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초 나는 귀국하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서 인문학부 부장에 취임했다. 민병기 학장이 여전히 개입하고 있었고, 나의 오랜 친구 이종열 교수가 사무처장을 맡고 있었다.
백 장군은 여전히 내가 좋은 교수들을 추천한다고 믿고 있었는지는 모르나 추천할만한 교수가 있으면 소개하라고 말씀했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다.
백인엽 장군은 이미 6.25 전쟁 시 전쟁 영웅이었지만 그의 과격한 실적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많이 들어왔다. 선인학원 14개 학교를 설립하여 발전해나가는 과정에서 부지확장 문제로 인근 주민들과의 마찰로 시작해서, 독선적인 학교운영과 고집스런 대인관계로 많은 비난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오랜 군대생활에서 굳어진 군대식 학교 운영과 개혁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은 고집스런 보수성 및 아무도 믿지 않으려고 하는 의심증에서 온 결과라고 생각된다. 물론 성격의 탓도 없지는 않다. 몇 차례의 관선이사 파견과, 드디어는 재단의 모든 학교들을 시립과 공립으로 빼앗기다시피 해서 넘어간 것은 변화에 둔감한 그의 고집스런 경영방식에서 온 결과가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도 많은 장점이 있다. 무슨 일이든 결정이 내려지면 밀고 나가는 강력한 추진력과 조직력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그의 강점이다. 그리고 설립한 14개 학교에 친인척 한 사람도 채용하지 않는 인사정책과 교사나 교수초빙에 일체의 금전거래가 없는 청렴함은 다른 사립학교 경영자들이 본받아야 할 장점이다.
대학입학에서 일체의 금전거래를 허용하지 않는 결벽성과 건축에서 자체적으로 공사를 시행하여 스스로 불도저와 포크레인을 운전하여 공기단축과 경비절감을 과감하게 시행하는 것도 좋은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임교수 추천을 부탁할 때 잭 장군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교수를 추천할 때는 커피 한잔도 얻어먹지 말고, 커피와 식사를 대접하고, 일체의 금전거래는 허용치 않으며, 뒷조사를 할 테니까 어떤 경우든 단돈 천원이라도 초빙교수에게 손해 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당부였다.
그리고 그것은 잘 실천되었다. 학과의 심사, 학교의 연구업적 평가와 면접이 끝나자 인사위원회에 통과된 신임 교수는 최종적으로 설립자 백 장군을 만나야 한다.
신임교수와 추천교수를 만난 자리에서 백 장군은 “그동안 장 교수가 당신을 초빙하기 위해서 많은 수고를 했으니 오늘은 저녁을 잘 대접하세요. 그리고 내가 설립자니까 나에게도 선물 하나 해야지요. 그 선물은 오만 원짜리 이상이면 받지 않을 테니까 명심하세요.”라고 말했다. 신임교수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나는 1984년과 1986년 신학기에도 고려대 출신 1명, 연세대 출신 1명, 1990년과 1991년도에 서울대학 성균관대 출신으로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2명을 추천했다. 그렇다고 추천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시험과 연구업적을 엄격하게 평가받아서 채용된 것이다. 그 교수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연구업적을 쌓아서 인천대학교의 중추적 석학들이 되어 학교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고 있다.
1986년 5월 민병기 학장이 사임하고, 6월 초순 광운대학 학장을 지낸 서정홍 교수가 학장에 취임했다. 전두환 정권의 말기가 되어 가면서 사회분위기가 서서히 혼란스러워질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인천대학에도 몇 가지 학내문제로 학생들의 불만이 집단화할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만의 하나는 재단에서 작업하고 있는 운동장과 학교주변의 비치파라솔이 해수욕장 같은 기분이 들어, 대학문화에 맞지 않으므로 철거해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보사에서 인터뷰한 총학생회 회장의 인터뷰 내용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실어달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주장은 별 무리가 없었지만 재단에서는 이미 공사가 사분의 삼 정도가 되어 철거한다면 상당한 비용손실이 있으므로 좀 사용하다가 보기 싫으면 철거하자는 입장이고, 또 학생회장의 인터뷰에는 재단을 지나치게 매도한 내용이 있어서, 그대로 실을 수 없다는 것이 재단의 항변이었다.
이렇게 팽팽하게 마주선 입장이 풀리지 않고 버티던 어느 날이었다. 운동장에서 열기로 예정된 학생들의 집회가 비가 내리자 체육관으로 옮겨서 집회를 하려고 체육관으로 들어가는 데모학생들과 체육관에서 축구 연습을 하고 있던 축구선수들이 충돌하여 데모 학생 여러 명이 크게 부상당한 사고로 학내 소요가 크게 확산되었다.
약 삼분의 일 정도의 학과가 참여한 학생들이 학과장실과 교수실, 보직교수실 등을 점거하고, 재단투쟁위원회를 조직하여 재단퇴진을 요구하며 연일 데모를 계속했다. 내가 소속된 인문학부와 국문학과는 다행히 데모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11월 중순경 문제가 일어났다.
인문학부 학생들이 학부장인 나의 방을 점거한 것까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국문학과 학생들의 비상총회에서 학생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교수에 대한 성토가 더 심각한 문제로 부상되었다. 11월 하순 어느 날 저녁 국문학과 학생들이 신림동 나의 집 근처 다방에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다방에 들어서니 평소 나와 가까운 7~8명의 학생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받은 후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수님은 학부장이시니까 저희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저희들을 무시한 L교수를 퇴진시킨다고 약속해주십시오.”
“그 교수는 실력이 있고, 학생들을 잘 가르칠 뿐만 아니라 논문도 열심히 쓰고 있는데 이렇게 갑자기 교수를 퇴진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잖은가?”
“저희들은 평소 교수님을 존경하고 있었는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저희들도 재단투쟁위원회에 참석하여 교수님부터 성토하겠습니다.”
“그러면 나부터 성토하게.”
하고 내가 완강하게 말하자 서로 장시간 말씨름을 하다가 헤어졌다.
그 이튿날 휴교령이 내려져서 학교에 농성하고 있던 학생 30여명이 검거되고 학교는 경찰에 접수되어 교수들도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근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학생 몇 명이 제적당하고, 학생 동조 교수 3명과 학생 학내 소요를 유발시킨 보직교수 한명이 정직처분을 받았다.
10일 후 대학은 다시 정상화 되어 서정홍 학장이 물러나고 공주교대 학장, 문교부 장학실장, 공주사대 학장을 역임한 박재규 학장이 12월 초순 부임했다.
인천대학은 중국인 묘지에 세워져서 그런지 모르지만 어떤 학장이 오더라도 학ㄷ생데모는 끊어지지 않는 묘한 징크스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