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에 게재된 3개월 동안의 시 월평은 7월호의 ‘시의 진실과 관념의 참신성’, 8월호의 ‘시의 현실과 시인의 현실의식’, 9월호의 ‘비유의 시적 효용과 전통시의 변용> 등이었다.
이 월평으로 나의 비평적 능력을 믿은 문덕수 선생은 1976년 가을 자신의 시집 ‘영원한 꽃밭’의 발문(발문)을 나에게 청탁했다. 정성을 드려서 ‘내면미학의 현실적 변용’이라는 제목으로 쓴 해설이 문덕수 시집에 게재되었다.
이 발표를 계기로 나와 문덕수 선생이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문단인들 사이에 소문이 나서 나에게는 문덕수 시단의 5인방이라는 넥네임이 붙게 되었다. 조순애, 김재훈 시인의 시집 해설을 쓰게 되고, 그들과 친한 관계가 된 것도 문덕수 선생의 시집 발문과 관계가 있다.,
한편 내가 <중앙문예동인회>의총무가 되어 동인활동을 한 것도 1976년의 일이다. 1976년 1월 20일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현역 문인들이 시상식이 끝난 후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정규웅 문화부차장이 “중앙일보 출신들이 동인 모임을 가져 동인지를 발간한다면 신문사에서 적극 지원해주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 자리에는 <중앙일보> 출신 현역문인들이 10여명 정도 참석했으나, 수가 적어서 그 문제는 다시 한 번 모여 논의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두 달 후 <중앙일보>출신 현역 문인 30여명이 모여 <중앙문예동인회>를 발족시켜 회장은 1회 당선자 김치수 교수(이화여대)가 추대되고, 총무는 5회 당선자인 내가 맡게 되었다. 편집간사는 1974년 당선자 이인해를 지명하고, 편집위원회를 구성하여 동인지 <중앙문예>를 빠른 시일 안에 발간하기로 결의했다.
그 당시 <현대시학>의 편집장을 담당하고 있었던 이인해 간사는 나와 자주 연락하면서 <중앙문예>에 게재할 원고를 열심히 수집하는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중에도 나에게 <현대시학>원고를 청탁했다.
나는 1976년 <현대시학> 4월호에 ‘시와 신화’를 발표하고 그해 5월에 발간된 동인지 <중앙문예>에 ‘후반기 동인의 시사적 성격’을 발표했다.
그때의 <중앙문예동인회> 동인지로 발간된 <중앙문예>에는 석지현, 이시영, 임영조, 김명인, 이인해, 김종, 김기종, 류제하의 시작품들을 비롯해서 오정희. 조해일, 박범신, 송기원, 조승기, 이윤기, 이현화 등의 소설작품, 김치수, 이보영, 권영민, 장윤익, 정재관, 송상일의 평론이 실렸다. 회장, 총무, 간사를 비롯해서 편집위원으로 수고한 류제하, 임영조, 박범신 등 임원들을 자주 만나서 동인회의 발전과 유대관계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해가 바뀌면서 나는 1977년 2월부터 4월까지 3개월 동안 성신여사대 이성교(李性敎) 교수와 함께 <중앙일보>의 ‘이 달의 시 월평 대담’을 하게 되었다 아직 문단 경력이 짧은 내가 중앙일보와 같은 대신문사에서 ‘이 달의 시 월평’을 담당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었다. 그것은 2월 25일, 3월 16일, 4월 27일의 대담이었으며, 이 월평 대담을 통해서 나는 우리 문단으로부터 주목받는 문학평론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1977년 <시문학> 4월 호에 ‘시와 회화의 만남 - 김춘수의 이중섭을 중심으로’라는 평론을 발표했다.
이 글은 김춘수 시인이 쓴 연작시 ‘이중섭(李仲燮)’을 대상으로 그가 그린 회화세계와의 만남의 예술을 리비도(Libido) 이론으로 조명한 평론이었다. 그 글의 한 부분만을 소개한다.
다리가 짧은 아이는
울고 있다.
아니면 웃고 있다.
달 달 무슨 달
별 별 무슨 별
쇠불알은 너무 커서
바람은 서북쪽
삐딱하게 매달린다
한 밤에 꿈이 하나 눈 뜨고 있다
눈 뜨고 있다
- <현대시학> 1975. 10.
이 시는 이중섭의 그림 <바닷가의 아이들>에게서 소개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 군동풍경(郡童風景)에서 보이는 천진스런 동심의 세계가 여러 가지의 내부적 정경묘사로 환치되고 있으며, 이 묘사는 객관과 주관의 중의성(重義性)으로 나타나 이미지의 확대와 참신성을 보여준다.
“달 달 무슨 달”은 이중섭의 그림 <달과 까마귀>를 연상할 수 있고 “쇠불알은 너무 커서 / 바람은 서북쪽 / 삐딱하게 매달린다”는 그림 <소>의 연작과 <소와 개와 새>에서 온 이미지의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쫙 벌린 황소다리 사이로 축 늘어진 불알통을 물려고 하는 발정(發情)의 이미지를 바람을 통해서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개를 발정의 상징으로 보는 융(Jung)의 해석을 따른다면, 벌거벗은 아이들과 쇠불알을 현실의 때가 묻지 않은 본능의 요소로서 강한 인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춘수가 이중섭의 예술에서 감동을 받은 것은 이러한 가식 없는 리비도와의 충동이다. ‘한밤에 꿈이 하나 눈뜨고 있다’는 가식 없는 무한의 세계, 즉 발가벗은 원시의 자연성과 성애(성애)의 만족을 구하는 이중섭 예술의 영원성에 대한 작가 자신의 꿈인 것도 같다.
- <시문학>, 1977. 4.
이 글은 정한모 서울대 교수가 월평에서 “최근의 평론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작품”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에, 주변의 문인들로부터도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이 작품이 <시문학>에 실렸기 때문에 문덕수 선생도 상당히 흡족한 표정으로 나의 작품을 화제로 삼았다.
한해를 마감하는 세모의 분위기에서 나는 1977년 한국문단 총평을 1978년 <시문학> 1월호에 발표하면서 한해를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