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원 증과와 문예창작학과 신설 (51회)
  제8장 경주에 돌아와서

학생들의 협조와 국회 문공분과 상임위원회에 소속된 설립자 김일윤 의원의 적극적인 홍보 및 문교부의 방문 등으로 증원, 증과의 일이 어느 정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 중에 우리들이 하고 있는 일이 행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알게 되었다. 

그해 6월 교육부의 대학행정심의관을 만났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주대학교는 2년 6개월 전 감사원의 지시로 향후 5년간 일체의 행정지원을 받을 수 없는 대학으로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행정적으로는 감사원에서 풀어주지 않으면 증원, 증과는 불가능합니다.”

감사원 징계를 푸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것은 정치적 배려가 없으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부임하기 전부터 경주대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던 교수, 직원들은 다 알고 있었던 징계사실을 나 혼자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나는 증원, 증과의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이 일은 이미 쏘아놓은 화살이 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경주에 내려와서 우리 대학의 차동관 사무처장과 함께 사진관을 경영하면서 부산 경성대학교 사진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인식 교수를 찾아갔다. 

김 교수는 나의 중학교 선배이고 평소 나를 무척 아껴주는 분이었다. 차 처장과 나는 우리대학의 증원, 증과 진행상황과 감사원 관계의 일을 말씀드리고 협조를 부탁했다. 안기부의 최고위층과 막역한 친구지간으로 알려진 김 선배는 몇 차례 서울을 오르락내리락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두 달이 지난 10월 중순 김 교수는 나에게 모든 일이 잘 해결되었으니 문교부에 가서 경주대학교의 징계해제 여부를 확인해보라고 말했다. 문교부에 확인해본 결과 풀린 것이 사실이어서 다시 장관을 만나서 후배가 선배에게 보채는 식으로 좀 강짜를 부리고 김 의원에게도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여러 정보기관에서도 경주대학교의 증원, 증과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보고하여 그해 11월 지난해의 350명 입학 정원에서 250명 증가된 600명으로 늘어나고 행정, 경영대학원과 외국어교육원도 설립되었다. 내가 지금 소속하고 있는 문예창작학과도 이때 신설되었다. 

개인적으로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교향 경주와 후배를 아끼는 마음으로 동분서주해주신 김인식 선배에게 늘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계기로 해서 1996년부터 경주대학교 학교 시스템은 정치대학의 면모를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 경주대학교 설립자 김일윤 의원

1997년 네 250명, 1998년에 270명, 1999년에 300명이 증원되어 4년 재직동안 1,570명의 입학정원을 확보하여 앞으로 6,280명의 재적 학생을 가지게 되는 자립대학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때의 경주대학교 사정을 <매일신문>과 <영남일보>는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관광산업주도 전문인력 양성
화랑정신계승 민족대학 육성

“경주대학이 신라정신을 살리는 민족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해 대학발전후원회 등을 조직, 시설 등 교육여건을 개선시키는데 역점을 두겠습니다.”

취임 후 13명의 교수를 확충한 장윤익(張允翼) 경주대학교 충장 (57, 문학박사)은 세계화 물결에 맞춰 교육과정을 다양화하고 관광산업을 주도한 전문인력 양성으로 국민경제발정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21세기 최대의 성장산업의 국제경쟁력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관광특성을 살리는 대학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설명이다. 

장 총장은 경주대학교는 학문연구와, 교육을 총하여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고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앤재를 육성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지만 경주는 신라 천년의 도읍지로서 학생, 교수, 직원 모두가 합심하여 공지와 자부심으로 면학분위기를 일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일신문 1995. 3.6.)

“한국문단 재목 산실 기대, 교세 크게 신장, 지역사회 기여”

문화예술의 도시인 경주의 경주대에 대구, 경북서는 처음으로 문예창작학과 신설인가를 따낸 장윤익(張允翼)경주대학교 총장으로 96학년도부터 학생을 모집, 한국문단의 재목들을 양성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88년도에 한국관광대학으로 문을 연 뒤 93년 경주대학으로 이름을 바꾼 경주대학교는 내년도에 컴퓨터공학과, 사회체육학과, 문예창작학과 등 주간 3개학과와 회계학과 등 야간 2개학과에 2백 50명의 학생을 이번에 신규모집 또는 증원 받았다. 

장 총장은 “그동안 침체상태에 있던 교세가 95년 기준 학생 1인당 지원혜택이 전국 4년제 대학 가운데 7위로 뛰어올랐으며, 교수 확보율도 74%에 이르렀기 때문에 앞으로 지역사회 기여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남일보 1995, 9.28.)

증원, 증과는 어느 정도 충족되었으나 다음은 학생 유치를 위한 홍보와 시설개선 문제가 남아 있었다. 

나는 학생 유치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일이 고등학교 교사들과의 인간적인 유대관계라고 생각했다. 보다 친밀한 유대관계를 가지는 최선의 방법은 운동경기이며, 대중성을 가지면서 특히 교사들에게 환영받는 스포츠가 배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대구와 서울의 학교생활을 통해 교직원배구대회의 선수로 참가한 경험에서 운동의 매력인 선수들과 응원자들의 일체감에서 오는 단결력과 인간적 유대관계로 이어지는 배구의 영향력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98년 11월 28일 경주대학교가 주최하는 경주시내 남여고등학교 교직원배구대회가 열려 전체 고등학교(20개) 선수와 각 학교의 대다수 교사들이 응원단으로 참여하여 생각한 것보다 더 큰 성과를 거두어 그동안 경주대학교를 초라한 소규모의 학교로만 생각했던 이미지를 새롭게 바꾸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이 대회는 서라벌대학과 번갈아 개최하는 시합으로 확대되어 교사들의 즐거운 스포츠 한마당이 되었다. 

나는 운동에 취미가 있기 때문에 김일윤 의원에게 경주대학교와 서라벌대학, 신라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재단 산하 교직원들의 체육대회가 필요하다고 건의하자 김 의원은 즉석에서 좋은 의견으로 받아들여주었다. 다음해 10월 14일 제1회 ‘원석학원 교직원체육대회’가 개최되어 교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이러한 교직원들의 고양된 시기가 1996~9년까지 신입생 지원율을 오르게 하는 요인이 되어 입시업무가 성공적으로 수행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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