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GP에 근무하면서 각각 날짜가 달랐으나, 나를 비롯한 우리 GP근무자 3~4명이 3명의 북파공작요원을 군사분계선까지 안내한 일이 있다. 어떤 사람이든 일단 남방한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에 들어오면 비무장지대에 근무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인계되고, 미군 HID 요원이든 한국군 HID 요원이든 우리들이 한밤중에 군사분계선까지 안내하는 것이다.
1962년 5월 어느 날 오후 4시경 인민군 사병 복장을 한 건장한 한 사람과 국군 장교복을 입은 사람을 중대본부 선임하사가 데리고 왔다. 그러나 우리 GP장은 인민군 복장 북파요원을 GP 안으로 들어오게 하지 못하게 하고, 산의 바위 뒤에 숨어서 적 전방을 정찰하라고 했다.
HID 요원으로 북한으로 넘어가야 하는 인민군 복장의 그 사람은 말하자면 남한의 간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임무 명칭은 임진강 27호였다. GP장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은 혹시 적에게 체포되었을 경우를 생각해서 병사들의 안전을 생각한 지휘관의 결정이었다,
밤 10시경 나와 김 상병, 정 일병 세 사람이 그를 안내하여 군사분계선까지 갔다. 우리들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을 찾아 그를 북한 땅으로 보내고 돌아오니, 혹시나 무슨 사고가 있을까 염려하고 기다리던 전우들이 안도의 숨을 쉬었다.
10일 후 ‘임진강 27호’가 돌아오는 날이다. 비무장지대는 물론 GOP대대까지는 인민군대의 경계원칙인 수하(誰何)절차가 없다. 특히 밤에는 ‘누구냐’ ‘정지’ ‘암호’와 같은 수하를 하지 않고 사람이건 짐승이건 무조건 발사한다. 그러나 10일 후 ‘임진강 27호’가 돌아오는 날에는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발사하지 않고 수하절차를 밟으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약속된 날 아침 ‘임진강 27호’는 돌아왔다. ‘임진강27호’는 인민군 사단본부에 들어가서 서류뭉치를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정말 대단한 담력이다. 그 후 ‘삼천리 1호’와 다른 요원들이 넘어갔으나, ‘삼천리1호’는 인민군 기동훈련 때문에 비무장지대를 넘어 몇 리를 가지 못하고 일주일 후에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채 돌아왔으며, 한 사람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7월 초순경 군사분계선 제초작업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군사분계선 제초작업은 일 년에 한 번씩 하게 되어 있었다. 보병부대 병사들 20여명을 차출하여 작업을 시키고, 우리 수색중대병사들은 작업병사들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장교든 사병이든 비무장지대에 들어오면 계급과 이름을 떼고 흰 완장을 채워준다. 작업은 아침부터 해가 빠질 때까지 하게 되어 있다.
아침부터 군사분계선을 따라가면서 제초작업이 진행되었다. 정전법(停戰法)은 지형에 따라 남과 북 10피드 정도까지는 서로 철조망을 넘어 다니면서 근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들은 군사분계선 남과 북을 따라가면서 작업과 경계업무를 계속하는 중에 문제가 생겼다.
어제 저녁 내린 비로 군사분계선 근처의 작은 계곡에 물이 고여서 30m정도 북으로 들어가야 바지와 팬티를 벗지 않고 나아갈 수 있으나, 그렇게 할 경우 북한의 영역을 침범하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
그때 장교로 보이는 인민군 한명이 “동무들 통일이 되면 다 같은 조선 땅인데 아무 일 없을 것이니 바지와 팬티를 적시지 말고 그냥 북으로 넘어와서 돌아가시지요.” 하고 말했다.
그날 지휘하고 있던 우리 측 국군장교가 망설이다가 “그렇게 하자”라고 해서 긴장을 하면서 북한 땅으로 넘어갔다가 별 사고 없이 작업을 계속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들은 풀밭에 앉아 점심을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옆에는 6.25전쟁 중에 포탄을 맞은 허물어진 탱크가 전쟁의 후유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 인민군 두 명이 수박 3개를 가지고 와서 “동무들 우리가 생산한 것인데 잡숴보시지요”하고 수박을 땅에 내려놓았다. 한편 다른 인민군 하나가 허물어진 탱크 모서리에 대고 사이다병을 따다가 손을 다쳤다. 그는 우리 위생병에게 치료를 요구했으나 위생병이 혹시 문제가 있을까 하고 뒤로 물러나는 것을 우리 몇 사람이 치료해주라고 해서 결국 치료해 준 해프닝이 일어났다.
나는 분단의 슬픔과 민족의 비극이 그 자리에서 재현되는 것 같아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북한 인민군들과 입씨름을 하면서 제초작업은 무사히 끝났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고 바로 수백 야드 후방고지 OP 위에는 애드벌룬이 ‘살 길은 자유 대한’이란 표어를 하늘에 펄럭이고 있었다. 싸움은 하늘과 땅, 공간 구별 없이 무기가 아닌 치열한 선전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오늘은 우리 GP근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사단장이 방문했다. 그 시간에도 적 GP에서는 ‘평화통일’ 운운하면서 메시지를 낭독하고 있었다.
한낮을 딸기 냄새가 향기롭다. 풀냄새가 가슴을 흐뭇하게 한다. 여인의 숨결 같기만 하다. 나의 군대 생활은 수색대의 긍지를 가지며 시작되어, 전쟁의 후유증과 냉전의 분위기를 진학 맡으며 끝났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 해에 나는 경북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김춘수 교수 연구실 조교로 근무하면서 그때부터 학문의 세계와 인연을 맺고, 석사학위 논문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다. 저녁에는 원화여고야간부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논문테마를 <한국 성장주의 문학연구>를 표제로 정하려고 했으나, 김춘수 교수께서 그 논제로는 노력하는 시간만큼 뚜렷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다른 제목으로 해보라고 말씀하시기에 나는 얼마 후 <1930년대 한국모더니즘 시 연구 - 비교문학적 입장에서>라는 테마를 선정하여 김춘수 교수의 허락을 받았다.
나와 양왕용, 최태호 세 사람이 학위논문을 발표했는데, 나는 좋은 논문 학점을 받아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