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채 선물을 받고
나는 1986년에 기회가 생겨 미국으로 교포사목을 떠난 적이 있었다. 생소한 이국 땅이지만 호기심 많고 의욕도 많았던 시절이라 무서운 것 없이 그런대로 잘 적응하며 살았다. 처음에는 미국성당을 빌려 써야 했고 사제관도 함께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식사문제와 일직 문제로 고생은 했지만 견딜만 했다.
미국 교포 사목은 대체로 시간적 여유가 좀 있는 편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직장에 나가서 낮에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낮 시간에는 무료함을 느낄 때가 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형제 한 분이 찾아와서 “신부님,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데에는 운동을 하셔야 합니다. 분심도 안 들고, 건강도 좋아지고, 신자들과 사귐도 됩니다.”라고 하면서 골프를 시작하자고 권하였다.
처음이라 대답을 하지 않고 생각해보자고 했는데, 하루는 그 분이 나에게 식사대접을 하고 싶다고 해서 점심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나서는 나에게 갈 데가 있으니 같이 가셔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4년 동안 배운 실력으로 10년 동안 정신없이
필드에 나갔지만 몇 년전부터 삼가고 있다.
골프경력 15년에 손을 뗀다는 것은 어려운 일...
영문도 모르고 따라갔더니 골프숍이었다. 그리고는 체형에 맞는 것을 골라야 한다고 하면서 꽤 비싼 것으로 하나 골라주었다. 채 뿐만 아니라, 신발 , 옷 그리고 가방과 기초용품까지 완벽한 골프세트를 거금을 주고 장만해 준 것이었다.
나는 엉겹결에 받기는 했지만 골프를 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 형제가 다음날 나를 연습장으로 데리고 가서 한 달 연습 코스에 가입시켜주고는 모든 경비를 해결해주었다. 정말 처음 받아본 큰 선물에다 지극한 정성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분은 시간을 내서 나에게 개인지도를 해주기도 하였다.
한 달 연습이 끝난 뒤 처음으로 정식 필드에 나간 날이었다. 가슴 설레도 기념에 남을 만한 날이었다. 이렇게 하여 나의 골프고 시작된 것이었다. 그 분과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필드에 나갔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고마운 분으로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본당에 내가 골프를 치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미국 교포들 대부분은 골프를 즐겨하고, 우리 본당에도 절반 가량이 골프를 치고 있었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본당 여자골퍼들이 나를 초청해주었고, 다른 그룹에서도 골프 초청이 많아졌다.
그 사회에서 골프초청은 보편화된 관례였다. 그러다보니 일주일에 두세 번 필드에 나갔고, 어떨 때는 나에게 골프채를 사주고 ‘골프 머리를 얹어 준’ 그 형제와는 시간이 맞지 않아 못 나갈 때가 많아졌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골프를 가르쳐준 사람은 제쳐두고 여자골퍼들하고만 다닌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에게 신세를 진 것은 분명하지만 내가 항상 그분과만 골프를 쳐야한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은근히 내가 다른 사람들과 골프장에 나가는 것을 시기하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럴 때 어떻게 처세해야 좋을지 방안이 서지 않았다.
그 뒤 어느 정도 실력이 늘어 드라이브 채를 하나 바꿨다. 그랬더니 사준 것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느냐고 은근히 서운한 눈치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후에 이런 고민된 이야기를 누구에겐가 말했더니 그러면 <본당 신부님배 골프대회>를 한 달에 한 번씩 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 뒤로는 청년부, 장년부, 여성부로 나뉘어 매달 한 번씩 골프대회에 나가다보니 그 일은 쉽게 풀리게 되었다.
그 후 골프채를 바꾸고 싶었지만 그 분이 서운하게 생각할까봐 귀국할 때까지 4년간을 선물로 사준 골프채만 사용했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인간의 정을 주고받는 기분 좋은 우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담된 선물을 주고받을 때는 마음이 편치 않다.
나에게 선물을 주신 분은 좋은 뜻으로 주셨지만 나는 그 분에게 답례를 하지 못해 항상 빚진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1990년 한국에 돌아와서 골프채를 바꾸었다. 그 분이 사준 것은 우정으로 생각하며 쓰지 않고 기념으로 잘 닦아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
오늘 이 글을 쓴 것은 내가 그곳에 있을 때 나의 무료함을 달래주고, 운동도 가르쳐 주고, 많은 도움을 주신 형제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이다. 지금도 전화로 나의 건강을 물어 오신다. 한국에 들를 때에는 꼭 전화를 주시고, 운동 잘 하느냐고 챙겨 주신다. 정말 고미우신 분이다.
그곳에서 4년 동안 배운 실력으로 이곳에 와서 10년 동안 정신없이 필드에 나갔지만 몇 년전부터 삼가고 있다. 언젠가 다시 나갈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쉬고 있다. 골프경력 15년에 손을 뗀다는 것은 지독한 결심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갈등도 있었지만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
요새 나는 가까운 산에 오르고 있다. 동행이 없어도 혼자 갈수 있으니 좋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하시는 모든 분들께 격려를 보낸다. 자기 취미생활과 자기건강은 본인이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인사가 늦었습니다. 골프채 감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