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리는 사람이 아름답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수고와 노력으로 살아간다. 이것을 땀이라 한다. 그래서 성서(2데살 3, 10)에서는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했다. 어느 철학자는 이마에 땀 흘린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 사람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땀 흘리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육체노동을, 또 어떤 사람은 정신적인 노동을 통해서 땀을 흘리고 있다. 그래서 땀은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땀만 흘리는 시간을 보낼 때가 있다. 나는 사계절 가리지 않고 땀을 많이 흘리는데, 특히 여름이 되면 내 몸은 항상 장마다. 무슨 일을 해서 흘리는 땀이 아니라 생리적인 현상일 뿐이다. 그래서 여름에는 가능한 한 외출을 자제한다. 활동을 줄여보자는 심산인 게다.
미사를 봉헌하고 나면 수단에까지 땀이 배어
나는 이때가 가장 행복...
땀은 노동의 대가, 하느님께 봉헌하는 귀한 선물
다른 사람들은 여름이면 피서를 떠나지만 나는 반대로 이때는 집에서 보낸다. 더위에 나가 보았자 사람에 치이고, 자동차에 밀리고, 이곳저곳 쓰레기 더미에 몸살을 앓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가지 터득한 지혜가, 휴가철에는 집에서 쉬고 8월이나 9월, 아니면 겨울철에 휴가를 떠나는 것이다. 이때가 되면 여유가 있고, 쉬고자 하는 곳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있어 참 좋다.
또 궤변을 늘어놓는다면, 나 한사람이라도 복잡한 피서철을 피해준다면 다른 사람에게 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나의 여름피서지는 제일 편한 우리집이다. 돗자리 깔고 시원한 바람이 있는 대청에 앉은뱅이 책상 하나를 놓고 독서를 즐긴다. 그래서 내가 1년 중 책을 제일 많이 읽는 달이 바로 7, 8월이다.
사실은 이 책의 원고 대부분도 여름에 써놓은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다보면 더위는 멀리 가버린다. 잠이 오면 그대로 낮잠자고, 출출하면 시원한 수박 한덩이 깨뜨리면 기분 그만이다.
그런데 나도 감격해 하는 말이 있다. 신부는 미사를 봉헌할 때 제복을 입는다. 런닝셔츠와 그 위에 긴팔 와이셔츠, 수단, 장백의,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의를 입는다. 다섯 벌을 입고나면 겨울에도 땀을 흘리게 되는데, 삼복더위 여름을 상상해보시면 짐작이 가실런지.......
신자들은 속옷 하나에 살이 비치는 짧은 옷 하나만을 걸치고도 덥다고 야단인데, 신부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미사를 봉헌하고 나면 속옷은 물론이고, 수단에까지 땀이 배어있다. 나는 이때가 가장 행복하다. 내가 흘리는 이 땀은 노동의 대가이면서, 하느님께 봉헌하는 귀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와 땀을 흘려 세상을 씻어주시고 구원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미사 때 흘리는 땀은 나 자신과 미사 참례하는 신자들을 위해 하느님께 봉헌하는 보배로운 제물의 땀이다.
제의를 벗고 문 앞에서 서서 잘 가라는 인사를 할 때 내가 땀에 흠뻑 젖어 있는 것을 보고 “신부님,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신자분의 인사말 한마디에 다른 어느 말보다도 힘이 나고 보람을 느낀다. 내가 흘린 땀이 내 자신과 모두에게 기쁨이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덥지도 않은데 신자들이 부채질을 하는 바람에 미사도중 분심이 든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강론 때 “나는 지금 옷을 다섯 겹이나 입었다”고 하였더니, 눈치 빠른 신자 분들은 부채질을 멈춘다.
그리고 재미있으라고 한마디 덧붙여 말했다. “나의 몸은 여름동안 장마이고, 미사 때는 홍수가 납니다.”그런데도 내가 떠내려가지 않는 비결을 설명해주었다. 머리에서 허리까지 흐르는 땀은 허리띠에서 보조 댐 역할을 해 수위를 조절해주고, 그 밑에서 흐르는 땀은 양쪽 다리를 타고 땅속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떠내려가지 않고 살아 있다고 너스레를 했더니,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렇게 짜증나고 더울 때에는 이런 농담 한마디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미사를 마치고 제의방에서 흠뻑 젖은 옷을 보면서 주님께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이 못난 사람을 당신의 제자로 선택해주시고, 거룩한 미사까지 올릴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주시며, 저의 땀과 정성을 받아주시니 기쁘고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제가 흘리는 땀이 주님 제단에 흠 없는 제물로 바쳐지기를 바라면서 매일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말하면서 죽는 날까지 그 땀을 흘리고 싶습니다. 제가 당신께 바칠 것은 제사 때 올리는 땀이오니 받아주소서.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와 땀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서 있는 이 제단 위에서 땀을 흘려 세상에 보답하겠습니다. 저의 작은 정성, 받아 주소서.
저의 땀 흘린 장백의를 세탁해주시는 수녀님께 이 자리를 통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수녀님, 제의방에 세탁기 한대 놓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