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인생은 없다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간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머니 태중에서 10개월이란 긴 세월을 보내고, 그리고는 분만의 고통을 통해 태어난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자립할 때까지 그 수많은 수고와 노력에 대한 빚을 어찌 갚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을 주셨는데, 그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으로 맺어주신 사랑의 빚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서 지은 빚을 나에게 갚고 계시고, 나는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지은 빚을 나의 자식에게 갚고 있는 것이다. 이 원리는 누가 가르쳐주거나 강요해서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 살아가는 모습들이 신기할 때가 많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큰 빚을 진 사람은 부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빚을 진 당사자에게 직접 그 빚을 갚기란 쉽지 만은 않은 일인 것 같다.
그 부모에게 가장 먼저 빚을 갚아야 할 당사자가 자식들인데도 그 일이 그렇게 실천되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그 일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가장 우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빚을 지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부모가 자기에게 의무를 다해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하게 된다.
자식이 어찌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리요, 천만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만 있다면 그것을 효도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철이 들어 그 일을 느낄 때가 되면 부모는 이 세상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가 빚진 당사자인 부모는 떠났지만 그 빚을 갚아야 하는 자식들이 대물림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빚은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그것은 지금 처해 있는 자리에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베풀어주는 것
옛날 어르신들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너도 자식 낳아 키워보면 부모 심정을 알 것이다.”라고 간접적으로 가르쳐주신 일들 말이다. 그렇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성실히 살아야 하고, 남에게 신세지는 일이 없도록 삼가야 한다.
다른 차원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철이 들면서 국가와 사회,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 예를 들어보면, 내가 성장하는 동안 하나의 인격체를 가진 인간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왔는가. 학교, 친구, 사회, 직장, 결혼을 통한 그들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차원에서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빚진 인생이라고 표현해보는 것이다.
빚은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빚을 갚아야 할 당사자가 빚진 자에게 직접 갚아야 한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그 당사자에게 직접 갚는 일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세월이 흐르면 당사자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것들을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빚을 갚을 길이 없는가?
나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자리에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베풀어주는 것 말이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나눔과 베풂의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원리를 사회 환원이라고 말해도 좋을 듯싶다.
나도 세상을 살 만큼 살아 중년을 넘어 노년기를 바라보고 있다. 사제생활도 2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볼 때 나도 빚진 인생이 되고 말았다. 성직자(신부)라는 특권으로 신자들 앞에서 군림하였고, 상대방보다는 나의 입장을 먼저 챙기는 이기적인 삶이었다. 생각해보면 성직자로서 부끄러운 세월이었다.
신자들을 일주일동안 세속의 고된 삶에서도 잘 견디어 낸다.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생활에 잘 적응해가고 있다. 일요일, 가족들과 함께 하는 휴가도 포기하고, 개인취미생활도 접어두고 성당을 찾아온다. 내 입장에서 볼 때야 당연한 것이지만 평신도들의 입장에서 보면 거룩한 결단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신자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입장을 뒤바꿔 생각해보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솔직히 말해서 성직자인 나도 평신도인 열심한 분들 앞에서 부끄러울 때가 많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성당에 오는 신자들에게 최대한의 마음을 써서 보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첫째는 미사 전례를 통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으며, 못하는 강론이지만 준비하지 않은 강론은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내 말은 적게 하고, 하느님 말씀을 통해서 그들의 영육 간에 평화가 있기를 기원한다.
성당은 훈계하는 곳이 아닌 사랑을 나누는 나눔의 장소요, 죄인들이 돌아오는 회개의 장소라고도 강조해 준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성당에서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성당을 찾아주신 신자들에게 내가 할수 있는 작은 정성과 배려라고 생각한다.
요사이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나도 세상에 태어나 많은 빚을 지고 살았다. 그 빚을 갚으려면 하느님 앞에서는 죄인으로 용서를 받아야 할 것이고, 인간들에게는 받은 것을 되돌려주어야 하겠는데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뿐이니, 이 몸이 누구에겐가 필요할 때 좋은 생각으로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을 이곳에 적어둔다.
혹시 마음이 변할까봐 공적으로 약속을 해두는 것이다.
주님께 갚아야 할 빚은 얼마나 될까? 하늘나라에서는 보탬도, 덜어냄도 없는 셈을 한다는데 지금부터 걱정이 태산 같아진다.
주님! 하늘나라에서 당신 앞에 설 때 제가 세속에서 당신 제자로 살았다는 인연으,로 제 죄를 DC해 주실 수는 없는 지요? 주님께서 저에게 큰 빚을 탕감해주셨으니 저도 이 세상에서 받았던 모든 것을 보리고 가겠나이다.
인생길에는 공짜가 없다 했는데, 제 한 몸으로 빚진 이자나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