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과 운동, 그리고 산탄테르 피아니스트_2 (59화)
  제8장 진료실 밖에서

나는 미국과 영국을 오가면서 딸아이를 가르칠 스승을 찾아다녔다. 

1977년, 딸아이는 영국의 마리아 커쇼 다이아몬드(Maria curcio diamond)로부터 오디션을 받았다. 생전 처음 보는 곡을 연주하는 테스트를 거쳐 딸아이는 런던의 퍼셀 스쿨(Purcell School, 한국의 예고에 해당)에 입학했다. 

1학년에 편입해서 영국 왕립음악원(Royal Academy of Music University of London)에 한국인 최초로 입학해서 런던에 9년간 체류했다. 그동안 딸아이는 서울에 세 번 나왔고, 나머지 시간에는 거기서 대학원까지 마치면서 연주가로서 학위를 받았다. 

딸아이가 퍼셀스쿨 1학년에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런던에 간지 얼마쯤 지났을까. 딸에게서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스페인의 피서지인 산탄데르(Santander)에서 콩쿠르가 열리는데 참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런던을 날아가 딸과 함께 산탄데르 가는 길에 동행했다. 콩쿠르가 열리는 도시는 마드리드 북쪽으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영국인 스승이 딸아이에게 당부했다. 
“입상을 의식하지 말고 콩쿠르가 무엇인지 경험해봐라.”

하지만 딸아이의 눈빛에는 반드시 입상을 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현지에 도착한 딸아이는 연습할 시간이 모자란다면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해달라고 졸라댔다. 나는 100달러를 주어주면서 호텔 종업원에게 부탁했고, 그는 한 시간도 채 안되어서 피아노를 구해왔다. 

그런데 피아노는 제대로 조율이 안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주인에게 말했더니, 직접 고쳐서 사용하던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내 돈으로 사람을 불러 피아노를 조율했다. 그제서야 딸아이는 피아노 연습에 몰입했다. 

딸아이가 드레스를 다려야 한다기에 근처 세탁소에 갔다. 당장 입을 옷이라 웃돈을 주고 다려 와야 했다. 그동안 딸은 자고 있다가 깨어나서는 구두를 찾았다. 

“아빠, 구두, 구두!”
내가 가져다주었다. 드레스와 구두를 신은 딸이 나를 보며 물었다. 
 
“아빠, 나 이뻐?”
“이쁘다.”
 
▲ 생일날 아내와 딸과 케잌을 자르고 있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콩쿠르가 열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약 60~70명이 경합을 벌였다. 하지만 딸아이는 1차에서 떨어졌다. 울고불고 난리였다. 딸아이를 달래주느라 나는 혼이 났다. 

그 후 1학년에 한 번씩 경험삼아 여러 콩쿠르에 참가하며 딸아이는 기량을 닦았다. 

나중에 큰 국제대회인 영국 턴브리지 헬스 국제콩쿠르 등 몇 개의 콩쿠르에 입상한 딸아이는 뉴포트 국제콩쿠르에서 대상까지 차지하였다. 영국에 간지 4~5년쯤 되었을까. 런던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이 걸리는 웨일스에서, 두 후보와 함께 결승에 진출했다. 

전화가 딸아이에게서 결려왔다. 딸아이는 빨리 와달라고 떼를 썼다. 막내딸이 떼를 쓰면 거절할 재간이 없는지라, 나는 그날 밤에 비행기를 타고 도쿄를 거쳐 런던으로 날아갔다. 그러고는 자동차를 달려 웨일스로 도착했다. 

규모가 큰 교향악단 반주를 세 사람이 차례로 연주했다. 딸아이는 쇼팽의 곡을 연주했고, 이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당시 영국의 황태자비였던 다이애나비가 수여했는데, 시상식이 끝나고 나서 우리 부녀는 다이애나비와 함께 사진도 찍었다. 

딸아이 때문에 해외에 나갈 일이 있으면 일부러 런던을 거쳐서 왔는데, 나는 기왕 유럽에 간 김에 다른 국가의 도시에서도 일주일 쯤 머물다 오곤 했다. 그러는 동안 유럽의 주요도시들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어느 해인가 딸아이의 지도교수인 다이아몬드를 만났다. 
“혜성이는 매우 센스 있는 학생인데, 마지막 장벽을 못 넘는 군요.”

딸아이가 연주는 아주 잘 하는데, 청중을 제압하는 카리스마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엄마를 닮아서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 와서 나는 아내와 함께 고민했다. 

“연주자의 인생 못지않게 가르치는 인생도 좋다. 귀국하게 하자.”
그렇게 서울로 딸아이를 불러들였다. 

딸아이는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서울대학교 의사인 서대식 군과 결혼했다. 결혼 후, 사위가 미 국립보건원 연구원이 되어 워싱턴으로 가게 되었고, 함께 간 딸아이는 존스 홉킨스 대학 소속 피바디 음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서울대, 예원학교, 서울예고에 강의를 나가면서 가끔씩 미국과 영국 쪽의 모교와 연결된 음악페스티벌에 초청연주자로 참가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딸아이는 아주 열정적이다. 딸아이의 예술적인 기질은 나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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