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구출작전 (48화)

나는 전기공급이 제대로 안된 탓에 의료진이 환자에게 수동식 인공호흡기로 직접 산소 공급을 해주는 상황을 설명하며, 지친 의료진이 10분만 소홀히 해도 환자를 영원히 놓치고 만다는 사실도 말해주었다.

나는 최소한 중환자들만이라도 다른 병원에 이송해줄 것을 권 장군에게 호소했다.

결국, 권 장군에게서 중환자를 비롯한 환자 후송을 도와주겠다는 확답을 받아냈다. 그런데 상황실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중환자를 받아줄 병원이 없다는 보고가 날아들었다. 나는 다시 협조를 끈질기게 구하도록 독려했다. 그런데 지금쯤 환자들의 수송문제로 소란스러워야 할 복도가 이상하리 만치 조용했다.

원인을 알아보았더니 그새 원무과 직원들이 직업정신을 발휘하여 각 병동 앞 복도에 ‘퇴원수속창구’라는 팻말을 만들어놓고 퇴원비를 수납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재지변 앞에서 아무런 준비도 안 된 보호자들에게 퇴원비를 받아내겠다니........

어차피 병원은 엄청난 재정적 손실을 얻은 뒤였으니, 상황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퇴원비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다가 병원 이미지에 먹칠을 하면 재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 아닌가. 자고로 돈을 잃는 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다. 나는 무조건 전원 퇴원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아침 10시경, 고무보트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비호부대 12대대 특전사 부대원 36명이 고무보트와 밧줄 등의 구조장비를 갖고 온 것이다. 15인승의 보트엔 모터와 노를 저어 갈 수 있는 장치가 부착되어 있었다.

병원 후문 바로 위 2층 진단방사선과 창문을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 후송은 중환자부터 먼저 시작되었다. 인공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들은 진료보조원들이 5킬로그램짜리 산소통을 어깨에 메고 동승하여 산소공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조치했다.

가슴에 행선지 병원과 병명, 치료 상태, 주치의 이름이 달린 표를 단 환자들이 의료진들과 함께 보트에 올라탔다. 특전사 군인들에 의해 보트가 무사히 도로변 강둑에 닿으면, 그곳에서는 환자의 기재 내용에 따라 병원별로 앰블런스에 태웠다.

중환자들의 후송을 모두 끝낸 뒤, 이번에는 일반 환자들의 후송이 시작되었다. 후문에서 고무보트로 환자를 한명씩 내보낼 때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하늘에서는 땡볕이 내려 쪼이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공기 덕분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는지, 모두의 얼굴에는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올림픽대로에서 환자를 해당병원 별로 분류하여 차에 옮겨 태우고 나면, 현지 파견 병원까지 주치의나 간호사가 따라가 그쪽 병원에 인수인계를 하는 것까지 책임지도록 완벽한 조치를 취했다. 그 과정에서 작은 혼란과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환자와 의료진들이 일심동체가 되었기에 늦은 오후에 이르러서는 환자수송작전을 완벽하게 끝낼 수 있었다.

나는 모든 환자들이 떠난 텅빈 중환자실을 둘러보았다. 병실은 마치 폐허가 되어버린 공간 같았다. 내과계 중환자들은 모두 이송되었으나, 더러 도저히 이송이 불가능한 몇몇 심장계 중환자들은 지친 의료진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사실, 계속 병원을 돌아다니면서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으나, 아무도 내게 시원스레 보고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중환자실이 텅빈 그때까지도.

▲ 특전사의 도움을 받아 환자를 보트에 태워 후송시키고 있다

사흘 째 되던 날 이른 아침, 정 회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계동 회장실에 들렀다. 정 회장을 내 어깨를 두드리며 위기 상황 속에서도 피해 없이 잘 대처한 것을 치하했다.

“잘 했다!”

정 회장은 간략하게 피해상황에 대한 보고상황을 전해 듣고는 곧바로 오용남 상무를 불러들였다. 그러더니 오 상무를 향해 다짜고짜 물었다.

“너 지금 뭐해?”

“네?”

“무슨 일을 하고 있냐고?”

오 상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정 회장은 지시를 내렸다.

“그거 당장 집어치우고 병원복구부터 해라. 일주일 안으로 끝내. 시간별로 보고하고. 병원에 상주하고 있으면서 복구에만 전념해.”

병원에 와서 복구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병원협회 노경명 회장단의 방문을 받았다. 신현탁 부회장, 한두진 원장과 하호욱 사무총장 등이 외롭고 힘든 위기를 잘 넘긴 것을 위로해주었다.

이제 병원 외곽에는 자동차 정비작업반이 도착해서 <현대자동차서비스센터>를 가동했다. 지하층의 물을 퍼내는데 필요한 양수기가 도착했고, 병원에는 현대건설 팀이 상주하며 밤낮없이 복구작업에 열중했다.

배수용 펌프는 직경이 70센티미터쯤 되는 것을 20개정도 지하에 꽂아서 발동기로 물을 뽑아올렸다. 하루 만에 지하 1층에 출입할 수 있었다. 이틀이 지나서는 지하 2층까지도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많은 기물들이 지하 1층 천장에 붙어 있었고 심지어 천장에는 자동차가 끼어 있기도 했다. 환자치료용 중장비, 방사선치료기, 감마나이프 등의 기기들이 눈물이 나올 정도로 처참하게 변해 있었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천만 다행인 것은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정말 다행히도 주차장의 여인은 없었다. 어디에선가 끌어온 수돗물로 사방팔방에서 오염된 모든 것을 씻어내기 시작했고 발전기, 변압기 등은 떼어내어 울산으로 실어갔다. 전 직원 모두가 합심하여 의자, 책상, 식기, 심지어는 의무기록까지 씻어내며 복구작업을 도왔다. 참으로 눈물겨운 모습들이었다.

당시 원무과에서 집계한 환자들의 퇴원비 총액은 의료보험 부담을 제외하고 4억5천만 원이었다. 그 중 현금으로 1억8천만 원을 그해 환자들이 자진납부해 주었고, 나머지 2억 7천만 원은 미수금으로 처리했다.

그 후 원무과는 병원 앞으로 계좌를 만들고 이 번호를 기재한 가정통신문을 환자들이 적어준 주소지로 발송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병원비를 송금하여 1922년 10월에 보고받은 마지막 미수금은 겨우 10%에 불과했다. 병원의 처사에 만족한다는 뜻이었으리라.

그밖에 피해예상액을 상정해보니 의료장비만 해도 1990년 당시 기준으로 66억 원에 이르렀고. 의료물자가 16억 원, 건물부속설비비가 20억 원, 총 102억 원으로 집계되었다. 물론, 건물 복구비는 제외한 수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