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한 인턴 3년 (19화)

환자에 대한 피검사(CBC)와 소변검사(Urinalysis)는 물론, 환자가 수술할 부위의 털을 깎고 관장을 하는 것까지도 인턴의 몫이었다. 미국남자들은 가슴에 털이 많아 개복수술을 하기 전에 면도를 해야 했다.

당시만 해도 전동면도기가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옛날 이발소에서 사용하는 식도 같은 면도날로 백인들의 가슴 털을 밀었다. 그러다가 졸기라도 하는 날에는 환자를 베기도 했다. 그뿐인가. 수술 직전에 장이 깨끗하게 비워져있지 않으면 레지던트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

“수술하다가 장에서 똥이 나오면 너에게 먹인가!”

인턴에게 레지던트의 명령은 법이다. 그러니 다음날 아침까지 인턴은 환자에게 찰싹 달라붙어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 신환(新患)이 들어오면 환자의 병력을 자세히 듣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진찰을 해야 한다. 직장검사를 포함해서 그 어떤 검사라도 하나가 빠지면 레지던트의 불벼락을 피할 수 없다.

수련 시절에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주는 이러한 훈련은 훗날 남에게 일을 정확히 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필수 과정이었다. 손가락으로 하는 직장검사나 여자 환자의 내진을 할 경우에도, 정상적인 상태를 백번은 경험해봐야 정상이 아닌 ‘이상(異常)’을 인지할 수 있다며 훈련을 반복하게 했다.

결국 인턴은 모든 업무를 마친 새벽 1시 이후에도 환자의 소변검사와 피검사를 직접 해야 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새벽이었다. 그때부터 잠자리에 들어도 기상시간은 여지없이 5시 30분이었다. 일어나면 바로 세수를 한 뒤 숙소에서 걸어 나오면서 나비넥타이를 메고 길을 건너 병원으로 들어와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면 새벽 6시였다.

또한 확진하기에 앞서 치프레지던트가 묻는 환자에 대해 인턴은 모르는 게 없는 박사가 되어야 했다. 질문이 무엇이든 명쾌하게 풀어서 그와 관련된 수치를 말할 수 있어야 했다. 만약 엉터리로 보고하거나 환자의 위액과 오줌, 담즙의 양이라도 틀릴라치면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쭐이 났다. 한 번의 폭풍 같은 질책이 연말에 레지던트로 올라가느냐 마느냐의 평가에 영향을 미쳤다.

▲ 터프츠대학 의과대학병원(New England Medical Center, 공식 명칭은 뉴 잉글랜드 메디컬센터이다) 부감 전경

나는 살아남기 위해, 전쟁 중 조국의 혜택을 받고 온 유학생답게, 내 가족들에게 떳떳한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기 위해, 모든 레지던트들의 질문에 완벽하게 답변하려고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더불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서비스에 정성을 쏟았다. 그것은 내게 생존이었다.

뿐만 아니라 의사의 기본인 전인교육까지 받아야 했다. 나 자신의 의복과 마음가짐도 잘 관리해야 했다. 그래서 항상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가운을 입어야 회진을 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수련시절의 고약한 기합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레지던트 들은 직속 아래 연차를 유독 못살게 굴었다. 그러나 인턴은 레지던트 1년 차의 몸종이나 다름없었다. 의대생들이야 힘들면 숙제를 핑계로 안 나오면 그만이지만 인턴은 화풀이할 대상도 없었다.

레지던트가 인턴을 벌주는 가장 악랄한 방법은 적혈구 채혈이었다. 두 시간마다 HCT(Hematonit, 혈액을 뽑아서 가는 튜브에 넣어 원심 침전기에 넣고 30분간 돌리면 고체인 혈구와 액체인 혈청이 분리된다. 적혈구는 산소 운반책)를 검사하라는 것이었다. 순전히 벌을 주기 위한 차원에서 잠을 재우지 않겠다는 뻔한 의도였지만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맑고 똘똘한 눈동자가 토끼눈이 되도록 고생을 하면서도 한번을 대든 적이 없었다. 그 모든 과정을 견디어 낼 수 있는 성품과 다른 의사들과의 인간관계도 다음해에 레지던트로 올라가는데 중요한 평가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인내심을 갖고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11월의 어느 날, 교육위원장이 복도에서 마주친 나를 불러 세웠다.

“닥터 민, 곧 통보가 가겠지만 내년에도 자넨 우리 병원에 레지던트로 계속 남아있게 되었다.”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모든 피로가 한꺼번에 가셔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