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일 (2회)
  제1장 가족이라는 울타리

올 6월 22일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합동 추모 예배가 있었다. 장조카 권주만이 설교를 했다. 보모님을 떠올리자 여러 회한이 들어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기쁜 일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기쁜 일이 없도다(요한3서)

오늘 말씀의 제목은 ‘기쁜 일’입니다. 기쁜 일은 본문 말씀에서 ‘진리 안에서 증언하고 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진리 안에서 증언하고 행하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진리 안에서 중언하고 행함으로써 범사가 잘되는 기쁨을 얻는 우리 가족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우리 가문에서 진리 안에서 증언하고 행하는 모범을 보인 분은 할머니이십니다. 오늘은 할머니의 39주기 기일이고 함께 추도예배를 드리는 할아버지는 54주기가 됩니다. 

오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의 전반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할머니는 부여군 내산면 금지리라는 동네에서 13살에 하나님을 영접했습니다. 금지에서 50리 산길을 걸어서 홍산에 있는 홍산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쉬운 길이 아니라 50리를 걸어야 하는 산길이었습니다. 산을 넘어야 하고 아홉사리라는 구배(句配)를 지나서야 홍산교회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기도했습니다. 가까운 동네에 사는 총각을 만나서 신앙생활이 이어지도록 해달라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소원이 이뤄졌습니다. 18살의 할머니는 21살의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교회는 정말 가까웠습니다. 들판을 지나 냇가를 건너면 교회에 도달했습니다. 집에서도 들판 건너를 바라보면 교회 종탑이 보이는 동네입니다. 그런데 그 총각의 집안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유교집안이었습니다. 사단은 여기서부터 복잡하게 얽힙니다. 증조할아버지가 사시던 집 앞에 동네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동 우물이 있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이곳에서 식재료를 씻기도 하고 빨래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집집마다의 이야기들이 모였다 퍼지기도 합니다. 

어느 날, 증조할아버지가 나들이를 갔다 들어오시면서 이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권 영감네 새 며느리가 예수쟁이래.” 증조할아버지는 기절초풍할 소리를 들은 겁니다. 집으로 돌아온 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내외를 불렀습니다. 정말 예수쟁이냐고 물었을 겁니다. 항상 당당했던 할머니는 그렇다고 답했을 겁니다. 한술 더 떠서 “아버님도 교회에 나가시지요.”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날로 할아버지 부부는 가덕리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신혼초였습니다. 부부가 한밤중에 도착한 곳은 ‘안동 굴’입니다. 안동 권가 부부가 굴을 파고 살았던 동네입니다. 고모들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굴은 아니고 뗏장을 쌓아서 지은 집이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큰 고모부터 저의 아버지까지 4남매가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마침 집 앞에서 시작한 옥산저수리 공사판의 노동자로 참여하게 됩니다. 그렇게 번 돈 13원으로 비홍리(현재 홍연리)에 집을 사셨습니다. 비홍리 집에서 작은 아버지와 막내고모, 그리고 우리 5남매가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교회에 다니지 말라고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대신 말씀이나 행동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비홍리 집은 제가 어릴 적에는 담이 울타리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울타리에 할머니가 만든 개구멍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일주일동안 성미를 빼내가지고 교회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일이 어려워졌습니다. 울타리를 걷어내고 황토벽돌로 담장을 쳤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는 동네 강아지나 닭들이 우리 집안으로 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성미구멍도 사라졌습니다. 할아버지의 뜻이 아니었을까, 너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어머니 최병학

제가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밥상을 안방에서 마당으로 던지는 것을 여러 번 봤습니다. 아버지도 화가 나면 밥상을 마당으로 휙 던졌습니다. 부전자전입니다. 그래서 작은 상은 다리가 성한 것이 없었습니다. 있더라도 상다리를 노끈으로 묶어서 사용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교회에 다니는 것에 대한 불만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할아버지는 가끔씩 갓에 두루마기, 단장을 갖추고 교회에 가셨습니다. 남자들이 앉는 자리 한 중간에 앉아계신 모습을 봤습니다. 아마도 할머니의 닦달과 교회에 대한 궁금함 때문이었을 겁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길래 교회에 미쳐 사는지 알고 싶었을 겁니다.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멋졌습니다. 할아버지의 날씬하고 훤칠한 큰 키가 돋보인 것은 한복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할아버지도 말년에 1년 6개월 정도는 중풍으로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 몸으로 홍신장에 나가셨습니다. 다리 힘이 빠져서 저수지 둑에 앉아 할아버지를 모시고 온 적이 있습니다. 병세가 심해지면서 방안에서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그 일을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54년 전 정월 초하룻날 오후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큰고모가 오셔서 할머니와 함께 수의를 만드셨습니다. 정월 초하룻날에는 큰고모가 와계셨습니다. 그 시댁 어른들이 대단한 유교집안이었는데도 큰고모가 집에 계셨습니다. 정월 초하룻날 오후에는 침례교 목사인 둘째 고모 부부가 오셔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둘째 고모 부부를 배웅하며 가족들이 모두 바깥마당 쪽으로 나갔습니다. 

안방에는 할아버지와 큰고모,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의 얼굴색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검버섯이 가득했는데, 갑자기 피부가 우윳빛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저는 마루 끝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상해요.”하고 소리쳤습니다. 온 가족이 모두 안방으로 모였습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가셨습니다. 그러고는 “영감, 할렐루야 하세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힘들게 “할렐루야!”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할머니는 또 “영감, 한마디 더하세요.”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크게 숨을 들이쉬시고 “할렐루야!”하셨습니다. 그러고는 할아버지의 목에서 서서히 힘이 빠졌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로 할머니도 하늘나라에 함께 계실 것으로 믿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은 대비됩니다. 할머니는 하늘만을 향해서 사셨습니다. 반면에 할아버지는 땅을 향해서 사셨습니다. 어머니가 말씀 하시길 할아버지가 정월 초하룻날 돌아가신 것은 밥값이 아까워서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삶을 단적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명절엔 어차피 음식을 준비합니다. 준비한 음식을 문상 온 사람들에게 제공하면 되기 때문에 음식을 더 장만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할아버지는 생전에 교회에 가자는 할머니를 향해서 “교회가면 쇠고깃국 주냐?”라고 말씀 하셨던 분입니다. 

자손 된 우리는 할머니의 진리에 대한 충만함을 배워서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근면성을 배워야 합니다. 그때 오늘 본문 말씀처럼 범사가 잘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땅에서의 삶과 하늘에서의 삶을 완벽하게자녀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지녀야 할 지혜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뗏장 집에서도 사셨습니다.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진리를 향한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급한 심정으로 말씀을 대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왜 그렇게 사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신 것처럼 진리 안에서 살아내려는 노력을 함께 할 때 여러 어려움을 대하더라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그런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장손자 권주만 장로
2019년 6월 22일 문산면 금복리 산 60 선산에서

 
  땅을 향해 사신 아버지, 하늘을 향해 사신 어머니 (1회)
  의지처였던 형님_1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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