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구로병원을 개원하고 나서 첫 번째 부딛힌 문제는 고대 교수들의 봉급이 서울시내에서 가장 적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이미 최종 전형 때부터 나돌았던 말이 현실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고대 부속병원이던 구로, 혜화병원의 공동문제라서 나 혼자 독단적으로 해결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여러 방면으로 고민한 끝에 나는 특진제도의 활용을 떠올렸다. 그때가 내 나이 쉰셋이었다.
급기야 교수들 사이에서까지 급료가 낮다는 불만이 눈덩어리처럼 쌓여갔다. 사실 다른 대학병원에 비하면 당시 고대 교수들의 급료는 형편없었다. 이미 특진제도의 부활을 결심한 마당인지라 김준엽 총장에게 내 의견을 제시했다.
“특진료로 의사의 처우를 개선하겠습니다.”
“난 수치를 잘 몰라요. 기획처장과 상의해보세요.”
나는 곧바로 김희집 기획처장에게 말했다.
“특진료의 절반은 학교에, 나머지 절반은 의사 처우 개선에 힘쓰겠습니다.”
“자신 있습니까?”
“있습니다.”
나는 박천봉 관리부장이 며칠 동안 계산해서 만든 초안을 갖고 과장회의를 소집했다.
“교수들의 월급을 지금의 두배로 올린다는 목표를 갖고 특진제를 활성화하기로 했습니다. 이달부터 매달 특진료에 맞춰 급료를 조정할 것입니다.”
아무도 내 의견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계속해서 기획처장과 장시간에 걸쳐 협의한 끝에 현재 1.5%에 지나지 않는 특진 수입을 8~10%까지 올리기로 하고, 특진 수입의 반은 학교에, 나머지 반은 의사들에게 나누어주기로 합의했다.
특진을 독려했더니 매달 눈에 띄게 특진료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특진료 수입이 전체 수입의 10%에 가까웠다. 서울대학교 병원이 대략 6.7%, 고대 병원은 1.5%에 그치고 있었던 것을 보며, 우리 구로병원에서는 특진료 수익을 7%대까지 끌어올렸다. 특진 교수들에게는 매달 특진 수당을 올려주었다.
몇 달이 지나자 이들의 봉급이 계획대로 두 배 가까이 올라갔다. 교수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혜화병원에서 야단이 났다.
“구로병원은 미운 짓만 골라한다. 구로병원으로 간 제자나 후임들보다 내가 더 봉급을 적게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고대 병원을 서울대 출신으로 포진시키지를 않나. 월급을 교수보다 제자들이 더 받지를 않나......”
급기야 총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고대 혜화병원의, 반발이 거세졌으니 그쯤에서 월급을 통제해달라는 지시였다. 그 이후부터는 초과된 이익을 따로 적립해 나갔다. 많은 세월이 지난 후 결국 적립된 자금은 고려대학교로 이관되었다.
여하튼 일단 봉급을 올리는 것은 성공했다. 여전히 혜화병원 측의 불평이 있었지만 점차 혜화동 의사들도 상향 조정한 월급을 받게 되었다.
이 무렵부터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허리가 아팠다. 사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한 것은 1975년쯤부터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심할 때는 자동차를 한 시간만 타도 반드시 중간에 차 밖으로 나가 간단한 스트레칭을 해야 계속해서 자동차를 탈수 있을 정도였다.
허리는 좀 아팠지만 구로병원 업무에 관한 열정은 대단했다. 1983년 당시에는 에어컨이 흔치 않아 냉방이 잘된 병원은 로비마다 피서지라도 되는 양 인근 동네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런데 퇴근 무렵이 되면 시설과에서 에너지를 절약한다는 이유로 냉방을 껐다. 그래서 나는 시설과에 지시를 내렸다.
“저녁 아홉시까지는 에어컨을 켜두세요. 동네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병원고객이자 홍보요원이 되는 겁니다.”
구로동 사람들은 정말로 병원의 홍보원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병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와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응급실에 내던지고 가버린 환자를 병원에서 살려내어 무료로 보낸 일이며, 분신자살을 기도한 환자를 살려낸 일이 입소문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개원 후 서너 달이 지나면서 흑자로 돌아섰으니, 250개의 병상이 모자로 500개로 늘려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각과의 입상 능력에 따라 업적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병원장으로서 부진한 과는 독려하고 앞서가는 과는 더 앞서가도록 지원했다.
몇 개 과가 앞서가기 시작하면 자연히 다른 과에 영향을 미쳐 결국 상향 평준화를 이루게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병원 내에서는 불만이 있었지만 나는 이 방침을 밀고 나갔다. 모든 것이 지난 오늘날 생각을 해보면 그 당시 내 판단은 결코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고대 구로병원장의 임기 3년 중 1년만 좋았고, 나머지 2년은 사실, 힘들었다. 고대 병원에 고대 동문을 더 많이 영입하지 못한 것이 최악의 죄였다. 고대 출신들로부터 냉대를 받는 병원장 노릇을 하느라 고통을 많이 받았다.
병원장은 이미 의사라기 보다는 기업의 CEO라고 생각해야 한다. CEO는 조직 내부의 인력을 장악하는 카리스마 없이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러나 역시, 아무리 병원장이라 할지라도 조직 내부의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저항 앞에는 어찌해볼 재간이 없었다.
고대 출신 의사들이 아닌, 다른 대학 출신을 많이 받아들였다고 해서 의무행정처장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숱한 압박이 들어왔다. 병원장 생활 1년이 지난 후부터는 되는 일이 없었다. 내가 계획하고 구상한 일이 거부당하고 방해받으면서 나는 점차 로봇처럼 되어갔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허리를 움직이는 것 자체가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점심시간이면 재활의학과에 가서 허리를 치료받는 것이 매일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물론 고대에 대한 기억이 고통스러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대 출신들은 각자 자기만 잘났다고 생각해서 협력이 잘 안되지만, 고대 출신들은 따뜻하고 인간미가 있었다. 특히 고연전 경기가 있는 날, 운동장을 가득 메우는 함성소리를 뿜어내며 응원하는 그들을 볼 때면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