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의 수강자는 나와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의 미스 신이라는 젊은 여성, 한양대 출신의 공학도인 이동구였다. 한 시간 정도 프랑스어 강의가 끝나면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를 서로 돌아가며 해석하여 영어공부도 곁들여 하게 되었다.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내 친구의 건설 사무소와 미스 신의 집, 방학 때는 명지여고 교무실을 빌려서 자리를 옯겨 가면서 공부를 했다. 2년 반 동안 여러 권의 프랑스 소설과 프랑스 관계의 원서를 해석하고 그 문학성에 대하여 논의한 것은 참으로 보람 있는 일이었다.
회화공부를 위해서 <알리앙스 프랑세>도 몇 개월 다녔지만 <빠자빠>와 프랑스어 공부시절은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들은 내가 프랑스로 출국할 때와 귀국할 때도 송별과 환영을 해주었다. 이렇게 배운 프랑스어 공부로 해서 해외연수지역은 프랑스로 선택한 것이다.
나는 인천대학 민병기 학장을 통해서 파리 7대학 이옥(李玉) 교수를 소개받았다. 이옥 교수를 통해서 파리 4대학(소르본느대학) 그릭슨(Grikson) 교수와 연락되어 공동연구를 허락받고, ‘프랑스 상징주의 시가 한국 상징주의 시에 끼친 영향- 1920년대를 중심으로’ 라는 테마를 학술진흥재단에 제출했다.
내가 프랑스로 출발하기 일주일 전 쯤, 당시 헌병감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성환욱 장군이 나를 위해서 재경 대구사범학교 남녀 동기생 50여명을 초청하여 베풀어준 환송연과 북악산에서 해외생활을 기원하기 위해서 마련한 인천대학교 30여 명 교수들의 따사로운 접대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해 7월과 8월은 나에게는 정말 바쁜 달이었다. 명지대학 박사학위는 논문발표와 심사, 장로창립, 박사학위 축하식, 프랑스에 갈 준비 등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8월 29일 김포공항을 출발한 KAL기는 앵커리지에서 한 시간 머문 후 18시간이나 걸려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공항에서 한 시간 휴식한 후 스위스 제네바행 비행기를 갈아타서 두 시간 후 제네바 공항에 도착했다.
제네바 공항에는 UN본부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기수 장로와 부인 임재은 집사가 마중 나와 있었다. 나는 이 장로 부부와 함께 이 장로 댁으로 가서 저녁을 잘 대접받고 앞으로 프랑스에서 생활 할 때 어떻게 지내야 하는 가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튿날은 UN,본부와 레만호수를 구경하고 그 이튿날은 제네바 주변의 시골을 혼자서 관광버스를 타고 투어를 했다.
3일 후 토요일 오후 한 달동안 어학연수로 신청한 그레노블로 향했다. 1시 반에 제네바를 출발한 기차는 4시경 그레노블역에 도착했다. 제네바에서 그레노블까지는 기차로 두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레노블 역에 내리자 문제가 생겼다.
나는 그레노블 대학 어학연수원에 한 달 기간의 어학연수를 신청하여 기숙사까지 배정받았으나 기숙사 배정서류를 집에 두고 왔기 때문에 숙박해야 할 기숙사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어학연수 허가서만이 가방에 들어있었다.
기숙사 숙박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 택시를 잡아서, 어학연수 허가서를 보이고 거기까지 가자고 하니, 운전기사가 “농 아드레스(Non adress), 농 아드레스(Non adress)"라고 말했다. 주소가 없어서 가기 어렵다는 말이다. 나는 큰 일 났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서류에 적힌 곳까지 가자고 하니 운전기사는 도멘느 유니버시티(그레노블대학) 인문학부 어학연수원 건물 앞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어학연수원 강당으로 들어가니 흑인 한 사람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떠듬떠듬 하는 말로 사정을 얘기하니, 여기에는 큰 기숙사가 4개 있는데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어느 곳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때 백인 여학생 한명이 들어오자 여학생에게 “이 분이 어느 기숙사에 신청되어 있는지 주소를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안내해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다.
그 여학생은 자기 기숙사 ‘꽁디악’은 바로 이 근처에 있는데, 한국 학생도 몇 명 보이는 것 같으니, 알아보겠다고 하면서 나를 대학 내의 도로에 기다리게 하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대학 구내에는 시내버스가 몇 개의 정류소를 돌아서 시내로 나가고 있었다.
5분쯤 지나서 여학생이 나와서 자기 기숙사에는 신청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버스 두 코스 앞쪽에 있는 베를리오즈 기숙사에 한국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하니 거기 찾아보라고 하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흑인 한 사람에게 안내를 부탁하고 자기는 지금 바쁜 일이 있어서 끝까지 안내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떠나갔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흑인은 그러겠다고 하면서 나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꼬리엔느(한국사람)”라고 하니 “북이냐, 남이냐”를 물었다. “남”이라고 대답하니 아 “까삐딸리스탄(자본주의자)이구만”이라고 혼잣말을 했다.
나도 그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니,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이름이었다. 어투로 보아서 사회주의 국가의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자기 나라를 아느냐”고 하기에 안다고 대답했더니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조금 후 버스가 오자 그와 나는 버스를 탔다. 나의 가방은 작은 가방 세 개였는데, 그가 들어주겠다고 했으나 혹시 알 수 없는 일이라 괜찮다고 하면서 그에게 맡기지 않고 두 정류장 정도 가서 그가 내리자고 해서 내리니, 큰 건물 세 개가 보였다. 그는 여기가 베를리오즈 기숙사인데 잘 찾아보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버스를 타고 갔다.
가방을 들고 50m쯤 가니 내 앞에 한국말을 하면서 걸어가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나는 큰 소리로, “보세요! 거기 한국사람입니까?” 하고 부르니 두 사람이 동시에 뒤돌아보고서는 나에게로 왔다. “인천대학교 교수인데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으니 자기들은 정부의 경제기획원 사무관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베를리오즈 기숙사까지 나를 안내해 가서 내 서류가 신청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방 열쇠를 받아주었다.
옷을 갈아입고서 약 20분쯤 쉬고 있으니 6명이 나의 방으로 왔다. 경제기획원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학정, 유철상 사무관, 국회사무처 통역을 담당하고 있는 김정화, 단국대학교 건축과 출신 이동희,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원 등이 제각기 바게트, 크롸상, 잼 등 먹을 것과 당장 사용해야 할 컵을 몇 개 가지고 왔다.
나는 빵으로 간단히 식사를 때우고 베를리오즈에 기숙하고 있는 유학생들과 그 학교의 연수상황과 국내의 사정에 대해서 두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 날은 일요일이어서 하루 쉬고, 월요일에 어학연수 신청을 하여 오후에 시험을 쳐서 수준에 따라 클래스 배정을 받고 그 다음 화요일부터 어학연수를 시작했다.
1~2교시는 100여명 이상이 합동으로 프랑스어 강의를 듣는 시간이고, 3~4교시는 18명 정도가 한 반이 되어 회화공부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5~6교시도 몇 개 클래스가 합동으로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강의를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