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과 결혼 (5화)
  제1장 소년의 꿈은 인생으로

소개 전학(疏開 轉學)

방학 때 집에 내려가면 조부는 종손이자 장자인 내게 결혼을 재촉했다. 조부는 열다섯에 결혼했다. 조부가 결혼을 강요할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개학 무렵 서울로 올라가는 날에는 으레 조부의 성화가 내 어깨를 짓눌렀다.

그 즈음 학교에서는 소개(공습이나 화재 따위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사람이나 시설을 분산시키는 것) 전학을 권했고, 나 자신도 이쯤해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불량학생이 되고 말겠다는 양심의 자책을 받고 있던 터라 기회라 싶었다. 분위기를 바꾸는 의미에서도 진주로 소개전학을 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1945년 6월, 나는 진주중학교로 전학을 가서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게 되었다. 집에서 밥을 마음껏 먹고 다니니까 심리적으로 편안했다. 그 당시 경기중학교에서 전학온 학생이라는 소문이 전교에 퍼져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이 다가와 날 원숭이 구경하듯이 쳐다보며 이것저것 불었다.

“경기중학생들은 공부를 다 잘하냐? 경기중학교는 어떤 학교냐?”

나는 아이들이 묻는 말에 친절하게 답변해주면서 몇 명과 친구가 되었다. 하필이면 그들 역시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다가 두 달 후 8.15해방을 맞이하였다.
 
▲ 진주중 시절
 
진주 다방의 명DJ

8.15, 해방을 축하하기 위해 진주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그때부터 나는 바이올린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음악에 취미를 갖게 되면서 나에게는 다방에서 온종일 명곡을 감상하는 취미가 생겼다.

베토벤, 슈베르트, 차이코프스키의 명곡은 들으면 들을수록 좋았다. 나는 틈만 나면 진주에서 클래식을 들려주는 다방에 들러 음악을 들었고, 나중에는 내가 직접 선곡하여 손님들에게 들려주는 DJ노릇도 했다. 주인의 부탁으로 시작했는데 손님들로부터 선곡을 잘 한다는 칭찬을 들었고, 방학동안만 그곳에서 DJ로 일해 달라는 주인의 요청도 받았다.

신이 난 나는 좋아하는 명곡을 실컷 들으며 중간 중간에 곡에 대한 해설과 음악가들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명DJ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그쯤에 이르자 나는 직접 악기를 다루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고 어머니를 졸랐다.

아버지 몰래 어머니가 사준 바이올린으로 나는 골방이나 광에서 연습을 했다. <호만 바이올린 교본>으로 연습했는데, 찍찍 거리며 바이올린을 켤 때마다 조부와 아버지는 질색을 했다. 나중에는 서울에서 온 외사촌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수험생이 되면서부터는 일단 대학을 들어가고 봐야했기에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공부에 열중했다. 그토록 놀기는 했지만 한번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뒤로는 광기를 뿜어대듯 미친 듯이 공부했다. 3개월 동안 열심히 공부한 끝에 나는 경성대학 예과(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삼청동 인근에서 하숙을 하면서 청량리에 위치한 학교에 다녔다. 주인 아저씨의 성이 천 씨였던 것까지 기억난다. 1학년 말에 접어들면서 경성대학교는 서울대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예과 2년, 본과 1, 2년 시절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에 미치기 시작한 나는 전희봉 씨로부터 사사를 받아 기초를 닦았다. 본격적인 레슨은 홍지유(洪志裕. 홍난파 선생 조카) 씨로부터 배웠다. 정말 열심히 바이올린을 배웠기 때문에 서울대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가입했다.

오케스트라의 제1바이올린을 맡고 본과 3년까지만 해고 오직 음악에만 심취해 살았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음대로 전과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가득 차 있을 정도로 바이올린이 좋았다. 의학이 전공인지 음악이 전공인지 나 자신도 헷갈릴 정도였다.

결혼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조부는 나를 열다섯 살 때부터 결혼시키려 했다. 아버지는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부는 나를 볼 때마다 담뱃대로 마룻바닥을 툭툭 치며 불호령으로 결혼을 재촉했다. 대대로 과거에 급제한 양반 가문에다 서울대생이었기에 혼담이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왔던 모양이다.

서울대 예과 2학년 때, 집안에서 혼담이 오가는 규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에서 경기여고를 다니다가 소개전학으로 진주에 내려와 진주여고를 다녔고, 해방 후에는 다시 서울로 올라갔던 규수였다. 진양군 지수면 승산리가 고향인 규수 허영애는 만석꾼 명문가의 14남 3녀 중 막내였다. 허 씨 집안을 대변하는 종갓집 혈통이었다.

당시만 해도 직접 맞선을 보는 것은 어려웠고 서로 사진을 교환해보는 정도였는데, 나는 도무지 사진만 보고 결정할 수 없었다. 멀리서라도 실물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내 뜻대로 여학생이 학교를 오가는 길목에 서 있다가, 교복을 입고 지나치는 모습을 찬찬히 엿보았다. 참한 얼굴과 조신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 결국 집에 결혼하겠다고 기별을 보냈다.

결혼식은 처가인 지수면에서 전통혼례로 치렀다. 신부와 함께 본가인 진주에서 얼마간 지내다가 개학과 동시에 나만 홀로 서울에 올라와야 했기에 신부는 당분간 신랑도 없는 시댁에서 혼자 시어른들을 모시고 살아야 했다. 그러다가 얼마 후 서울 명륜동에 집을 마련하여 함께 살게 되었다.

 
  배고파서 공부가 안돼 (4화)
  바이올리니스트 의과 대학생 (6화)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