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갑 평론집과 문예창작학과 (53회)
  제8장 경주에 돌아와서

일본의 방문도 대학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홍보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지역사회와의 유대는 학교의 발전과 직접적으로 연계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방향에서 우선 기관장 회의에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참석하고, 고등학교도 열심히 방문하여 교사들과의 간격을 좁히려고 노력했다. 

아울러 경주대학교는 이름과 같이 경주의 대표적인 대학이며 무궁한 잠재력이 있는 학교라는 것도 상기시켰다. 그러한 시도의 하나로 지역 신문에 글을 쓰고 고등학교 특강과 지역단체 세미나 등 특강을 하는 ‘홍보요원’총장이 되었다. 

또한 대구, 경북지역 총장협의회와 전임, 현임 총장협의회 총무가 되어 지역 및 전국의 대학총장들에게도 경주대학교의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있는 힘을 다했다. 

외국어교육원과 사회교육원, 행정, 경영대학원이 현직 교사들과 경주, 울산 포항 등 인근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도 좋은 교육프로그램으로 교육내용이 알차다는 소문이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널리 퍼져갔다. 정두환 외국어교육원장과 김만술 행정, 경영대학원장, 김종주교육행정학과장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보고를 들었다. 

이렇게 해서 경주대학교는 날로 달로 발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1998년 회갑을 맞아 경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경주 문인협회 주최로 회갑기념과 평론집 <지방화시대의 문학>의 출판기념회가 교육문화회관에서 개최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주어서 경주에서 인심을 잃지 않고 살았구나, 하는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해 12월 중순 김일윤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내년인 1999년 1월로 4년 임기가 끝나니까 후임총장을 물색해달라는 의사를 표시했다. 

김 의원은 몇 차례 연임을 제의했으나 완강한 나의 의사에 생각해보자고 말하고 두 사람은 장시간 학교와 정치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20여일 후 현재의 한정곤 총장의 이력을 보여주면서 괜찮겠느냐고 묻기에 매우 적절한 분이라 좋다고 말하면서 이번에는 이∙취임식을 꼭 하자고 제의하여 2월초 경주대학교에서는 처음으로 이임식과 취임식이 개최되었다. 능력과 경륜이 있는 후임 총장이 와서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문예창작과 교수의 직위로 돌아갔다. 김일윤 의원과는 선거일로 계속 상의하는 입장이 되어 우정을 지속했다. 

당시 문예창작학과에는 여세주, 손진은, 김주현 교수가 재직하고 있었다. 여세주 교수는 희곡과 연극을 가르치고, 손진은 교수는 시론과 시창작, 김주현 교수는 소설론과 비교문학, 겸임교수인 구광본 교수가 소설창작을 강의하고 있었다. 나는 문학평론가라서 문학 연구방법과 현장비평, 문예사조론과 한국문학 특강을 강의했다.

학과의 교수들은 모두 인격과 실력을 갖춘 분들이라 학과의 교수 분위기는 다른 어느 학교의 분위기보다 화기애애하고 학생들도 교수들을 존경하고 따랐다 .어디를 가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나의 운명이고 행복인가 보다. 
 
▲ 회갑기념 평론집 '지방화시대의 문학'

여세주 교수는 희곡연구가인 동시에 작가이고, 손진은 교수는 시인인 동시에 평론가이며, 김주현 교수도 평론가, 구광본 교수는 소설가로서 모두 다 중앙문단에서 우수한 작품발표로 실력 있는 학자이자 작가로 알려져 있었다. 

학생들도 열심히 하여 손종일이 1,000만원 고료 <오늘의 작가상>, 김성용이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우정수가 ‘상화백일장’에서 장원이 되어 <상화문학상>, 김미숙이 <신라문학대상>, 김미령이 <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 박광렬이 ‘목월백일장’에서 장원으로 <목월상>을 수상했다. 

앞으로 경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는 우리 한국문단을 주름 잡는 학과로 성장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3년전 김주현 교수가 경북대학교 교수로 전근하고, 양진오 교수가 전임교수로 와서 학생들과 호흡이 맞는 성의 있는 강의와 지도를 했다. 그러나 2004년 후학기에 대구대학교로 전근하게 되어 우리 문예창작학과는 대도시의 큰 학교들이 탐내는 우수 교수들을 길러내는 학교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한 우수 교수들이 학생들ㅇ에게 바람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우리 문예창작학과는 우수 교수들만을 초빙하는 가장 객관적인 학교로 평가될 것이다. 

이 회고록 출판은 여세주, 손진은, 양진오, 세 분교수가 나의 정년퇴임을 그냥 보내는 것은 우리 학과 교수들의 예의가 아니라는 발의로 성사된 것이다. 학생들이 만든 <글바라기> 학회지에서 정년특집으로 축하해준 것도 학생들을 가르친 나의 기쁨이요, 보람이었다. 

고향 사람들은 언제 만나도 반갑고 흐뭇하다. 

“고향에 찾아와도 그립던 고향은 아니드뇨......”
라는 대중가요의 가사는 나름대로 창작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립던 고향이 아니라......”는 말은 좀 서운하게 들렸다. 고향은 언제나 그리운 곳이다 .

경주에 돌아와서 나는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167동기생들은 <동해식당>에서 모임을 열어서 고향에 돌아온 나를 환영해주었다. 김도환, 김명우, 이태운, 박광도, 박기영, 서영무, 서영수, 석우일, 양덕모, 임인희, 정중, 한석기 등 중학교 동기들은 경주를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김도환 경상북고 공보관, 한석기 경주전문대학 학장, 서영무 동양시멘트 경주지사장은 황남초등학교와 경주중학교 동기이고, 이태운, 임인희, 정중, 박광도는 동기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동기회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한 친구들이다. 

경주중 16회, 고 7회가 되는 16, 7동기생들은 전국적으로 좀 별나고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 동기로 평가되어 다른 동기생들과 다른 중, 고등학교 동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황남초등학교 동기들도 모임을 갖고 환영하여 유년시절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한석기, 주석만, 조두환, 한종한, 김하병, 이철우, 권영인 등의 옛 친구들이 추대하여 난 동기회 회장이 되었고, 대구사범학교 친구들도 나를 전국 동기회 회장으로 밀어붙여 경주에 와서 마음에 없는 감투를 여러 개 쓰게 되었다. 

초등학교 동기회장, 대구사범학교 동기회장, 영남대학교 경주지역 동문회장 등 전혀 수익성이 없는 직함이 불어났다. 봉사도 끝나는 동문회 일이었지만 일단 맡은 후에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의 성미이다. 이것은 사범학교 교육의 결과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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