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대화1 ; 스탈린과 비신스키
- 그들의 대화를 엿듣지는 못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멍청한 김일성이 전쟁을 저질렀다고 비신스키는 생각했다. 비신스키는 그로미코와 같이 스탈린을 찾아갔다. 그로미코와 비신스키는 언제나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스탈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북조선의 군대가 기대 이상으로 강한 것인지, 남조선의 군대가 예상보다 약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같아서는 일방적인 승리야. 안 그렇소? 그로미코 동지.”
“네, 맞습니다. 일방적인......”
“이대로 가면, 한 달이면 종전의 축배를 들게 될지도 몰라.”
그로미코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위대한 지도자 스탈린 동지......”
비신스키가 끼어들었다.
“왜? 그런 시나리오는 믿어지지 않는다고?”
“네, 문제는 미국입니다. 미국이 참전을 하게 되면, 초반에는 기습작전으로 대승을 거두었지만......”
“그래서?”
“미국이 참전을 하게 되면 그렇게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하루 빨리 유엔에 돌아가서 미국이 참전할 수 있는 명분을 없애고, 미국의 개입을 차단해야 합니다. 미국이 유엔에서 무엇인가를 꾸미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미국이 어떤 결의안을 내놓으면 거부권 행사를 해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비신스키는 충성스런 어조로 웅변을 토하며 말했다.
“유엔 대사는 당분간 유엔에 귀임하지 않을 거요. 그러니 서두를 것 없소. 몇 개 대학을 찾아가서 강의를 하도록 준비나 하시오.”
“하지만 존경하는 스탈린 동지, 미국이 참전을 하면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아무리 북조선의 군대가 위대한 붉은 군대의 지도 노선에 따라 훈련받았다 하더라도 역부족입니다. 그들은 반격에 나설 것이고, 그렇게 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원수 동지가 외교적 노력으로 쟁취하신 기득권까지......”
비신스키는 용기를 내서 그의 생각을 말했다. 스탈린 동지 도 같은 의견이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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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9년 3월 모스크바에 도착해 성명서를 읽고 있는 김일성 /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부수상 박헌영이고 세번째가 소련의 외무상 그로미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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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오. 가령 미국이 참전을 하지 않고 조선의 북반부 인민군이 한반도를 완전히 장악하고 통일을 했다고 해요. 미국이 가만히 있을 것 같소? 그 보상을 구라파나 동구라파에서 찾을 거요.”
스탈린은 미소까지 띠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비신스키는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왜 김일성 장군에게.....?”
이번에는 그로미코가 스탈린을 의아스럽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스탈린은 그런 질문이 나올지 알았다는 듯이,
“왜 전쟁을...... 남반부 공격을 승인했느냐 이거지? 그래서 일 년 전에는 안 된다고 말했지. 그러나 김일성이 재차 긴장하기에 묵인하기로 한 것이요. 명분이 있는 전쟁을 더 이상 막을 수는 없었고, 전력 면에서 자신 있다는 것이었고, 그의 말에는 틀린 게 없어요. 문제는 미국의 참전이지. 처음에는 미국이 끼어들면 승산이 없으니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미국이 참전해도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미군의 참전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소.”
스탈린은 잠시 말을 멈추고, 침을 꿀꺽 삼킨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떻게든 미국의 참전을 유도해야 하오. 비신스키 동무, 동무를 유엔에 귀임 안 시킨 것은 거기 있으면서 동무가 거부권 행사를 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비신스키 대사가 유엔에 있으면서 거부권 행사를 안 하면 북조선 당국이 어떻게 생각하겠소? 그러니 비신스키는 유엔에 귀임하지 않고 거부권 행사를 안 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미국은 명분을 찾아서 참전하겠지. 내버려둬요. 그들의 참전은 우리가 바라는 바니까. 그들이 참전을 하고 조선반도에 관심을 갖는 한 구라파, 특히 동구라파에 대해서 관심이 그만큼 줄 것이다...... 내가 미국이 참전을 바라는 게 잘못이오?”
“저희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위대한 스탈린 동지의 추리와 판단에 감탄할 뿐입니다.”
그로미코가 아첨하듯 말했다.
“그러나 북조선 인민군이 궁지에 몰리면 우리가 뭔가 손을 써야 할 텐데, 그때는......”
비신스키는 그의 추리를 또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그때는 중공군이 참전을 하게 되지. 중국은 사실상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조선 인민공화국 국경을 접하고 있으니까 명분이 서지. 미국은 유엔을 앞세우고 참전을 할 거고, 중국은 자국의 방위를 위해 참전을 할 거고. 우리는 그 사이 동구라파의 불안 요소를 제거하는데 전념하는 거야. 내가 이런 판단을 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소식통이 미국은 전쟁을 하더라도 확전을 하지 않는다. 압록강을 넘어서 중국을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다. 믿을만한 정보가 있어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큰 모험이 아니지.”
스탈린의 이야기는 웅변적이면서도 설득력이 있었다.
한 시대의 주인공을 자처한 스탈린. 히틀러와 나치스와 싸울 때에는 그는 조국을 지켜낸 영웅이었지만 냉전시대의 서막에서 그가 맡은 역은 음흉한 어릿광대였다. 그는 콧수염 밑으로 음흉한 검은 미소를 띠었다.
