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현황
당시 함열본당은 좀 복잡했다. 내가 부임하기 직전 그곳에서 사목하시던 신부님께서 환속을 해소 바로 이웃에 중․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많은 신자들이 친인척관계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이었지만 그런 일에 휘돌리지 않고 나는 사목에 전념하였다.
이때 환속한 신부님과 시모님께서 나의 사목생활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많이 써주셨다. 특히 사모님과는 대화뿐 아니라 서신까지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행사 때에는 집에 초청해주시고 가깝게 지냈다. 사모님을 그 학교 교장으로 계셔서 몇 년 전까지는 전화통화도 했는데, 지금은 소식이 없어 궁금하다. 모두가 건강하시길 빈다.
함열에 올 때는 30대 중반으로 두 번째 본당이었다. 어려운 본당이었지만 첫 본당 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한번 정상으로 만들어놓고 싶은 꿈도 있었다. 본당 현황을 알고 보니 냉담자도 많았지만 대체로 신자들은 열심이었고 젊은이들도 많았다. 주일학교 어린이들도 많았고 선생님들도 열심히 일해 주었다. 한마디로 인적자원이 큰 재산이었다.
당시 본당은 침체되어 있었지만 가정방문과 구역비사로써 신자들과 빨리 가까워질 수가 있었고 본당은 제 자리를 찾게 되어 매우 기뻤다. 나는 주일학교에 많은 관심을 두었으며 주일학교 선생님들과의 추억도 많다. 제주도, 홍도, 겨울 대천해수욕장, 수덕사 등의 기차여행도 즐거웠다. 그때 그 친구들 많이 보고 싶다.
보좌신부 부임
박병준 신부가 서품 받고 첫 보좌신부로 함열에 왔다. 나와 같은 본당출신이라서 내가 청하였다. 박 신부님은 근면하고 부지런한 성격이라 본당 사목에 큰 도움을 주었다. 본당이 어려울 때 나에게 힘을 보태준 협력자였다.
그리고 본당 젊은이들과 잘 어울리고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해서 인기가 좋았다. 이 자리를 빌려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본당 사목회장 김종익(야고버)은 젊은이로서 본당 일을 잘 챙겨주었고, 석종훈(안드레아) 회장님은 영적으로 신자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신 분이다. 생각해보면 좋은 기억만 있었던 행복한 사목생활이었다.
신용협동조합 설립
부임한 다음 해에는 본당에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문제로 이웃 개신교와 경합을 하여 어려움도 많았지만 공존하는 방법으로 두 곳이 함께 인가를 받는 좋은 결과가 있었다.
나는 본당 신부라는 직책 때문에 초대 이사장직을 맡았다. 이런 인연으로 경제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고 신용협동조합 정신도 알게 되었다. 조합원 교육에도 힘을 보태 이사장직을 무사히 수행하였다.
초창기라 부족함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모든 분들의 도움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특히 이사진과 임직원 그리고 회원님들이 절대적인 협조로 생각보다 빨리 성장해서 그 이듬해 직원들과 이사진이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난 일도 있다.
피곤함도 잊은 사목생활
함열에서는 사목생활에 보람을 느낄 만큼 여유가 있었다. 두 번째 본당이었지만 젊음과 패기가 손과 발을 가만두지 않았다. 신자들에게는 성령기도 꾸르실료 MBW 등 교구에서 하는 모든 교육에 적극 참여시켜 본당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가정방문, 구역모임, 공소방문 등 열심히 살았다. 특히 한센병자 정착촌인 상지원 공소에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방문하였다.
보좌신부가 떠나고 혼자 본당 신부를 할 때는 어떤 주일에는 미사를 5번이나 올렸다. 아침 6시 새벽 미사, 9시 어린이 미사, 11시 공식미사, 오후에는 공소미사가 주일 공식일정이었다.
봄이나 가을에는 혼인미사까지 겹치면 입에서 신내가 나는 바쁜 하루였지만 피곤하다기보다는 사명감에 모든 것이 보람으로 행복했다. 이때에는 피곤이란 말을 해본 기억이 없다. 사목 그 자체가 나의 사목 생활에 힘을 주는 은혜로 생각했다.
함열성당은 기차역과는 좀 거리가 있기는 했지만 밤기차소리는 나의 감성을 자극할 때가 많았다. 그때 적어둔 것을 옮겨 본다.
겨울 기차는 떠난다
오늘은 내가 눈길을 걷는다
발자국 하나를 세며
뽀드득 뽀드득 소리 내며 눈길을 걷는다
어느 간이역 대합실에 낡은 연탄난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기다린 사람
기차는 잠시 플랫폼에 기다렸다가 떠난다
가는 사람 가고 오는 사람 오는데
기다리는 사람만 아직 남아
떠나는 기차는 숨 가쁘게 달려갔고
눈 내리는 간이역 가로등은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중얼거렸다
모두들 떠나는 것이여
- 시집 ‘하루를 살아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