한국인이 반반이었지만, 차별은 없었다. 일본어로 수업을 받았지만 적어도 인간적으로 굴욕을 당했던 적은 적어도 졸업 때까지 한 번도 없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선생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탁월한 교수법아래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의 기초를 닦는데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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