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편의시설의 개선 (50화)
  제7장 서울아산병원장 시절

동관이 열리기 전, 정 회장은 장기입원 중인 부인의 병문안을 겸해 한주에 두 번 정도 병원에 들렀다. 당시 부인은 서관 12층에 입원하고 있었다. 
 
그때는 요즘처럼 차량이 많지 않아 길이 한가할 때는 계동에서 병원까지 15분이면 충분했기에 정 회장은 잠깐만 짬이 나도 병원을 방문했다. 아마 1991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정 회장에게 처음으로 병원경영에 관한 지시를 받았다. 

“환자가 약 받는데 두 시간이나 걸리면 고쳐야 할 것이 아닌가.”
‘아차!’

사실, 진찰을 받고 난 뒤 약을 타기 위해 환자나 보호자들은 몇 시간을 기다리며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고쳐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노한성 양국장과 수차례 상의한 끝에, 입원을 늘렸고 약포장 시스템도 개선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는 의사들이 약처방을 간단히, 그리고 단기적으로 내리기까지 했지만 역시 효과는 없었다. 그즈음 나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심장병원 낙성식에 참석했다. 견학을 하면서 계단을 내려오는데, 이상하리만치 한산한 약국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동행한 심장병원 관계자에게 물었다. 

“바쁜 시간일 텐데 어떻게 저리 한가할 수가 있습니까?”
“심장계 쪽만 취급하기 때문에 약종류가 적어요. 아무래도 조제하기가 한결 쉽겠지요. 그러다보니 바로바로 약이 나옵니다.”

그때 내 머리 속에서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다. 

이후병원 동관을 신설할 때, 약국을 여섯 개로 쪼개 ‘분산약국’을 개설했다. 중앙약국은 처방이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약만 맡아 조제했고, 나머지 약국은 비슷한 기능별로 쪼개어 분산 제조했더니 약이 금방금방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시스템은 그날그날 환자를 보는 특진환자가 자주 처방해온 약을 미리 준비해놓고, 처방전이 오면 바로 대행하는 방법도 가능했다. 환자들이 화장실에 잠깐 다녀올 정도의 시간이면 약을 받을 수 있었다. 환자의 만족을 위하여 만든 분산약국은 다른 병원에서도 단번에 적용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나는 정 회장이 제시한 숙제를 그렇게 2년 만에 끝낼 수 있었다. 

평균재원일수를 줄여라

어느 병원이건 병원 경영상 큰 쟁점은 평균재원일수(平均在阮日數)를 줄이는 문제다. 병상 회전율은 병원수지와 직결된다. 수술환자의 경우, 수술 전날과 수술 당일에 발생하는 비율은 전체 입원비의 반이 넘는다. 따라서 실을 뽑을 때까지 병원에서 기다리는 것은 비용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간단한 수술을 한 경우 환자가 걸을 수 있다면 나는 환자를 바로 퇴원시켜 통원치료를 꾀했다.

그래서 당일 수술센터도 개설했다. 오전에 마취수술을 마치면, 오후에 퇴원하는 시스템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30년 전에 시행하여 지금은 정착되었다. 통계적으로 미국 병원들의 평균 입원일은 6일이었는데, 아산병원은 대략 8~9일로 줄이려고 노력했다. 
 
▲ 현대아산병원 중환자실 풍경

우리보다 더 느슨한 병원은 통상적으로 2주일정도였다. 작은 수술을 위주로 운영하는 병원인데도 그랬다. 일부 환자들은 더 입원하겠다고 사정해도 안 되니까, 외부 인사들을 동원하여 의사와 원장에게 청탁하기도 했다. 

환자 입장에서는 입원비 약 1만8천 원의 자기 부담으로 장기 입원하면서, 진료대기, 통원치료 시 동행할 가족들의 시간부담, 교통비 등의 부담을 덜고 싶어할만 했다. 특히 말기암, 중풍 등 간병인이 필요한 환자들이 장기입원을 원했다. 하지만 상식적인 저항을 깨고, 관례를 깨고, 평균재원일수를 줄이려고 나는 또 점검하면서 내 의지를 관철시켰다. 

수술실 안 레스토랑, 병원 안 레스토랑

예전에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수술 도중 밥을 먹다가 큰일이 날 뻔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러한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수술실에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진들의 식사를 해결해줘야 할 필요성은 충분했다. 그래서 나도 수술복을 입고도 24시간 언제든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3층 수술실 앞에 만들도록 지시했다. 

이제 의료진 500명이 수술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다른 사람과 교대로 지하 식당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병원 지하층 식당 개선에도 손을 댔다. 구내 식당이 한군데 밖에 없는 종합병원이 말이 되는가? 동관을 설립하면서 시설과의 안광식 씨 등 몇몇 직원들과 함께 3천병상인 대만의 장궁병원을 견학했다. 그곳의 식당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광장처럼 넓은 지하층이 전부 식당가였는데, 때마침 점심시간이었던지라 우리 일행은 그중 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종업원들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서빙을 하고 있었는데, 빈자리는 없었다. 안내하는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1,500평의 이 식당가에는 상해, 사천, 광동 등의 중식은 물론 일식, 양식에 이르는 다양한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식당주인에게 물었다. 

“장사 잘됩니까?”
“사람들이 먹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식당 주인은 오히려 반문했다. 

나는 귀국한 뒤 장궁병원의 그것을 어떻게 우리 병원에도 반영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병원 유동인구의 규모는?”

입원 환자 2천여 명에 보호자 한명 이상을 감안하여 대략 4천여 명 선으로 잡았다. 여기에 문병 등의 목적으로 온 방문자까지 합하면 약 6천 명 정도. 또한 외래 환자를 4~5천명으로 잡고 이를 보호자까지 더하면 총 1만 5천 명 정도의 유동인구를 예상할 수 있었다. 이들 중 일부만 병원 구내에서 식사를 한다고 가정해도 식당 이용객이 최소한 2천여 명은 될 듯 했다.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적자가 날 위험성이 너무 큽니다.”
직원들은 안 된다고 생난리를 쳤다. 

“장궁병원의 식당가처럼 메뉴도 중식, 한식, 양식, 일식, 패스트푸드, 분식 등으로 다양하게 나눠 음식 맛만 좋게 하면 된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맛 좋은 음식을 제공한다면 식당은 충분히 잘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비온 뒤의 굳어지는 땅 (49화)
  오너의 병원에 대한 애정 (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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