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新聞)학원 입학시험에 응시한 것은 하나의 도전이었다. 시험 내용은 시사문제에 관한 것과 주제나 내용을 주고 기사를 쓰게 하는 필기시험이었다.
서홍과 석두는 그런대로 자신 있게 시험을 쳤다. 그러나 구두시험에서 문제가 생겼다. 시험관 문제는 중앙대학에 출강하는 시인 김기림(金起林)이 있었다. 김기림은 금방 석두를 알아봤다.
“내 강의를 듣는 학생인 것 같은데,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라고 진득하게 한 자리에 붙어서 공부를 해야지 신문학원에는 왜 들어오려고 하나?”
그러자 옆에 앉은 다른 시험관이 서류를 보며
“H대학 2년 수료라는 것은 다 거짓이구만. 중앙대학을 다니면서 언제 H대학을 다니나?”
서류가 가짜라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굴하지 않았다. 서류야 뭐 형식적이지 중요한 건 필기시험 결과가 아니겠느냐? 게다가 대학 2년을 수료하지 못했지만 현재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것은 사실이니 필기시험 결과가 나쁘지 않다면 꼭 붙여달라고 배짱 좋게 간청이랄까, 호소를 했다.
비슷한 대화가 서홍과 시험관 사이에서도 오고갔다. 시험관 교수들은 필기시험 결과만 좋으면 붙여 줄테니 잘해보라는 언질 비슷한 말까지 했다. 석두와 서홍은 틀림없이 붙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합격자 발표를 보러 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이럴 수가!”
두 사람은 몹시 실망했다.
“따지러 가자.”
뭘 따진단 말인가? 떨어진 게 당연하지. 우리가 뭘 따질 자격이 있단 말인가?
“하여튼 알아보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알아보자.”
그만큼 신문학원에 들어가는 것이 절실한 꿈이요, 바람이 있다고나 할까....... 두 사람은 교학과장을 만났다. 교학과장은 두 사람을 알아보고
“이달 말까지 등록을 하도록 해요. 7월 1일부터 강의가 시작되니까.”
합격 명단에는 빠졌으나 입학금을 내고 등록하면 받아주겠다는 것이다. 뭔가 꿈이 이루어지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그날이 1950년 6월 20일이었다.
6월 22일 석두와 서홍은 광주로 내려왔다. 지루한 호남선 야간열차를 타고 신문학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내려온 것이다. 석두와 서홍의 집은 광주시 루문동에 벽돌담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었다. 서홍의 집은 원래 장성과 비야 사이의 농촌에 있었으나 아들의 교육을 위해 광주에 집을 마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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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전쟁 발발 전 해인 1949년 평화로운 서울의 한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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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금지(通行禁止) 5분 전율
통행금지 5분전을 달려가고 있다.
끝없는 전전에
숨결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도시여
안식도 망각도 아닌 뭇 그림자 속에 나의 그림자는 파묻혀 있다.
그래도 나는 달려가고 있다.
아, 이 어둠과 ‘통행금지 5분전’을
당신은 어느 곳에서 기다려 주시기에......
이냥 한 그루 가로수처럼 머물고 싶다.
돌아오는 길도, 가는 길도 아닌 이 싸늘한 보도에
점을 치는 별빛과 당신의 머리칼을 스쳐가는 것은
내가 아닌 바람뿐이다.
‘통행금지 5분 전’을 달려가고 있다.
어데론가 통하는 보도에
막다른 순간.
-석두, 1950년
기습공격과 남침
6월 25일 아침 서홍이 붉은 벽돌담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야 드디어 터졌어!”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던졌다. 석두는 “그래, 터졌어......”라고 답하면서 역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던졌다.
그들의 미소는 인민군이 쳐들어와서 좋다는 미소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들의 정세 판단이 옳았다는데 대한 우쭐한 자부심 같은데서 나오는 미소였다. 그들이 이미 이야기했던 인민군의 침공을 정부가 대비하지 않고 기습공격을 당했다니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민군의 침공은 침공이고, 두 사람은 내일이라도 신문학원 등록금이 준비 되는대로 서울로 올라가자고 했다. 그런데 등록금을 준비해서 올라가기로 한 6월 28일에 이미 서울은 인민군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석두와 서홍도 서울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석두는 서홍과 같이 외할머니 집으로 피신하기로 했다. 이러한 변란의 시기에는 누가 적이고, 누가 우리 편인지 알 수 없다. 누가 가해자가 되고 누가 피해자가 될지 알 수 없다. 실제로 남쪽 정권에 의해서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들이 대량학살 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보도연맹이란 과거에 좌익세력에 가담했거나 좌익세력의 빛깔을 딴 사람들을 전향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러니까 과거를 뉘우치고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겠다는 사람들인데, 북한의 남침이 발생하니까 믿을 수 없는 위험인물로 간주되어 총살이 되고 그밖에 폭발물에 의한 대량학살 같은 방법으로 처형되었다는 것이다.
석두와 서홍은 어느 쪽에도 리스트에 올라있지는 않았으나 피차 간에 교전이 이루어지고 들락날락하면서 어떠한 위험상황이 발생할지 알 수 없었다.
치안을 담당한 경찰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면서 바짝 긴장해 있었고, 태백산맥이나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빨치산도 기가 살아난 듯 했다. 이런 때는 아무 눈에도 띄지 않고 숨어 있는 것이 상수다.
석두와 서홍은 석두의 외할머니 연줄로 노령산맥 기슭의 외딴마을 시골집 사랑의 골방에 틀어박혀 꼼짝 않고 숨어 있었다. 숨어 있을 이유가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숨어 있어야 안전하다고 생각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